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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딕의, 고딕에 의한, 고딕을 위한 비움과 채움

등록 2013-09-27 10:51수정 2014-05-19 18:03

[김규원의 도시잡기] 스페인 <1>
대성당과 왕궁 두 축으로 건물과 길의 완벽 상생
공중 다리-돌벤치-조형물 골목엔 거리의 음악가
2006년에 런던에 가서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리처스 로저스를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는데, 그 가운데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도시 재생, 도시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은 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어떤 이유로 바르셀로나를 그렇게 꼽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의 한 건물.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의 한 건물.

명동성당은 고딕, 정동 성공회 성당은 로마네스크 

그러나 실제 바르셀로나에 가서 느낀 것은 로저스가 말한 것과는 달리, 도시 재생이나 혁신보다는 역사 도시, 건축가의 도시로서의 아름다움이었다. 안토니오 가우디로 대표되는 건축가의 도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역사 도시, 특히 고딕 지구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대성당.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대성당.

보통 고딕 건축물하면 유럽 곳곳에 지어진 대성당을 떠올린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송곳탑을 가진 대성당들이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고딕 건축이다. 서울의 명동성당을 떠올리면 가장 쉬울 것이다. 이것은 좀더 오랜 역사를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교할 때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아 좀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둥글고 네모난 건축이 로마네스크다. 한국에서는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성당이 거의 유일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왕궁 쪽 건물.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왕궁 쪽 건물.

그런데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의 특징은 말 그대로 고딕 양식 건물들이 한 지구를 이뤄 건축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딕 도시를 보는 것 같은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다. 고딕 건물들이 군집을 이뤄 건물과 빈 공간으로 이뤄진 하나의 완결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그 공간에는 별로 빈틈이 없다. 이를테면 건축물이 아니면 길이고, 또는 안마당이다. 이런 점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가 다른 고딕 건물이 있는 도시와 다른 점이었다.

고딕 지구의 대성당(왼쪽)과 왕궁(오른쪽), 그리고 그 사이의 길과 그림자.
고딕 지구의 대성당(왼쪽)과 왕궁(오른쪽), 그리고 그 사이의 길과 그림자.

고딕 지구 여행은 보통 대성당 앞에서 시작한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대성당은 구도심의 중심이고 그 앞에는 널찍한 마당이 있다. 사실 바르셀로나의 성당은 다른 도시들의 성당에 비하면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고, 그렇게 치솟지도 않았다. 그저 광장과 어울리는 정도의 높이와 크기를 갖고 있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한참 보수 공사중이어서 더욱 덜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딕 지구의 중심인 대성당과 그 앞의 계단, 광장.
고딕 지구의 중심인 대성당과 그 앞의 계단, 광장.

광장은 건물의 숲속에서 만나는 공간의 오아시스 

그러나 고딕 지구의 아름다움은 이 대성당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먼저 대성당을 마주보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왕궁이 나온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된 왕궁 구역을 걷다보면, 군데군데 무너진 건물 벽을 벽돌로 채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구조가 벽돌로 돼 있어서 벽돌로 채운 것인지, 아니면 무신경한 보수의 결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눈에 잘 띄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칼리지 건물 벽도 이렇게 채운 곳이 있었는데, 그보다는 덜 자연스러워 보였다.

고딕 지구 왕궁 쪽의 한 허물어진 건물. 새 벽돌로 무너진 곳을 채워놓았다.
고딕 지구 왕궁 쪽의 한 허물어진 건물. 새 벽돌로 무너진 곳을 채워놓았다.

왕궁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역시 ‘왕의 광장’이다. 거의 4면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한쪽 모서리에 부채꼴 모양의 계단이 놓여있는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한국어 번역이 왕의 광장이기는 한데, 실제 규모는 광장(너른 마당)이라기보다는 마당, 뜰 정도가 어울릴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의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풍경은 참으로 독특하고 아름답다. 한국에서는 광장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별로 없고, 있어도 그저 확 트인 곳을 말하는데, 유럽에서는 많은 광장이 이렇게 건물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다. 건물의 숲속에서 만나는 공간의 오아시스라고 할까?

고딕 지구 왕궁의 왕의 광장과 계단,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에게 서인도 발견을 보고한 곳이라고 한다.
고딕 지구 왕궁의 왕의 광장과 계단,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에게 서인도 발견을 보고한 곳이라고 한다.

특히 이 왕의 광장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원래 이름: 크리스토포로 콜롬보)가 인도로 가는 새 항로를 찾겠다고 나섰다가 인도는 찾지 못하고 서인도(중앙아메리카)를 방문했다가 돌아와 이사벨 여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는 콜럼버스가 1492년 현재의 아메리카로 항해를 떠난 항구이며, 바르셀로나 항구에는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엄청난 높이로 치솟아 있다. 근데 최근에 한 글에서 보니 콜럼버스가 새 항로 개척에 나선 것은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에 대한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무슨 대단한 꿈과 야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벌을 면하는 대가로 쫓기듯 대항해의 문을 열어젖혔다는 것이다. 참으로 역사란!

고딕 지구 왕의 광장 계단.
고딕 지구 왕의 광장 계단.

푸른 하늘 눈부신 햇살과 짙은 그림자의 대비 일품 

고딕지구를 걷다 보면, 대성당과 왕궁이 이 지구의 핵심 건축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이 두 건물이 차지하지 않은 작은 틈새가 길이다. 이 건물들과 길들의 설계와 배치가 애초에 계획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건물과 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조화는 정말 놀랍다. 한국의 현대 공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채움과 비움의 온전한 조화라고 할까? 건물과 건물 사이가 자연스레 길을 형성하고 그 길과 건물 사이에는 어떤 빈틈도 없는 모습이다.

고딕 지구의 건물 사이 공간과 그림자, 거리의 연주자들.
고딕 지구의 건물 사이 공간과 그림자, 거리의 연주자들.

이 길들 곳곳에는 소품과 같은 요소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공중에서 건물을 서로 연결하는 화려한 다리, 건물 벽에 붙어 있는 돌 벤치, 건물 모서리에 장식된 조형물, 그리고 건물 구석이나 모서리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들, 그리고 건물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햇빛과 짙은 그림자의 대비. 이런 풍경은 아무데서나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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