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원공사 중인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앞에 펼쳐졌다. 신과 인간의 경계, 프로필레아를 통해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에 들어갔다. 아크로폴리스는 군사적 요새일 뿐 아니라 정치·종교적 중심이었던 그리스인들의 원초적 고향이다. 아크로폴리스 아래로는 인간의 세상, 아테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테네를 수호하는 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은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신전 안에는 대형 크레인이 설치돼 있고,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노동자들이 기둥을 보수하거나 돌을 깎는 등 복원공사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고고학자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이 도면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테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렀던 아크로폴리스는 사람들의 발길 탓인지 돌들이 맨질맨질할 정도로 윤기를 띄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아테네의 어디에서나 보인다. 아테네에서는 높은 지점마다 국기를 걸어놓는 듯하다. 저 국기 게양대는 역사가 깊다. 점령 시기 독일군들도 이곳에 올랐다. 그들도 파르테논 신전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 국기가 걸렸던 그 자리에 나치 독일기를 내걸었다.
그리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에 기를 내걸면 그것 자체가 주는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했으리라. 오전 9시30분이 되자 관광객들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기를 끌어내렸던 마놀리스 글레조스는 90살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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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를 오른 두 청년 1941년 5월30일 새벽, 20살 청년 마놀리스 글레조스와 아포스톨로스 산타스가 아크로폴리스 절벽을 기어올랐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른 이들은 독일군들의 눈을 피해 그곳에 나부끼는 나치 독일기를 끌어내렸다. 기를 떼어낸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는 나치 독일의 아테네 진주 이후 벌어진 최초의 저항운동으로 기록됐다. 이들의 행위는 그리스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고, 그리스인들을 고무시켰다.
그러나 글레조스와 산타스는 점령 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조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일제에 저항했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이 땅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서슬퍼런 반공의 사슬 아래 박해를 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잠시 그들의 이력을 보자. 아크로폴리스 위의 나치 독일기가 훼손되자 독일군 점령 당국은 분노했다. 그들을 체포하지 못한 독일군은 궐석재판을 열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글레조스는 이듬해인 1942년 3월24일 독일군에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투옥됐다가 결핵으로 석방됐다. 그러나 이탈리아 점령군에 1943년 4월21일 체포돼 3개월 투옥생활을 했다. 1944년 2월7일 또다시 체포됐다. 이번에는 나치 부역자들에게 체포돼 9월21일 탈출할 때까지 7개월 넘게 투옥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계속됐다. 2차 세계대전이 독일군의 패배로 끝나고 철수한 시기, 희망으로 가득찰 것 같았던 그리스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강대국의 개입과 독일군에 협력했던 친독부역자들이 애국자로 변해 그리스 사회를 장악했다. 점령 시기 독일군에 맞서 무장저항투쟁을 전개했던 좌파는 망명에서 돌아온 정부와 극우단체의 백색테러에 속수무책이었다. 백색테러는 주민들을 좌파로 내몰았다.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제주 4·3 무장투쟁의 구호처럼, 1946년이 되자 좌파는 본격적인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내전의 길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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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박해 그리스 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3월 글레조스는 좌파적 정치신념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우파 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두번째 사형선고였다. 한번은 저항행위로 독일군에 의해, 또한번은 좌파라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국제적인 비난 여론 때문에 정부는 사형을 집행하지 못했다. 정부의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혐의자 등에 대한 박해는 무차별적이었다. 글레조스는 1950년에는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투옥중이던 1951년 그는 통일민주좌파(EDA) 소속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그 뒤 투옥되거나 섬으로 유배된 통일민주좌파 소속 국회의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전개해 7명을 석방하는 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그는 1954년 7월 석방됐다. 1950년대에는 그리스 공산당 기관지 <리조스파스티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1941년 5월 독일군이 파르테논 신전 앞에 있는 국기게양대에서 나치 독일기를 게양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1958년 12월에는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국내외의 비난 여론으로 그리스 정부는 그를 1962년 12월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 투옥중인 1961년에도 국회의원에 출마해 통일민주좌파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리스군 대령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1967년 4월21일 그는 정치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됐다. 게오르게 파파도풀로스가 이끄는 군부독재 정권인 ‘대령들의 정권’ 시기에 그는 4년의 투옥과 유배생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71년 석방됐다. 글레조스의 정치적 박해로 인한 투옥 기간은 2차 세계대전부터 그리스 내전과 ‘대령들의 정권’ 시기까지 전체 11년 4개월에 이르며, 유형기간은 4년 6개월에 이른다.
