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이버 민족방위사령부’에 북한 찬양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창남(가명)씨가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거리에 서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두 개의 전쟁 〈상〉민족방위사령부
1948년 12월1일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기본권을 유린하는 ‘반헌법적 악법’이라는 비판이 반세기 이상 끊이지 않았다. 민주정부 시기 그 효용을 다한 듯 보였던 보안법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의 이적표현물을 문제삼으며 다시 한번 보안법 위반자를 색출하고 있다.
‘친북카페’ 또는 ‘종북카페’라는 단어는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 등장했다. ‘사이버 안보사범’을 대대적으로 단속한 검경이 이름붙였다. 그 명명에는 카페 회원 전체를 종북주의자로 낙인찍는 효과가 있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런 한국에서 친북·종북의 낙인은 사회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그 회원들은 해당 카페를 ‘통일카페’라 부른다. 이번 기사에선 카페 및 그 회원에 대한 ‘낙인’을 최대한 지양하되, 해당 취재원의 판단 기준에 맞춰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라는 단어를 번갈아 쓴다.
지난 9월부터 두달에 걸쳐 이들 카페 회원 등 수사 대상자 12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해외에 있거나 대면이 여의치 않은 10명은 전화·전자우편·채팅 등으로 인터뷰했다. 이밖에 21명의 카페 회원을 상대로 심층 설문조사를 했다. 그들의 가족과 담당 변호사를 만났고, 검찰과 경찰의 관계자를 접촉했다. 문제의 카페에 올라온 수백쪽 분량의 글,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 등도 검토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들은 이름·거주지·직장·가족관계·학력 등에서 철저한 익명 보장을 요구했다.
직장인·자영업자·주부…그들은 되묻는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 글 쓰면 안되는 거죠?” 지난 8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라는 제목의 기사가 몇몇 보수언론에 실렸다.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이하 사방사) 카페 회원이자 <두개의 전쟁전략> 집필자인 황아무개(43)씨가 항소심 법정에서 “…만세”를 외쳤다는 내용이었다. 때맞춰 신임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사이버 공간에 암약하는 종북세력”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그들은 북한에서 내려보낸 간첩이 아니다. 정당·노조활동을 한 것도, 재야 통일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적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 회원들은 그 질문을 받고 오히려 되물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 글을 쓰면 안 되는 거죠?” 이들 가운데는 “<한겨레>도 믿을 수 없다”며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겨레>의 접촉에 응한 40여명이 이른바 ‘사이버 친북세력’을 얼마나 대표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처지임에도 두달에 걸쳐 거듭 만나며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한 이들은 ‘확신 세력’인 것이 분명했다. 그 신념의 바탕에는 민족·군사·반미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각종 ‘통일카페’는 2000년대 초반 생겨났다. 가장 큰 규모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가 개설된 2002년에는 효순·미선 사건, 미 F-15K 전투기 도입 논란, 겨울올림픽 오노 사건 등이 있었다. 카페 초기부터 회원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군사 지식을 뽐내는 논쟁을 벌이며 ‘강력한 민족국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열성 회원들은 비무장평화의 이상보다 군사력에 바탕을 둔 강대국의 미래에 더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0·90년대 ‘주사파’와도 달라
사상·이념에는 관심도 없어
“정부·언론 발표 밖에 없는
북한 정보 제대로 알고 싶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이들 카페의 저변을 넓혔다. 인터뷰에 응한 ‘통일카페’ 회원들 상당수가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접속했으며, 더 전문적인 국제정세 분석 카페를 찾다가 ‘사방사’ 등에 가입한 경우였다. 그들은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게 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설명할 논리적 근거를 갈구했다. 강력한 군사력에 대한 동경과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이 북한을 만난 계기는 ‘천안함 사건’(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이었다. ‘대북 강경론’의 근거가 됐던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역설적이다. 40대 변호사 이철범(가명)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 진실을 알고 싶어 의혹을 추적하다가 카페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시기를 경계로 평범한 누리꾼들의 범상한 카페 활동은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다. 네이버의 ‘사방사’ 카페 회원이 7000명을 넘어섰고, 비슷한 성향의 다른 카페에도 1000여명의 회원이 몰렸다. 40대 주부 민정아(가명)씨는 연평도 포격사건 직전인 지난해 10월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북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언론 매체가 없지 않나요? 북한 지도자를 찬양하자는 게 아니라, 카페를 통해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거예요.” 인터뷰에 응한 ‘통일카페’ 회원 모두가 민씨와 다르지 않았다. 기성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믿지 않았다. 50대 자영업자 최지훈(가명)씨는 “강대국들이 항상 북한에 ‘강력 조치하겠다’고 해놓고 총 한번 쏜 적 없는 걸 의아하게 여겨 스스로 정보를 찾고자” 카페에 가입했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북한에 대해 정부와 언론 발표 말고는 알 길이 없었잖아요.”
