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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집건너 빈집 ‘재개발 슬럼가’…낮에도 다니기 무섭다

등록 2010-03-12 09:16수정 2010-03-12 14:32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이아무개양의 주검이 발견된 물탱크 근처 빈집에 11일 오후 토끼 인형과 쓰레기 등이 나뒹굴고 있다. 피의자 김길태씨는 2월 초 두세차례 이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이아무개양의 주검이 발견된 물탱크 근처 빈집에 11일 오후 토끼 인형과 쓰레기 등이 나뒹굴고 있다. 피의자 김길태씨는 2월 초 두세차례 이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덕포동 범행현장 가보니
가로등 드물어 어두 컴컴…거리엔 살림살이 나뒹굴어
인터뷰 요청에 “낯선 사람과 말하기 싫다” 불안 여전
11일 납치·살해 피해자 13살 소녀 이아무개양이 살던 부산 사상구 덕포1동 다가구·다세대 주택가. 대낮인데도 인적은 드물고 을씨년스러웠다. 수업을 마친 자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30대의 여성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를 보더니 “낯선 사람과 말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며 돌아섰다. 2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이곳에서 해가 진 뒤 젊은 여자 혼자서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여긴다”며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지만 너무 어둡고 중·고교생들이 떼지어 몰려다닌다”고 말했다.

이양이 살던 동네는 다세대 주택들이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고, 약간 경사가 있는 골목길은 미로와 같았다.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위쪽으로 갈수록 길이 좁아져 나중에는 사람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특히 이양의 집은 막다른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양의 주검이 발견된 곳과 겨우 20~30m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양의 주검이 발견된 곳 근처에는 ㄷ여중과 ㄱ맨션이 있지만 이들 건물의 앞쪽이 아니라 뒤쪽이어서 이양이 물탱크에 버려지는 모습을 목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곳에서 빈집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양이 살던 다세대 주택 1층도 5가구 가운데 2곳은 이사 가면서 버린 이불과 세간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범죄자나 비행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알기 어려워 보였다. 사상구청 관계자는 “2006년 6월에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가 난 뒤 이 일대 1170여가구 가운데 500여가구가 이사 갔다”고 말했다. 빈방이 500여개나 있는 것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거주자들이 떠나 빈집들이 늘어서 있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의 모습.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재개발을 앞두고 거주자들이 떠나 빈집들이 늘어서 있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의 모습.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주민들은 이양을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의자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불안해했다.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재개발로 인해 주민들이 이 지역을 떠나는 데 시차가 생기면서 시작된 ‘슬럼화’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이뤄질 곳에 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도 있을 리 만무였다.

납치 살해 피의자 김길태씨가 붙잡힌 삼락동의 으슥한 곳은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덕포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신아무개씨는 “덕포동과 삼락동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넘쳐났으나, 신발제조업체인 국제상사가 문을 닫은 뒤부터 슬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이양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평소 범죄 신고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경찰에 불만이 많았다. 김길태씨가 붙잡혔던 ㅎ맨션 근처 미용실 업주 이아무개씨는 “지난 7일 현금 27만원이 든 지갑이 없어져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가족이나 내부자의 소행인 것 같다’면서 단순 사건으로 처리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김씨가 가져간 것 같다”며 몸서리를 쳤다.

경찰 인력의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평소 청소년 범죄와 절도 사건이 많은 덕포1동에만 5000여가구 1만3000여명이 살고 있는데, 이곳을 60여명의 경찰관들이 4조2교대로 담당하고 있다. 경찰 지구대 관계자는 “워낙 지역이 넓어서 도보 순찰도 쉽지 않다”며 “지구대에서 파출소로 바꾸면 순찰을 늘릴 수 있지만, 인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직원들이 격무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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