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금속산업노조 쌍용차지부 한 조합원이 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 발표회 도중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쌍용차 해고자 ‘절망의 1년8개월’
“지금 당장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구조조정 시작 이후 노동자·가족 13명 사망
“지금 당장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구조조정 시작 이후 노동자·가족 13명 사망
고도 우울증 겪는 쌍용차 파업 노동자 중 10명 분석
5일 오전 10시30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자꾸 울먹였다. 그의 뒤로 내걸린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라는 펼침막을 보며 앉아 있던 10여명의 쌍용차 노동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응답자 80%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52.3%가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고 있다(<한겨레> 4월4일치 1면)는 수치를 읽으며 이창근 기획실장은 “바로 내 이야기라 전하기가 너무도 힘겹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깊어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힘겨운 현실을 오롯이 담고 있다. 우울증 항목에 응답한 노동자 190명 가운데 152명이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보였다. 특히 이들 중 치료가 시급한 고도 우울증상을 보인 사람이 95명에 달했다. 파업 중에도(1차 조사), 파업 직후에도(2차 조사)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신적 상처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최근 1년간 쌍용차 노동자의 자살률(10만명당 151.2명)은 일반인의 3.7배까지 치솟았다.
고도 우울증상을 겪는 95명의 응답 자료에는 이들이 절망 속에서 얼마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최근 1년간 자살 시도 경험, 이혼, 별거, 자녀와의 관계 매우 나쁨, 해고 뒤 일용직으로 한달에 50만원 수입, 빚 급증 등을 의미하는 답변이 이어진다. 이들 가운데 10명만 추려 정리(그래픽)해봐도 “지금 당장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쌍용차 노동자들은 모두 죽음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는 이창근 기획실장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4월 회사 쪽의 대규모 구조조정 발표로 인해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야 했다. 회사를 떠난 노동자들 상당수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퇴직 형태에 따라 정신적 상처의 정도는 차이가 났다. 고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비율은 강제해고자가 58.3%(24명 중 14명)로 가장 높았고, ‘1년 무급휴직 뒤 복직’을 약속받고도 600일이 넘도록 복직을 하지 못한 무급휴직자가 53.7%로 그 뒤를 이었다. 정리해고자의 50%, 희망 퇴직자의 23.8%도 고도 우울증상을 보였다.
고도 우울증상을 보이는 이들의 38.7%가 최근 1년간 자살 시도를 했다. 쌍용차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로 자살하거나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노동자나 그 가족은 13명에 달한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53.9%), 미혼(54.1%), 근속 16년 이상(55.2%), 현재 무직(52.4%)일수록 고도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극도의 우울 상태에 있는 이들이지만 지난 2년여의 투쟁 과정에서 보살핌을 받은 이들은 거의 없다. 최근 이들을 평택시청에 모아놓고 ‘집단 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현재 상담을 하고 있는 13명의 노동자들 모두가 자살 시도 경험을 털어놓았고 파업 이후 회사 쪽과 사회의 냉대 속에 죽음에 내몰리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실태조사를 벌인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파업 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감 속에 괴로워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유럽의 기준을 되새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규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이제라도 쌍용차가 이벤트성 대책이라도 내놓아 노동자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쌍용자동차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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