정부·언론에 대한 불신은 북한 체제 비판을 부정하는 바탕이 된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 탈북자의 인권 등에 대해 묻자 “직접 보지 않아 믿을 수 없다”고 카페 회원들은 답했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대해서는 “1~2년도 아니고 60여년 동안 같은 체제로 유지되는 것은 강압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적잖았다.
‘통일카페’ 회원의 인구학적 분포는 여느 카페와 별 차이가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도 “회원들의 직업·학력·혼인 여부 등에선 다른 카페 회원들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중소 자영업자와 직장인이 다수를 이루고 전문직 종사자도 일부 있다. <한겨레> 설문에 응한 카페 회원 가운데 신상을 밝힌 20명 중 7명은 직장인, 6명은 자영업자였다. 나머지는 주부·학생·종교인 등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 안팎의 남성이 다수다. 회원들은 “‘반공 교육’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인터넷에 익숙하면서도 민족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설명한다.
“패권국에 맞선 작은 나라
그 힘에 민족적 자긍심 느껴”
‘미국 주도의 현실’ 반감과
‘강력한 군사력’ 동경 치달아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통일카페’ 회원들의 관심은 북한에 더 집중됐다. 회원 대다수의 ‘활동’은 유튜브·외신 등에서 구한 북한 관련 정보를 카페에 올리고 이를 분석하는 데 맞춰졌다. 40대 자영업자 박석운(가명)씨는 “당국이 폐쇄한 북한 사이트에 들어가 자료를 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차단된 (북한이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프록시 서버를 이용해 들어가 자료를 모을 거라고 (공안당국이) 추정하던데, 그렇지 않아요. 북한과 관련해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가 얼마나 많은데요. 북한의 힘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정보를 우리가 공동작업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거죠.” 수집된 정보는 여러 해석에 의해 보충된다. 파편적 정보는 때로 과장된 해석을 낳는다. <…전쟁전략>을 쓴 황아무개(43)씨는 김 위원장이 어느 농장을 방문한 사진에 대한 해석에서 “배경에 펼쳐진 (북한 현지의) 농장 지도가 장차 북한이 점령하게 될 미국 영토를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80·90년대 학생운동권을 지배했던 ‘주체사상파’와 확연히 다르다. 카페 회원 가운데 북한이 펴낸 <주체사상 총서> 등을 접한 이는 없었다. 사상·이념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북한 당국과 연계를 맺는 일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온라인에 퍼진 북한의 군사·무기·외교 정보를 모으고 해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전쟁전략>이 이들 사이에서 ‘독보적 분석물’로 꼽히게 된 것도 군사·무기 체계에 대한 세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종북세력’으로 불리는 그들의 정서에 영토 확장을 꾀하는 보수 민족주의가 깃들어 있는 점은 흥미롭다. ‘사방사’ 개설자인 황씨의 <…전쟁전략>에는 “일본도 우리땅, 미국 서부도 우리땅, 북방 고토도 우리땅”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쟁전략>을 읽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는 김창남(가명·41)씨도 “그때의 기분은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민족의식이 고취될 때와 같았다”고 말했다. <무궁화꽃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 미국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던 물리학자를 다룬 소설이다. 문단에서는 보수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다. “‘패권국’ 미국에 맞서, 남한이 못하는 걸 유일하게 그 작은 나라, 북한이 하고 있는 거예요. 그 힘을 뒤늦게 알게 되니 매료되고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된 거죠.” 김씨가 말했다. “비정상적 놀이터를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수사
찬양에 현실적 실천력 없어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죠?”