1974년 군부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그는 통일민주좌파의 부활운동에 참여했으며, 1981년과 1985년에는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84년에는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다. 그 이후에도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등 일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 긴 세월 그는 점령에 맞섰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왔다.
파르테논 신전 앞 나치 독일이 스와스티카기를 게양했던 곳에 그리스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그리스 국기를 보며 70여년 전 그들의 영웅적 행위와 정부와 극우단체들에 의한 박해를 생각한다. 그들이 사랑한 그리스는 어떠한 국가였을까? 제주 4·3 때도 얼마나 많은 제주도민들이 극우단체에 희생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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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나라, 신화의 나라 그런 전설적인 저항의 상징인 그가 살아있다니! 지난해 2월 영국 언론 <옵서버>지가 글레조스와 인터뷰한 내용이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전설적인 저항의 상징, 그가 살아있다니! 그의 나이 91살.
그리스가 파산의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그는 또다시 저항의 정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대중 앞에 섰다. 신문에 나온 사진으로 본 그의 모습은 여전히 20대의 열정이 살아숨쉬는 듯했다. “부패한 체제를 뒤집어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돈을 섬기는 (독일 등 유럽) 정부들에 의해 강요된 긴축정책의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스가 나치 독일의 점령 이래 이토록 위기였던 적은 없다.” 대중 앞에 선 그의 모습에서 그리스인들의 저항정신이 묻어났다. 지난해 11월에는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전쟁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에 빚을 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다른 저항의 주인공 산타스. 글레조스와 같은 나이인 그는 아테네대학 법학부 출신이다. 그는 1942년 독일 점령 당국에 맞서 무장저항운동을 전개했던 민족해방전선에 합류했다. 1년 뒤에는 민족인민해방군 빨치산으로 중부 그리스에서 추축국에 맞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그의 삶도 글레조스와 비슷한 굴곡을 겪었다.
내전 시기 좌파 저항운동을 했던 많은 이들이 정부와 극우단체에 의해 박해를 받은 것처럼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1946년 에게해 이카리아섬으로 유형에 처해진 뒤 1947년에는 사로닉만의 프시탈레아섬으로 옮겨 유형생활을 계속했다. 이어 1948년에는 그리스의 정치범수용소 가운데 가장 악명높은 마크로니소스섬으로 옮겨졌다. 그는 가까스로 이탈리아로 탈출했고, 그곳에서 캐나다로 정치적 망명을 떠났다. 1962년까지 캐나다에서 살았던 그는 그리스로 돌아와 2011년 4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테네에 살았다.
그리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 위에 게양된 그리스 국기. 마놀리스 글레조스와 아포스톨로스 산토스는 독일 점령기에 이곳에 걸렸던 나치 독일기를 끌어내리려고 아크로폴리스 절벽을 기어올랐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아크로폴리스의 그리스 국기가 게양된 주변에 앉아 그들의 저항행위를 생각하는 사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신전의 복원공사를 위해 들어선 크레인은 신전의 신비로움을 깎아내린다. 노동자들이 보수공사를 벌이는 저 신전 기둥, 어느 게 진짜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기둥일까?
그리스는 보는 위치,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을 입는다. 산을 이야기할 때면 ‘산의 나라’가 되고, 섬을 이야기할 때는 ‘섬의 나라’가 된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신화의 나라’가 된다. 글레조스와 산토스의 저항행위도 이제는 신화가 됐다. 이들의 저항정신은 여전히 숨쉬고 있는 걸까?
파르테논 신전을 한바퀴 돌고 왔던 길로 나서려 하자, 벌써 신전 앞에는 단체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헤드마이크를 낀 관광안내원들이 목소리를 높여 파르테논의 영광을 설명하고 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영어가 나오고 프랑스어, 독일어가 나온다. 서로 잘 들리지 않자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도 연출된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아테네를 내려다보면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수천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에서 아테네를 내려다봤고, 지금도 내려다보고 있다. 신화 속에 살았던 그리스는 여전히 신화를 먹고 산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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