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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려대 졸업식장에 햄버거 1만개

등록 2010-02-26 15:58수정 2012-05-26 23:23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가서 꿋꿋하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빕니다.” 영철버거 사장 이영철(43)씨가 25일 오전 자신의 가게에서 고려대 졸업식날 학부모님과 학생들에게 전달할 1만개 ‘영철버거‘를 만들며 졸업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영상 캡쳐/ 조소영 피디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가서 꿋꿋하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빕니다.” 영철버거 사장 이영철(43)씨가 25일 오전 자신의 가게에서 고려대 졸업식날 학부모님과 학생들에게 전달할 1만개 ‘영철버거‘를 만들며 졸업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영상 캡쳐/ 조소영 피디
학교 앞 ‘영철버거’ 장학금에 학교서 주문

초등학교 중퇴 사장 ‘10년 정’이 모락모락
“여기 온도 재 주세요.” “손이 퉁퉁 부은 것 같아.” “손이 왜 이렇게 느려?” “시간 모자라겠다.”

지난 25일 새벽 서울 안암동 버스정류소 앞. 아직 날이 밝지 않은 도로에 차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정류소 앞 햄버거 가게엔 불이 환하다. 작은 부엌은 소란하다. 하얀 위생 모자를 쓰고 마스크 낀 직원들이 13명이다. 평소보다 3명이 많아졌다. 분주하게 요리를 시작한 건 새벽 1시부터다. 주문량은 어마어마한데 시간이 빠듯하다.

‘영철 버거’라고 적힌 빨간 유니폼을 입은 이영철(43) 사장이 잠깐 숨을 돌리려 가게 문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길에는 비가 부슬부슬 떨어진다. “1만 개 주문을 학교에서 받고 처음에 정말 흐뭇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부담도 압박도 많이 커졌어요. 믿고 맡겨준 일인데 잘 해내야 하는데….”

고대 앞 1000원짜리 햄버거로 유명했던 영철버거는 이날 열리는 고려대학교 졸업식에 학생들과 학부모의 식사용으로 1만 개 배달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막장일 떠돌다가 허리 다쳐 흘러들어

이렇게 비가 오면 아직도 허리가 쑤신다. 혼자 리어카 끌고 햄버거 굽기 시작한 것은 중국집 배달원, 봉제공장일, 식당 주방일, 막노동 일을 전전하다 공사판에서 허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더이상 막짐을 질 수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팔던 때부터 영철버거를 먹었어요. 그 맛을 잊지 못해요.” 이날 대학을 졸업하는 사범대학 이기훈(28)씨는 졸업식 선물로 햄버거를 받자 기쁘게 웃었다. 영상캡쳐 / 조소영피디
“포장마차에서 팔던 때부터 영철버거를 먹었어요. 그 맛을 잊지 못해요.” 이날 대학을 졸업하는 사범대학 이기훈(28)씨는 졸업식 선물로 햄버거를 받자 기쁘게 웃었다. 영상캡쳐 / 조소영피디

“여기 안암동 고려대 앞으로 왔을 때가 2000년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왜 하필 고대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흘러 흘러 들어온 곳이 여기에요. 학교보다 그냥 학생들이 좋았어요.”

학교 앞 골목에서 천 원짜리 햄버거를 구워냈지만, 그는 대학 생활을 알지 못했다. 늦은 밤 우르르 뛰어내려 와 햄버거 하나 입에 물고 바쁘게 올라가는 학생들에게 “어휴, 벌써 중간고사 기간이네. 시험 잘 봐!” 외치기도 처음에는 어려웠다. 초등학교 중퇴인 그는 명문대학생인 손님에게 말 붙이기도 쑥스러웠다. ‘1000원짜리 영철버거’는 그와 학생들의 거리를 좁힌 계기였다.

“IMF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군대로 들어갔던 학생들이 막 복학했던 시기였어요. 저도 학생들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의 천 원짜리 햄버거는 주머니가 넉넉지 않았던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포장마차 같던 리어카가 지금은 16평 가게로 커졌다. 영철씨는 햄버거를 팔아 번 돈으로 해마다 고려대에 장학금을 전달했다. 고려대는 그런 영철씨에게 졸업식용 햄버거 1만 개를 주문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손에 손에 햄버거봉투 들고 ‘찰칵 찰칵’

“따뜻할 때 드세요!”  고대 졸업식이 열리는 행사장 밖, 학교 사회봉사단 학생들이 찾아온 학부모와 손님들에게 영철버거를 나눠주고 있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따뜻할 때 드세요!” 고대 졸업식이 열리는 행사장 밖, 학교 사회봉사단 학생들이 찾아온 학부모와 손님들에게 영철버거를 나눠주고 있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영철버거, 식장으로 들어가야 돼요!”

졸업식날. 차들로 교문 앞이 꽉 막혔다. 급히 구한 냉동차량은 냉기가 약했다. 햄버거가 상해 버릴까 마음이 급하다. 주차장 표를 끊는 여직원은 냉동차를 보더니 “통과!”를 외쳤다. 출입용 스티커도 없었지만, 10년 세월은 이런 순간 빛이 난다. 주차장 입구에 나와 기다리던 자원 봉사 학생들이 영철버거를 한 짐씩 날랐다. 남은 천 개 햄버거는 학교 아래 가게에서 나눠주기로 하고 영철씨는 가게로 급한 발길을 돌린다.

졸업식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손에는 꽃다발, 졸업증명서 그리고 다른 손에는 햄버거가 든 봉투를 가슴에 안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던가요?”

영철씨가 슬쩍 묻는다. 수십 개 상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서 텅 빈 가게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에게 ‘잊지 못하는 맛’이라고 어떤 학생이 전하던데요.” 그의 표정이 풀린다.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동안 장사하면서 졸업식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같은 하늘 아래 있을텐데 그래도 단골인 학생들이 떠나면 마음이 허전하고 그랬어요.” 애정을 표현하는 게 영 쑥스러운 햄버거 가게 아저씨는 카메라에 대신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꿋꿋하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아저씨가 빌게요. 화이팅!”

후춧가루 뿌린 돼지고기에 양파가 듬뿍 들어간 맛깔스런 햄버거 냄새가 촉촉한 봄비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햄버거 온기 덕분일까, 가슴이 따뜻해진다.

영상·글 조소영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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