“북한은 적이 아니며, 강력한 군사력과 우수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기대의 한쪽 끝엔 “한국은 그러지 못하며 미국에 종속돼 있다”는 실망감이 있다. 이들은 민족문제는 물론 ‘인간성·공동체 정신의 결여’라는 한국 사회의 문제까지 북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유치원생 딸을 둔 자영업자 최지훈(가명)씨는 “내가 애 아빠라서 국제정세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쟁이 나면 우리 딸은 어떻게 지키지? 주변에 비정규직이 이렇게 많은데, 한국에서 살아갈 우리 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 직장인 황아무개(42)씨의 설명도 비슷하다. “외환위기 때 회사가 부도 나고 개인은 해고됐잖아요. 가장이 경제적 능력을 잃으면 누가 가족을 돌보죠? 정부도 사회도 아니잖아요. 가장이 쓰러지면 가족을 돌볼 사람이 없는 체제가 과연 맞나, 생각했어요. 결국 답은 북한이었죠.”
황씨의 신념은 한국 사회 다수와 분명히 구분된다. 다만 그 신념이 한국 사회를 실제로 위협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들은 현실에서 평범하고 조용한 개인이었고, 온라인에서는 열성적이지만 고립주의를 즐기는 누리꾼이었다. 회원들은 퇴근 뒤 컴퓨터 앞에서 ‘온라인 활동’만 했다. 직장 동료는 물론 가족들도 이들의 ‘신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당국의 수사를 받는 회원들이 모여 지난 4월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을 만들었지만, 오프라인 모임 참가자는 20여명밖에 안 된다. 상당수는 국가보안법에 의거한 당국의 수사조차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
이들의 대응 방식은 과거 재야 통일단체 등과 다르다. “기존 (재야) 단체들은 국가보안법 수사에 대해 ‘조작·위법’을 주장하지만, 우리는 ‘현행법상 죄가 맞지만, 그 법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죠.” 피해자모임에 나가는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재야 단체와) 함께 (대응) 하기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신념이 더 강화되기도 한다. <…전쟁전략>을 쓴 황씨는 문제의 글에서 김일성 주석 또는 김정일 위원장 등 북한의 ‘공식 직함’만 사용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 문구’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 기소 이후 황씨의 발언은 더 과감해졌다.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우리 민족의 태양이시고 우리 인민의 아버지이신 김일성 수령님… 폐하는 우리 인민의 영원한 중심”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북한의 언어와도 달랐다. 북한에서는 ‘폐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카페 회원들은 “변호사들도 우릴 100%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법정에서 당당하게 제 신념을 표현하고 그 처벌을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장경욱 변호사는 그들 가운데 상당수의 변론을 맡았다. 장 변호사조차 그들과 공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의 “김정일 만세”에 대해 장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가장 순진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죠. 그 찬양엔 현실적 실천력이 없어요.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죠? 이들의 ‘비정상적 놀이터’를 수사당국은 최고 수준의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평가하여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이들에 대한 수사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대검찰청 공안부는 “일부 누리꾼이 인터넷을 통해 북한 찬양 행위를 하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유관기관과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 회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국의 수사로 인해 제 신념을 버리게 됐다는 이는 취재 과정에서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 하편 ‘절대시계의 힘’에서 이른바 ‘친북세력’을 추적·고발하는 보수 누리꾼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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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 글 쓰면 안되는 거죠?” 지난 8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라는 제목의 기사가 몇몇 보수언론에 실렸다.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이하 사방사) 카페 회원이자 <두개의 전쟁전략> 집필자인 황아무개(43)씨가 항소심 법정에서 “…만세”를 외쳤다는 내용이었다. 때맞춰 신임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사이버 공간에 암약하는 종북세력”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그들은 북한에서 내려보낸 간첩이 아니다. 정당·노조활동을 한 것도, 재야 통일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적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 회원들은 그 질문을 받고 오히려 되물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 글을 쓰면 안 되는 거죠?” 이들 가운데는 “<한겨레>도 믿을 수 없다”며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겨레>의 접촉에 응한 40여명이 이른바 ‘사이버 친북세력’을 얼마나 대표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처지임에도 두달에 걸쳐 거듭 만나며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한 이들은 ‘확신 세력’인 것이 분명했다. 그 신념의 바탕에는 민족·군사·반미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각종 ‘통일카페’는 2000년대 초반 생겨났다. 가장 큰 규모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가 개설된 2002년에는 효순·미선 사건, 미 F-15K 전투기 도입 논란, 겨울올림픽 오노 사건 등이 있었다. 카페 초기부터 회원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군사 지식을 뽐내는 논쟁을 벌이며 ‘강력한 민족국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열성 회원들은 비무장평화의 이상보다 군사력에 바탕을 둔 강대국의 미래에 더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0·90년대 ‘주사파’와도 달라
