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도심의 한 거리에는 에스파냐 의회가 있다. 그냥 길거리에 있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마드리드는 에스파냐(스페인)의 수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마드리드에는 의회가 있다. 그런데, 마드리드의 에스파냐 의회의 입지는 한국의 국회와는 매우 다르다. 에스파냐 의회는 거리에 놓여 있다. 의회 건물을 그냥 거리에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일단 의회 건물과 출입구가 거리에 면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거리에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의회 전면을 공사 중이었다.
오른쪽은 의회의 본관 건물이고, 왼쪽은 부속 건물로 보인다. 공사 중이다.
더욱이 에스파냐 의회는 경사진 거리에 놓여 있었다. 경사를 따라 들어선 모습이 의회로서의 권위보다는 그냥 주변 환경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의회 건물은 규모도 매우 작은 편이었는데, 과연 이 곳에서 의회 업무가 충분히 이뤄질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에스파냐는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처럼 의회 중심제인데, 의회 중심제 국가의 의회가 이렇게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하늘에서 본 에스파냐 의회의 모습. 정말 작고 실용적인 규모다. 구글
마드리드의 에스파냐 의회 본관 건물은 긴 쪽이 70미터, 짧은 쪽이 55미터 정도의 사각형 건물이었고, 그 옆의 부속 건물은 각 변이 110미터, 95미터, 55미터 정도 되는 삼각형 건물이었다. 의회 건물이 삼각형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지만, 에스파냐의 의회는 거리를 따라, 경사진 땅에, 심지어 부속 건물은 삼각형의 땅에 삼각형으로 세워져 있다. 물론 의회의 두 건물 사이에는 내부 도로 같은 것이 하나 있을 뿐이고, 에스파냐가 자랑하는 안마당조차 없다. 의회 건물이 이 두 채 뿐만은 아니겠지만, 너무나도 실용적이고 소박한 의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건물이 들어선 땅의 넓이는 넉넉히 잡아 8000제곱미터 정도다.
하늘에서 본 대한민국 의회의 모습. 불필요하게 넓은 땅을 차지하고 담장을 쳐서 주변과 단절돼 있다. 구글
그에 비해 한국의 국회는 본관만 해도 가로 150미터, 세로 110미터 가량이며, 증축된 사다리꼴의 의원회관도 긴 쪽이 150미터, 양변이 130미터, 짧은 쪽이 120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건물이다. 국회 도서관은 긴 쪽이 80미터, 짧은 쪽이 60미터 정도 된다. 더욱이 한국의 국회는 이 세 가지 주요 건물들이 32만제곱미터(9만7천여평)의 터 안에 놓여 있다. 터도 에스파냐 의회의 40배에 이른다. 달랑 의회 건물 2개인 에스파냐와는 비교가 안 되게 큰 규모다.
왼쪽 의회 건물의 맨 아래층을 보면, 땅의 경사도를 알 수 있다. 경사진 거리에 의회가 들어서 있다.
이 의회를 보면서 또 하나 놀라는 것은 경사진 땅에 건물을 지었다는 점인데, 당연하게도 경사진 땅은 손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춰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의회 본관은 공사 중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옆의 부속 건물을 보면 건물 아래쪽에 땅의 경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 땅이 높은 쪽을 파서 건물의 아래쪽을 수평으로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반지형적인 건축 행위는 유럽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그런 이기적인 건축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파리의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 옆의 한 건물도 경사를 따라 지어 1층 문과 창의 높이가 서로 다르다.
이렇게 경사를 따라 건물을 지은 모습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의회 맞은 편에 들어선 건물도 길을 기울기에 따라 건물을 지어서 1층의 문과 창의 크기가 제 각각이다. 그런 자연의 조건에 맞추면서도 뭔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창의 높이를 맞추면서도 창의 크기에 조금씩 변화를 줬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바깥쪽을 바라봤을 때도 그런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 3채의 건물은 같은 크기와 디자인의 건물인데, 경사에 맞추느라 지붕과 발코니의 높이가 조금씩 어긋났다. 프랑스 파리의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 도서관 옆에서도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건물 맨 아래 창문의 높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라.
서울 한겨레신문사 옆의 상가 건물은 경사를 따라 짓지 않고 건물에 맞춰 땅을 파냈다.
반면 한국에서는 주변 지형을 무시하고 건물의 1층을 수평하게 만들기 위해 건물 앞의 땅을 아무렇게나 판다. 이 사진은 한겨레신문사 옆 삼성아파트의 상가가 한 짓(일이 아니라)이다. 바로 앞에 완만한 경사로를 완전히 무시하고 건물의 수평에 맞춰 땅을 파냈다. 그 때문에 건물과 가까운 새 길은 오른쪽으로 건물을 따라 푹 꺼졌고, 예전에 있던 길과 비교할 때 크게는 2m 가까이 높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가장 차이가 나는 곳에 결국 계단과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이런 행위가 가능하고, 유럽 나라들에서는 아마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언덕 지형을 따라 구부러지게 건물을 지은 마드리드 도심의 오래된 건물(왼쪽).
마드리드에는 언덕 지형을 따라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이 곡선으로 자연스레 구부러진 경우도 있었다. 옛 도심의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아마도 당시의 건축 기술적 한계로 인해 지형을 따라 곡선형의 건물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낡은 건물은 맞은편의 반듯한 건물에 꿀리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벽면에 따라 다른 색을 칠하는 등 오히려 멋을 내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렇게 땅모양이나 지형에 따라 곡선형의 건물을 지은 경우가 꽤 있었고, 아직도 서소문 아파트 같은 곳은 드물게 그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마드리드 도심의 한 건물에 지어진 아름다운 나무 발코니.
그밖에 마드리드에서 인상적이었던 우수리들이 몇 개 있다. 하나는 건물 창 밖으로 화려하게 덧지은 나무 발코니였다. 이런 발코니는 빌바오 옛 도심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유럽에는 아름다운 발코니가 많지만, 마드리드나 빌바오 등 에스파냐의 이 고전적인 발코니는 유별나다. 어떤 유래와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또 도심 거리에서 공동구 입구를 구경한 일이 있는데, 벽돌로 쌓고 돌로 마감한, 이 예스러운 공동구 입구를 들여다 보고 마드리드 공공 시설의 관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드리드에서 주로 마신다는 마호우 맥주가 눈에 띄었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그 곳에서 태어난 에스트렐라 맥주를 마셔야 할 것 같고, 마드리드에 가면 마호우 맥주를 마셔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서울에서 마시는 맥주와 부산에서 마시는 맥주가 다른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소주나 막걸리는 지역마다 달리 있지만, 맥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