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규(48)씨가 딸 혜경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다. 혜경이는 올해 칭다오의 조선족소학교인 청양정양학교에 입학했다.
일곱살 혜경이는 아침 6시에 일어난다.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조선족 소학교(초등학교)에 도착한다. 그가 다니는 칭다오시 청양정양학교는 동북3성 바깥에서 유일하게 정부 인가를 받은 조선족학교다. 유치원생을 포함해 500여명의 조선족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2000년 8월 문을 연 학교는 영어·수학을 중국어로, 나머지 과목을 조선말로 가르친다. 그래도 혜경이의 생활언어는 중국어다. 집에 돌아오면 중국어 방송에서 만화를 본다.
혜경의 아버지 장학규(48)씨는 원래 항저우(항주)에서 사업을 했다. “더 있다가는 딸이 우리말도 못 배우고 한족 아이가 되겠다 싶어” 딸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칭다오로 이사했다. 민족교육에 대한 소신은 집안 내력이다. 흑룡강성 목단강의 한족 마을에 살았던 장씨의 아버지는 멀리 떨어진 옆동네 조선족학교에 아들을 보냈다. 장씨의 아버지는 한족 마을을 ‘되놈 마을’이라 불렀다.
민족적 자부심을 딸에게 물려주려는 장씨는 한 학기 학비로 4800위안(약 85만원)을 낸다. 동북지역 조선족학교가 공립인 것과 달리 청양정양학교는 사립이다. 칭다오에선 돈이 있어야 민족교육을 시킬 수 있다. 칭다오의 조선족학교는 청양정양학교와 아직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서원장학교 2곳뿐이다. 칭다오 조선족 인구 13만명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자녀를 민족학교에 보내려는 조선족이 많지 않다.
“예전엔 동북 농촌마을을 벗어날 일이 없으니 중국어가 필요없었는데, 청도에서는 중국말 잘 못하면 업신당하니까 자식들을 한족학교에 보낸다”고 장씨가 조선족 학부모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것은 경험에서 비롯한 선택이다. 중국어를 못하면 한족과 사귈 수 없고 한족을 모르면 도시에서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민족교육의 소신은 시장경쟁 앞에서 무기력하다. 칭다오/유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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