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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코리안드림 깨졌지만 아이마저 잃을수야…

등록 2011-11-29 21:17수정 2011-12-28 22:48

지난 2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 병실에서 생후 9개월의 은호(가명)가 항암치료를 받기 전 엄마 품에 안겨 수액 주사를 맞고 있다.  고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 병실에서 생후 9개월의 은호(가명)가 항암치료를 받기 전 엄마 품에 안겨 수액 주사를 맞고 있다. 고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근로빈곤층과 희망나누기] ‘백혈병 아기’ 조선족 부모의 꿈
[근로빈곤층과 희망나누기] ‘백혈병 아기’ 조선족 부모의 꿈

4년전 중국 심양서 한국행
결혼식도 미루고 아등바등
5개월 아기 병마 ‘날벼락’
항암 사투에 울기도 지쳐

골수이식은 기약이 없고
수천만원 치료비에 ‘허덕’

지난 2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국립암센터 9층 병실에서 만난 은호(생후 9개월·가명)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져 뽀얀 두피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에 꽂은 링거 호스는 옷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항암치료를 8번이나 이겨낸 씩씩한 아기는 낯선 기자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난 7월, 은호의 몸 군데군데 붉은 반점이 생겼다. 엄마 김아무개(30)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집 근처 동국대병원에 은호를 데려갔다. 조직검사를 받은 뒤 의사는 “에이엔시(ANC) 수치가 낮게 나왔다”고 했다. 김씨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의사가 다시 “백혈병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 병원 권유로 국립암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한 뒤 은호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은호를 입원시키는 동안 김씨는 ‘내가 큰 잘못을 해서 우리 은호가 이런 아픔을 겪는 게 아닐까’하고 자책했다.

조선족인 김씨는 중국 선양(심양)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다 물건 배달하는 조선족 박아무개(36)씨를 만났다. 2007년 결혼해 11월 한국으로 건너왔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를 잡고, 남편은 일용직 노동 일을 하고 김씨는 식당, 마트, 아웃렛 등을 돌며 일했다. 부부는 착실히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했다. 최근에는 경기도 김포와 파주 쪽에 건설 공사 일자리가 많이 생겨 일산으로 이사했다. 용인에서는 월 30만원짜리 월세에 살다가 지난해 은호를 임신하면서 빚을 내 5500만원짜리 전세로 옮겼다.

김씨 부부는 지난해 4월 영주권을 발급받았다. 그리고 올해 2월 은호를 낳았다. 여태껏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는 지난달 16일을 결혼식 날짜로 잡았다. ‘정식으로 결혼식도 하고, 은호를 잘 키워 공부시키고,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김씨는 부푼 희망에 밤잠을 설쳤다. “우리도 열심히만 하면 평범한 한국인들처럼 아파트에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넉달 전 찾아온 은호의 발병 소식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김씨 부부의 코리안드림을 한번에 깨트렸다. 김씨 부부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암세포와 싸우는 은호를 간호하고 있다. 아이의 가슴에는 주사바늘이 들어갈 포트가 박혀 있다. 매일 수액과 치료약, 항암제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은호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포트에 꽂힌 주사바늘이 움직이는 바람에 수액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가 가슴이 부풀어오르기 일쑤다. 심하게 몸부림치면 바늘이 뽑히기도 한다.


암세포는 은호의 척수와 뇌에서도 발견됐다. 성분이 강한 항암제를 쓰다 보니, 폐와 장이 상했다. 은호는 먹으면 토하고 설사를 했다. 은호가 아파서 울 때면 김씨의 마음은 쓰렸다. 그러나 은호가 우는 것조차 지쳐서 멍하게 있을 땐 더욱 쓰렸다.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김씨 부부는 골수 이식에 희망을 걸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은호와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 홍콩, 타이완 등 국외에도 찾아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국에 은호와 디엔에이(DNA)의 절반이 일치하는 사람이 4명 있다고 한다. 김씨는 그들이 검사에 응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골수 이식이 가능하더라도 치료비가 문제다. 골수 이식에 약 7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지금도 치료비는 매달 1000만원가량 나온다. 김씨 부부는 적금을 깨고, 지인들에게 빌리고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다. 김씨 혼자 간호하기엔 역부족이라 남편도 종종 돕는데, 한때 월 200만원 가까이 벌던 남편은 이 때문에 월 60만원 수준으로 수입이 줄어든 상태다. “미국 가면 치료할 수 있다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 근데 방법이 없어요.” 김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백혈병어린이재단, 국립암센터 등에서 지원해줘 버티고 있다. 김씨는 보험이라도 들었다면 이렇게 사회에 부담을 안 끼쳤을 거라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여줬다는 것에도 무척 감사해 했다. “중국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찌됐을까 생각해보니 막막하더라고요. 은호를 도와준 게 너무 감사해요. 은호가 나으면 저도 다른 사람 도우면서 보답하고 싶어요.” 고양/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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