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산악연맹 청소년 오지탐사대 대원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아프리카 우간다의 르웬조리산 마르게리타봉을 오르기 위해 7명씩 서로의 몸을 밧줄로 연결한 채 눈밭을 지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대한산악연맹 청소년 오지탐사대원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적도상에 만년설이 덮여 있어 ‘열대 빙하’라 불리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르웬조리산 마르게리타봉(5109m) 정상에 올랐다. 전국에서 뽑힌 만 18~25살의 대원 열두명과 우간다 젊은이 두명이 안자일렌(위험한 곳을 오르내릴 때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는 것)을 한 채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르기 힘들다는 5000m급 ‘물의 산’(반투어인 르웬조리의 뜻) 정상에 함께 선 것이다. 탐사대장을 맡은 충남 공주 청양초등학교 교사 이세중(48·대한산악연맹 산악스키부문 이사)씨는 “이 정도 높이면 15~20%의 인원이 고산병으로 등반을 포기하는데, 고된 훈련과 젊은이 특유의 정신력으로 전원 등정이 가능했던 것 같다”며 기뻐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가 산행 전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헉~헉~,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어 보지만 가슴은 더 답답하기만 하다. 호흡이 되지 않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계속되고, 메슥거림도 심해진다. 한 발자국이 천근처럼 무겁다. 7명이 한 조를 이뤄 밧줄로 서로 몸을 묶었기에 뒷사람이 처지면 줄이 당겨져 올라갈 수가 없다.
만년설에 누워 눈밭 구간을 지나며 탈진한 김건우(맨 앞부터), 김종호, 박재범 대원이 쓰러져 쉬고 있다.
훈련 때 체력이 좋기로 정평이 난 순천대 산악부장 김건우 대원(25·순천대 생명자원학과 3년)이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에 주저앉았다. 정상을 수백m 앞두고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우간다 법률에 의해 르웬조리 국립공원 산행에 의무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전문가이드가 “더 이상의 산행은 무리”라며 선두가 내려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쉴 것을 권한다. 4500m대의 부주쿠 산장에는 “최근 5년간 이 구간에서 2명의 고산병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가이드의 권고에 반드시 따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김 대원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한걸음이 안되면 반걸음씩이라도 올라가겠다는 각오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로 묶은 줄이 다시 팽팽해지며 힘이 전해졌다.
고생했다, 발 허리까지 빠지는 진흙 구간을 통과하느라 장화 속 발이 젖은 대원들이 버너 불에 발을 말리고 있다. 한 대원이 이 틈에 감자를 젓가락에 꽂아 굽고 있다.
별빛아래 청춘 4500m대에 있는 부주쿠 산장 앞에서 대원들이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르웬조리산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청춘’이란 글자를 헤드랜턴 불빛으로 만들었다.
눈밭이 끝나자 사자의 머리처럼 생긴 세락(빙하 속에 있는 커다란 탑 모양의 얼음 덩어리)이 앞을 가로막았다. 사고가 빈번한 구간이다. 조심스레 이곳을 통과한 뒤 안자일렌을 풀고 한명씩 기다시피 바위를 오른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드디어 정상이다.
때론 아빠같이 자상하고 때론 선생님처럼 엄격했던 이세중 대장이 대원들을 차례로 끌어안았다. 김혜림, 최주진, 김현미 대원 등 여성대원들이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함께 했기에 할 수 있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군을 장교로 전역한 뒤 행정 책임을 맡아 탐사대의 일에 몰두해 온 김재훈(25·한국외대 행정학과 졸업) 대원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4천m대에 오르면서 두통과 추위에 시달려온 사이먼 피터 루기가나 대원(우간다 마케레레대 기업통계학 3년)은 “체력이 약한 사람을 행렬의 앞에 세우는 한국의 공동체 정신이 우리 모두를 정상에 세운 것 같다”며 환호했다.
너와 나, 밧줄로 하나되어 해가 뜨면 눈이 녹아 미끄러질 것을 우려해 26일 새벽 정상 등정에 나선 김원 대원(맨 앞) 등 탐사대원들이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은 채 빙하 구간을 건너고 있다.
하지만 산을 내려가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김진성 대원(24·유학 준비중)이 설산을 내려오던 중 크레바스에 발이 빠져 뒹굴다 동료들이 줄을 잡아준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다음날엔 산행 내내 고산병을 겪지 않아 가장 씩씩했던 김원 대원(홍익대 조소과 4년)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20여m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배낭이 충격을 줄여줘 응급처치 뒤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큰 산이 처음인 젊은이들은 “고산병은 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로, 겸손을 가르쳐준다”는 산악인들의 경구를 몸으로 익혔다. 대한산악연맹은 아프리카 르웬조리산 외에도 페루 안데스, 키르기스탄 악쉬락 산군 등 세계의 산악 오지 6곳에 대한 탐사를 벌였다.
커시지(우간다)/글·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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