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째 건설중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다 보면 ‘누구의 도시’라고 부를만한 곳들이 있다. 이를테면 파리는 나폴레옹3세 때 시장을 지낸 조르주 외젠 오스망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대개조 계획으로 파리는 현재의 당당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의 런던처럼 좁고 굽은 길이 많았던 19세기의 파리는 현재의 넓고 곧은 길을 갖춘 도시로 바뀌었다. 오스망처럼 한 대도시의 구조와 풍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경우는 많지 않다.
또한 파리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랑 프로제(대사업)라는 계획을 밀어붙인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시절에 프랑스는 샹젤리제를 정비했고, 라 데팡스를 개발해 그랑 다르슈를 지었으며, 루브르박물관을 개조해 유리 피라미드를 지었고, 오르세역을 개조해 미술관을 열었으며, 국립 도서관을 새로 지어 확장했고,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을 새로 지었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 시설을 다수 지었다.
서울은 누구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이밖에도 브라질 쿠리치바는 지속가능한 도시 개념을 도입한 자이메 레르네르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다. 뉴요크는 악명 높은 개발가 로버트 모지스의 도시이기도 하고, 정반대로 그와 맞서 싸운 제인 제이콥스의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의 경우는 어떨까? 서울을 누구의 도시라고 부르려고 하면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먼저 서울을 처음으로 설계한 정도전의 도시일 수도 있고, 현재의 도로 구조를 만들어놓은 일제 누군가의 도시일 수도 있고, 해방 뒤 서울의 대개조를 시도한 서울시장 김현옥의 도시일 수도 있고, 박정희, 김종필, 김현옥과 손잡고 서울에 많은 장대한 건물들을 지은 김수근의 도시일 수도 있다.
바르셀로나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도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히지 않을까 예상된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아주 독특하고 특수한 것임에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가장 보편적인 이름이 됐다.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가우디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성가족 성당일 것이다. 중세 고딕 건축의 현대적 변형처럼 보이는 이 독특한 스타일의 장대한 건축물은 이미 100년도 넘게 지어지고 있다. 짧은 시간에 쉽게 지어지는 현대 건축의 특성을 거부하고 수백년에 걸쳐서 지어진 중세 고딕 건축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임을 자부하는 것 같다. 이르면 21세기 중반쯤에 완공될지 모르는 이 건물은 아마도 19세기 이후에, 가장 오랫동안 지어진 건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1883년에 짓기 시작했으니 지은 지 올해로 130년이 됐다.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의 예수 탄생을 표현한 쪽의 모습.
이 건물을 두고 적지 않은 건축 평론가들은 서둘지 않고 천천히 지어지는 ‘느린 건축’의 대표작으로 이 건물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나오고 있다. 이 건물이 장기간에 걸쳐 짓는 과정 자체를 상업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짓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건물의 위대함은 그 외관이나 쓰임새에 있지 않고, 그 공사 자체에 있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완공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열정을 표현한 성가족 성당의 밝은 쪽 입구의 모습. 문이 마치 조각물처럼 보인다.
건축 평론가이자 건축사회학자인 김정후 박사는 “마무리하지 못한 채 남겨진 성가족 성당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당이 아닌 관광지로서만 존재해왔다. 그것도 완성되지 않은 공사장의 모습으로. 성가족 성당에 대한 평가는 유보되어야 마땅하다. 성가족 성당이 완전히 마무리되어 성당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자신의 책 <유럽 건축 뒤집어보기>에서 썼다. 나도 이 공사중인 건물에 대해서는 당분간 평가를 유보하련다.
성가족 성당에서 열정을 표현한 문 쪽의 모습.
네 개의 뾰족탑, 보는 방향에 따라 밝기와 분위기 달라
다만 이 건물의 세부(디테일)과 관련해서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 세부의 아름다움은 가우디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건축물은 구조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조각물로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내가 살아있는 가우디를 만난다면 가장 물어보고 싶은 것이 바로 “당신의 건축물은 삶의 공간이나 예술 작품이냐” 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가우디는 그의 작품들을 삶을 담는 그릇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조각물, 소조물로 여겼을 것 같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진 성가족 성당 내부의 기둥과 천장.
성가족 성당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들도 매우 아름다운데 이를테면 성당의 양쪽 문 가운데 한 쪽은 어둡고 뭔가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듯한 표정인데, 다른 쪽은 밝고 활기에 차서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같은 네 개의 뾰족탑(첨탑)이 보는 방향에 따라 밝기와 분위기 다르다는 것은 매우 신기하다.
공사중인 성가족 성당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타워 크레인과 뾰족탑의 대칭.
또 이 건물은 증축이 아니라 신축인데도 짓는 기간이 길다보니 건물의 부분에 따라 오래된 부분과 새 부분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성가족 성당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모습은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뾰족탑과 타워 크레인이 서로 대칭을 이루는 것 같기도 하다.
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