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가출한 캄보디아 출신 재은이 엄마(왼쪽)가 12일 오후 서울의 한 거처에서 어머니와 손을 맞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근로빈곤층과 희망나누기] 갑상선암 앓는 재은엄마
‘잘산다’ 속아 캄보디아 떠나
임신중에도 가정폭력 시달려
“어린 두 아이 지키고 싶어요”
‘잘산다’ 속아 캄보디아 떠나
임신중에도 가정폭력 시달려
“어린 두 아이 지키고 싶어요”
지난해 8월 도망쳤다. 생후 8개월이 된 둘째아이를 업고 첫째딸 재은(3)의 손을 잡은 채였다. 전북 부안에서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정읍으로 향할 때 재은이 엄마(29)의 주머니에 있는 돈은 3만원이 전부였다. 정읍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갔다. “남편이 잡으러 오지 못하게 어디든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전날 남편(38)은 재은이 엄마의 목을 조르며 숫돌을 집어들었다. 옷이 갈기갈기 찢겨 알몸이 된 채 재은이 엄마는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소파로 던져버린 둘째아이는 자지러졌다. 함께 살던 시부모가 달려와 남편을 말렸고 재은이 엄마는 목숨을 건졌다. 방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잠시 뒤 출동한 경찰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시아버지가 “누가 경찰에 신고를 했느냐”며 헛기침을 했다.
재은이 엄마는 2006년 12월 한국에 왔다. 캄보디아 캄퐁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재은이 엄마에게 한국의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한번 만나고 결혼한 남편은 말도 통하지 않는 부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성관계를 요구했다. 전쟁 같은 성관계 속에서 곧 임신을 했다. 한국 음식에 적응도 못한 상태에서 입덧을 시작했다.
한국에 오기 전 결혼정보업체에서는 “남편 될 사람이 땅도 많이 갖고 있고 대학도 나왔다”고 했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4남매 중 맏이인 남편은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일은 하지 않고 온종일 누워 텔레비전만 봤다. 시아버지는 홀로 농사를 지었고, 시어머니는 집 근처 공장에 나가 한달에 100만원을 벌어왔다.
“한국 가면 잘산다는 말만 믿고 잘 모르는 사람과 결혼한 것이 잘못”이라며 자책의 밤을 보냈다. 재은이 엄마는 캄보디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캄퐁참 지역 여성 중 높은 학력에 속한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도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다. 수도 프놈펜의 미용실에서 먹고 자며 5년을 일했다. 보수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밑으로 남동생만 4명인 재은이 엄마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국으로 시집가면 동생들 공부를 시킬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입이 전혀 없는 남편 대신 재은이 엄마는 임신을 한 상태로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캤다. 조개를 판 돈과 시어머니가 월급에서 떼어주는 10만원 정도가 부부 수입의 전부였다. 지난해 집을 나올 때 재은이 엄마의 통장 잔고는 8만원이었다.
임신 2개월 때 처음으로 남편에게 맞았다. 산에 올라가 나무 몽둥이로 때리다가 재은이 엄마가 쓰러지자 발로 마구 밟았다. 몸이 아파 밤새 울다가 부산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남동생을 찾아갔다. 남동생이 누나의 몸 상태를 보더니 “내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볼 테니 아기 지우고 함께 살자”며 펑펑 울었다. 이후 재은이 엄마는 부산에서 3개월 동안 자동차 부품 공장에 다녔다.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하루 12시간30분을 일해 월급 100만원을 받았다.
공장에서 일하던 중 남편에게 맞은 자리가 너무 아파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로 옆구리를 찍으니 부러진 갈비뼈와 뱃속 아기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 필름을 보며 또 울었다. 배가 불러오자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됐다. 신발공장으로 옮겼다. 월급은 80만원으로 줄었다. 배가 몹시 아팠던 어느 날 밤 재은이 엄마는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기댈 곳이 없었다.
“변하겠다”던 약속도 잠시, 남편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부인은 물론 아기와 시부모까지 폭행했다. 다시 전쟁 같은 잠자리가 이어졌고 둘째를 임신했다. 남편은 “아침에 깨운다”는 이유만으로 임신한 아내를 때렸다. 이혼을 요구하자 시어머니가 “너 캄보디아에서 데려오느라 들어간 돈이 얼만데 이혼이냐”며 눈을 흘겼다. 만삭인데도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캤다. 둘째 출산 직후부터 재은이 엄마는 몸져누웠다. 눈이 튀어나왔고 목이 부어올랐다. 갑상선 이상이었다. 지난해 여름, 광주로 도망쳐 나와 온종일 잘 곳을 찾던 재은이 엄마는 밤이 되어서야 세살배기 재은이의 부은 발을 봤다. 아이는 하루종일 굶고도 보채지 않았다. 밤늦게 첫 끼니를 때우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전화를 해줬다. 소개의 소개가 이어져 지난 12월 서울의 한 쉼터에 입소하게 됐다. 그제야 재은이 엄마는 몸져누웠다. 쉼터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으니 갑상선암이었다. 지난 1일 수술을 받았다. 비로소 딸의 사연을 알게 된 재은이 할머니(51)가 한국에 왔다. 모녀는 얼싸안고 한없이 울었다. “저는 이제 한국 사람이고 애들도 한국 사람이에요. 저와 제 아이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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