사상·이념에는 관심도 없어
“정부·언론 발표 밖에 없는
북한 정보 제대로 알고 싶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이들 카페의 저변을 넓혔다. 인터뷰에 응한 ‘통일카페’ 회원들 상당수가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접속했으며, 더 전문적인 국제정세 분석 카페를 찾다가 ‘사방사’ 등에 가입한 경우였다. 그들은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게 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설명할 논리적 근거를 갈구했다. 강력한 군사력에 대한 동경과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이 북한을 만난 계기는 ‘천안함 사건’(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이었다. ‘대북 강경론’의 근거가 됐던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역설적이다. 40대 변호사 이철범(가명)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 진실을 알고 싶어 의혹을 추적하다가 카페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시기를 경계로 평범한 누리꾼들의 범상한 카페 활동은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다. 네이버의 ‘사방사’ 카페 회원이 7000명을 넘어섰고, 비슷한 성향의 다른 카페에도 1000여명의 회원이 몰렸다. 40대 주부 민정아(가명)씨는 연평도 포격사건 직전인 지난해 10월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북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언론 매체가 없지 않나요? 북한 지도자를 찬양하자는 게 아니라, 카페를 통해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거예요.” 인터뷰에 응한 ‘통일카페’ 회원 모두가 민씨와 다르지 않았다. 기성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믿지 않았다. 50대 자영업자 최지훈(가명)씨는 “강대국들이 항상 북한에 ‘강력 조치하겠다’고 해놓고 총 한번 쏜 적 없는 걸 의아하게 여겨 스스로 정보를 찾고자” 카페에 가입했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북한에 대해 정부와 언론 발표 말고는 알 길이 없었잖아요.”
공안 당국이 문제 삼은 카페들은 속속 폐쇄되고 있다. 당국이 이른바 ‘친북카페’로 분류한 네이버의 어느 카페 초기 화면에 “수사기관(경찰청)의 공식 요청에 따라 이용(접근)이 제한된 상태”라는 알림이 떠 있다.
그 힘에 민족적 자긍심 느껴”
‘미국 주도의 현실’ 반감과
‘강력한 군사력’ 동경 치달아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통일카페’ 회원들의 관심은 북한에 더 집중됐다. 회원 대다수의 ‘활동’은 유튜브·외신 등에서 구한 북한 관련 정보를 카페에 올리고 이를 분석하는 데 맞춰졌다. 40대 자영업자 박석운(가명)씨는 “당국이 폐쇄한 북한 사이트에 들어가 자료를 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차단된 (북한이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프록시 서버를 이용해 들어가 자료를 모을 거라고 (공안당국이) 추정하던데, 그렇지 않아요. 북한과 관련해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가 얼마나 많은데요. 북한의 힘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정보를 우리가 공동작업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거죠.” 수집된 정보는 여러 해석에 의해 보충된다. 파편적 정보는 때로 과장된 해석을 낳는다. <…전쟁전략>을 쓴 황아무개(43)씨는 김 위원장이 어느 농장을 방문한 사진에 대한 해석에서 “배경에 펼쳐진 (북한 현지의) 농장 지도가 장차 북한이 점령하게 될 미국 영토를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80·90년대 학생운동권을 지배했던 ‘주체사상파’와 확연히 다르다. 카페 회원 가운데 북한이 펴낸 <주체사상 총서> 등을 접한 이는 없었다. 사상·이념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북한 당국과 연계를 맺는 일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온라인에 퍼진 북한의 군사·무기·외교 정보를 모으고 해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전쟁전략>이 이들 사이에서 ‘독보적 분석물’로 꼽히게 된 것도 군사·무기 체계에 대한 세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종북세력’으로 불리는 그들의 정서에 영토 확장을 꾀하는 보수 민족주의가 깃들어 있는 점은 흥미롭다. ‘사방사’ 개설자인 황씨의 <…전쟁전략>에는 “일본도 우리땅, 미국 서부도 우리땅, 북방 고토도 우리땅”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쟁전략>을 읽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는 김창남(가명·41)씨도 “그때의 기분은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민족의식이 고취될 때와 같았다”고 말했다. <무궁화꽃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 미국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던 물리학자를 다룬 소설이다. 문단에서는 보수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다. “‘패권국’ 미국에 맞서, 남한이 못하는 걸 유일하게 그 작은 나라, 북한이 하고 있는 거예요. 그 힘을 뒤늦게 알게 되니 매료되고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된 거죠.” 김씨가 말했다. “비정상적 놀이터를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수사
찬양에 현실적 실천력 없어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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