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 납품을 하다 뒤늦게 이 영역에 뛰어든 대기업 계열사와의 경쟁이 힘겨워 일을 포기한 김종현씨가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간판이 즐비한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안산/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생계업종 발뻗은 대기업
싼값 공세에 거래처 ‘뚝’
“품질·신용도 소용없었다”
싼값 공세에 거래처 ‘뚝’
“품질·신용도 소용없었다”
2006년 김종현(44)씨는 500만원을 빌려 1t짜리 중고 탑차를 샀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다 실패한 그에게 탑차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채소와 어류, 육류 등을 사들여 식당에 납품했다. 성실하고 물건도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듬해부터 서울 강서구의 한 복지관과 구립어린이집, 종로구 구립어린이집 등에도 납품을 했다.
김씨는 매일 새벽 2시에 가락시장으로 향했고, 조금 비싸더라도 가장 싱싱한 재료를 구입했다. 복지관 노인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의 먹거리라는 생각에 전날 산 재료는 납품하지 않았다. 식자재가 남으면 동네 주민들한테 그냥 나눠줬다. 고정 납품처가 생기면서 월수입은 200만원 정도가 됐다.
불안감이 다시 엄습해온 건, 2008년 종로구의 한 어린이집이 “인근 대형마트에서 식자재를 받기로 했다”며 거래를 끊으면서부터다. 김씨는 16일 “그즈음 새벽 가락시장에 가면 복지관, 어린이집에 납품하던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강서구의 복지관과 어린이집들도 지난해 12월31일로 납품을 그만뒀다. 큰 회사들이 어린이집 식자재 구매 입찰에 참가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김씨가 납품하던 자리를 엘지(LG) 관계사인 ‘아워홈’이 차지했고, 지난 3월엔 풀무원 ‘푸드머스’가 추가됐다. 김씨는 “육류·어류 등을 자체 수입하는 대기업과 입찰 단가에서 경쟁이 안 됐다”며 “3년 쌓은 신뢰도 소용이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결국 김씨는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고, 지난 2월 중고 탑차를 폐차했다. 그 뒤로 그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서울시가 “서울형 어린이집 식자재를 개별 구매하지 말고 공급업체를 일원화해 가격을 낮추고 품질도 높이라”는 지침을 내려, 종로구 등 19개 구의 서울형 어린이집이 ‘야채 아저씨’들을 큰 급식업체로 바꾸기도 했다.
대형 급식업체가 진출한 어린이집도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김씨가 납품했던 한 어린이집의 교사는 “야채 아저씨와는 매일 의논해 좋은 식자재를 추천받고 물량을 조절했는데, 지금은 120명 아이들의 일주일치 식자재를 한꺼번에 인터넷으로 주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다른 어린이집 관계자는 “간식 재료인 핫케이크가루 등 소량 주문한 건 배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며칠 전엔 소갈비가 어른도 뜯기 힘들어 모두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 급식업체한테 어린이집은 ‘작은 거래처’일 뿐이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소량 주문을 할 경우 물건이 안 오는 경우도 있고 해산물, 육류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아욱이 제철이었던 봄에 주문을 넣었지만 “제철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야채 아저씨들’의 몰락이나, 어린이집 교사들의 우려는 현실에서 공허한 목소리일 뿐이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들이 이른바 ‘서민형 업종’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곳곳에서 생계를 잃고 방황하는 ‘야채 아저씨’들이 생겨나고 있다. ‘통큰치킨’ 논란을 낳았던 롯데마트가 16일 5000원짜리 치킨의 판매를 중단한 것은 예외적인 사례다.
파리바게뜨 등으로 동네 빵집을 평정한 에스피시(SPC) 그룹은 최근 떡전문점을 냈고, 대기업 계열사인 씨제이(CJ) 푸드빌은 최근 비빔밥 전문점을 열어 동네 상권을 노리고 있다. 통큰치킨에 앞서 ‘저가 피자’ 논란을 부른 이마트 피자도 여전히 골목 상인들을 위협중이다.
엘지 아워홈, 신세계푸드, 현대푸드 등 대기업 계열 외식업체는 지방을 중심으로 수백명대 규모의 중소 구내식당을 잠식하고 있고, 지역 제한 판매제도가 풀린 막걸리 시장에서도 국순당 등 대형 기업들이 지역 소규모 업체들의 ‘영토’를 장악해 가고 있다. 엘지 등 대기업의 계열사들은 1만㎡ 규모의 대형 유통점을 앞세워 중소상인들의 영역이었던 산업 공구류 유통업에도 앞다퉈 진출중이다. 이 밖에도 삼성 계열 보안업체인 에스원은 분묘 분양, 장례 서비스업과 안마의자 사업, 모바일 결제 사업 등에 진출했다. 이런 업종들은 대체로 수요가 꾸준해 자영업자들끼리 경쟁을 하거나, 중소기업들이 진출해 이미 검증된 분야들이다. 임지선 홍석재 기자 sun21@hani.co.kr
엘지 아워홈, 신세계푸드, 현대푸드 등 대기업 계열 외식업체는 지방을 중심으로 수백명대 규모의 중소 구내식당을 잠식하고 있고, 지역 제한 판매제도가 풀린 막걸리 시장에서도 국순당 등 대형 기업들이 지역 소규모 업체들의 ‘영토’를 장악해 가고 있다. 엘지 등 대기업의 계열사들은 1만㎡ 규모의 대형 유통점을 앞세워 중소상인들의 영역이었던 산업 공구류 유통업에도 앞다퉈 진출중이다. 이 밖에도 삼성 계열 보안업체인 에스원은 분묘 분양, 장례 서비스업과 안마의자 사업, 모바일 결제 사업 등에 진출했다. 이런 업종들은 대체로 수요가 꾸준해 자영업자들끼리 경쟁을 하거나, 중소기업들이 진출해 이미 검증된 분야들이다. 임지선 홍석재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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