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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본사서 협력업체로 떠밀더니…이번엔 ‘1년짜리 근로계약서’

등록 2013-08-19 20:49수정 2013-08-20 10:20

둘은 케이블방송사 씨앤앰 직원이었지만 외주화 이후, 임금과 처우에서 차이가 커지고 있다. 안도환(왼쪽)씨는 씨앤앰 정규직, 강규석씨는 협력업체 타코스 직원이다. 여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둘은 케이블방송사 씨앤앰 직원이었지만 외주화 이후, 임금과 처우에서 차이가 커지고 있다. 안도환(왼쪽)씨는 씨앤앰 정규직, 강규석씨는 협력업체 타코스 직원이다. 여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유선방송사 직원을 구합니다.’ 텔레비전 화면 아래에 자막이 흘렀다. 일자리가 필요했다. 내세울 경력이 없었다. 띄엄띄엄 이력서를 썼다. 회사 쪽에서는 “바로 출근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날 이후 케이블 애프터서비스(AS) 기사로 살았다.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곧잘 들었다. 적성에도 맞았다. 이젠 베테랑으로 불린다. 매일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이나 불통 전화기의 케이블을 고치는 일을 한다. 하루 평균 15곳을 돌아다닌다. 한번 코스를 잘못 잡으면 하루 이동거리가 200㎞를 넘기도 한다.

케이블 기사 안도환(48)씨와 강규석(38)씨의 삶은 여기까지 똑같다. 안씨는 케이블 방송사인 씨앤앰 정규직이고 강씨는 씨앤앰 협력사인 타코스 직원이라는 점만 다르다. 신분의 차이는 두 사람의 삶을 가른다.

3년 전만 해도 안씨와 강씨는 모두 씨앤앰 직원이었다. 하지만 씨앤앰은 2008년부터 케이블텔레비전 애프터서비스 업무를 단계적으로 외주화했다. 2010년 이뤄진 마지막 외주화 대상은 씨앤앰 경기 광주·여주·양평 케이블이었다. 회사 쪽에서는 “본사에 에이에스 직원을 더 이상 두지 않기로 했다. 남으려면 자재관리 등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평과 여주의 기사 10여명은 회사의 제안을 거부했다. 씨앤앰에 막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강씨가 일하던 씨앤앰 광주 케이블은 본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제 광주 지역에서 씨앤앰의 케이블을 고치는 이들은 씨앤앰 직원이 아니다. ‘C&M 지정 파트너사’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는다. 2008년에 씨앤앰 소속 기사는 600여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양평·여주에 17명만 남았다. 나머지 기사들은 24개의 서로 다른 협력업체 소속으로 씨앤앰 케이블을 손본다.

2000년 하남유선방송에 입사하며 일을 시작한 강씨는 에프터서비스 기사로 13년 살았다. 회사가 팔리고 합병되면서 씨앤앰 직원이 된 것이 2009년이다. 씨앤앰은 당시 수도권 최대 케이블 방송사였다. 강씨는 제2의 인생을 꿈꿨다. “집에 빚이 있었어요. 10년 넘게 갚아왔죠. 200만원 정도 월급을 받으면 140만원이 원금과 이자로 빠져나갔어요. 질리도록 라면만 먹었어요. 그걸 다 갚은 게 2008년이에요. 그리고 1년 만에 씨앤앰 직원이 됐죠. 희망이 컸죠.” 희망은 1년 만에 무너졌다.

외주업체로 바뀌자 모든 게 달라졌다. 씨앤앰 협력업체 정규직은 사실상 씨앤앰 비정규직이었다. “협력업체 정규직은 의미가 별로 없죠. 씨앤엠을 나와서야 그걸 깨달았어요. 본사에서 대하는 행동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업무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었어요. 본사에다 서류를 넣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급해 대충 써서 넘겼더니 바로 팀장한테 연락이 와 엄청 혼났죠. ‘본사에서 항의 들어왔다. 공문 제대로 쓰라’고 말하더라고요.” 본사에 있을 때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었다. 강씨는 자신이 씨앤앰과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처우는 똑같을 것이라는 약속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출근 시간은 30분 당겨지고, 퇴근 시간은 30분 늦춰졌다. 휴일과 야근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2800만원 남짓의 연봉은 유지되고 있지만, 임금 인상률은 본사만 못했다. 케이블텔레비전 가입자를 모집하는 영업 업무도 해야 했다. 영업 실적이 좋지 않으면 시말서를 쓴다. 영업 실적 때문에 괴로워하던 동료들은 ‘자뻑’을 했다. 자기 명의로 보지도 않을 케이블텔레비전에 가입을 해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다섯개를 가입한 동료도 있다.

씨앤앰의 ‘AS 외주화’ 방침
여주는 거부, 광주는 수용했다
AS기사 안씨는 본사에 남고
강씨는 협력업체로 떠났다

소속 바뀌자 벌이가 달라졌고
영업 압박에도 시달렸다
올핸 아예 비정규직 될 위기
일단 버텼지만 앞날이 두렵다

계속 일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올해 초 회사 쪽에서는 1년짜리 계약서를 내밀었다. 강씨는 당연히 ‘연봉계약서’로 알았다. 하지만 그 서류는 ‘근로계약서’였다. 완전한 비정규직이 되라는 말이다. 동료들과 함께 회사에 강하게 항의하고 계약서 작성을 거부했다. “이젠 본사 직원들을 보면 부러워요.” 강씨는 자신의 과거를 부러워한다.

강씨의 부러움을 사는 안씨는 씨앤앰 여주 케이블에서 일한다. 1988년 성남유선에 입사한 안씨는 유선방송업체 여러 곳에서 일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씨제이(CJ) 헬로비전의 서울 양천 케이블에서 일했다. 하지만 2001년 경기도 용인에 사는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자 부모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3시간 넘게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용인과 가까운 씨앤앰 여주 케이블로 직장을 옮겼다. 25년 경력에 연봉은 3700만원 안팎이다. 동종업계 처우와 경력을 따져보면 적은 돈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키우기에 빠듯하다. 하지만 본사에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아찔해요. 사실 여주도 간발의 차이로 외주화가 안 됐거든요.”

안씨는 2010년 광주 케이블에서 3개월가량 파견근무를 했다. 그때 강씨와도 잠깐 만났다. 안씨가 여주로 돌아간 뒤 바로 씨앤앰 광주 케이블이 외주화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이 갈렸다. 안씨는 ‘살아남은 자’가 됐고 강씨는 ‘떠난 자’가 됐다. 안씨는 곳곳에서 ‘떠난 자’들의 아우성을 듣는다. “처음에 회사 쪽에서는 나가면 더 잘해준다고 했어요. 영업을 해서 케이블 가입자를 모집하면 돈을 더 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쉽나요.”

‘떠난 자’들은 회사를 떠나고 있다.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 김시권 사무국장은 “외주화 이후 3년 동안 씨앤앰에서 에프터서비스 기사로 일했던 직원 80~90%가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본사 직원으로 있을 때보다 상황이 열악하니 아예 회사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와 강씨의 운명은 3년 전에 갈렸지만 걱정은 동일하다.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지가 제일 걱정이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17명밖에 남지 않은 본사 기사들도 언제 협력업체 직원으로 바뀔지 모른다. 씨앤앰의 매출은 2011년 434억원에서 2012년 505억원으로 70억원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억6000만원에서 5억8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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