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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 유족들이 진상 규명 포기하면 정부는 책임 회피할 것”

등록 2014-06-18 20:29수정 2014-06-19 10:29

13일 오후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카와초등학교 쓰나미 참사 현장에서 당시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족 다다노 히데아키(왼쪽)와 시토 다카히로가 사진과 지도를 보여주며 3년 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이 학교 운동장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피난 통로다. 초등학교 주변에는 가마야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었지만 대지진 이후 몰아친 쓰나미에 모두 휩쓸려 사라졌다.
13일 오후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카와초등학교 쓰나미 참사 현장에서 당시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족 다다노 히데아키(왼쪽)와 시토 다카히로가 사진과 지도를 보여주며 3년 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이 학교 운동장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피난 통로다. 초등학교 주변에는 가마야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었지만 대지진 이후 몰아친 쓰나미에 모두 휩쓸려 사라졌다.
‘가만히 있어라’에 당한 일본 오카와초등교 참사 3년
“먼 길이었죠?”

13일 오후 6시 일본 미야기현 동북부 이시노마키시에 자리한 오카와초등학교 교정. 차에서 내리자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량한 얼굴의 남자가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지진이 발생하고, 쓰나미가 밀려오고,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의 딸 치사토가 숨진 지도 이제 3년이 지났지만, 명함 위 그의 직함은 여전히 ‘오카와초등학교 유족’ 시토 다카히로(49)였다. 참사가 벌어졌던 학교 건물은 여전히 폐허로 방치돼 있고, 운동장 한가운데엔 학생 74명과 교사 10명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기리는 위령비가 덩그러니 서 있다. 쓰나미가 밀려왔던 학교 북쪽 신키타가미가와에서 불어오는 저녁 강바람이 매섭게 느껴졌다.

시토는 “세월호 사건과 마찬가지로 오카와초등학교에서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미야기현에서 동남쪽으로 130㎞ 떨어진 해저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미친 듯 흔들리던 건물의 진동이 잦아들자 교사들은 서둘러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켰다. 6분 뒤 높이 10m의 거대한 쓰나미가 엄습할 것이란 경보가 발령됐다. 몇몇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교사들에게 “뒷산으로 도망가자”고 말했다.

2011년 3월11일
리히터규모 9.0 대지진
일본 오카와초등학교 아이들은
10분거리 뒷산으로
도망가자 말했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50분이나 잡아두었다
곧 닥친 거대한 쓰나미
74명이 스러졌다

당시 시토는 학교에서 40㎞ 정도 떨어진 직장에 있었다. 그는 “걱정은 됐지만, 운동장 뒤에 산이 있기 때문에 딸이 무사히 대피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학교를 향해 차를 몰던 그는 강을 타고 역류하는 첫번째 쓰나미를 맞았다. 굴하지 않고 전진하다 다시 두번째 쓰나미를 만났다. 죽을 고비를 넘긴 시토는 “진눈깨비도 날리는데 아이들이 좀 춥긴 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고로 9살이던 딸 미나를 잃은 다다노 히데아키(43)도 “학부모들은 모두 아이들이 무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참사가 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시토와 다다노의 안내로 오카와초등학교 교정을 둘러봤다. 쓰나미를 피할 수 있는 ‘뒷산’은 학교 운동장과 맞붙어 있었다. 운동장에서 체육관과 야외무대 사이의 작은 길을 따라 나지막한 등산길을 오르면 곧바로 뒷산이다. 시토는 “아이들이 70여명이나 됐지만 서둘렀으면 10분이면 대피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정엔 아이들을 다른 안전한 곳으로 나를 수 있는 대형 통학버스도 대기중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사용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50분이나 운동장에 잡아둔 뒤 쓰나미가 학교를 엄습하기 1~2분 전에 겨우 대피를 시작했다. 그것도 산이 아닌 쓰나미가 밀려오던 제방을 향해서였다. 오후 3시37분 쓰나미가 몰아쳤고, 아이들이 희생됐다.

‘왜 그랬을까.’ 이 사고로 딸 미즈호(당시 12살)를 잃은 고등학교 교사 사토 도시로(51)는 지난 3년 동안 이 고민에 매달려왔다. 그는 “충분히 대피할 수 있는 시간, 정보, 장소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학교의 조직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이시노마키시 ‘교육 당국’(시 교육위원회)을 상대로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사고 두달…조사가 시작됐지만
용기내 증언한 생존 아이들의
증언을 듣고도 녹음않고
메모록을 파기했다
다시 조사위를 만들어 1년2개월
그래도 책임소재 분석은 없었다
실망한 유족들 다시 법정투쟁
“우리가 포기하면, 저들은
우리를 들먹이며 책임회피 할 것”

사고 두달 만인 2011년 5월 시 교육위원회에서 파견한 장학사들이 사고 생존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조사의 목적은 ‘진실 규명’이 아닌 교육 당국의 ‘조직 보호’였다. 다다노의 아들 데쓰야(14)는 참사 당시 가까스로 산으로 기어올라가 목숨을 건진 생존 학생 4명중 한명이다. 데쓰야는 조사에서 당시 운동장에서 “산으로 도망가자”고 주장한 학생들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장학사들은 생존 학생들의 증언을 듣고도 녹음하지 않았고, 이를 받아 적은 메모록을 파기했으며, “도망가자”는 학생이 있었다는 중요 증언을 보도자료 등에 담지 않았다. 다다노는 “아이가 용기를 내 어렵게 증언한 내용을 비틀고 무시해버린 교육 당국을 용서할 수 없다. 조사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쓰나미 참사가 발생했던 오카와초등학교 운동장엔 천사상과 위령비가 덩그러니 서 있다. 위령비는 참사 2주기를 맞은 2013년 3월11일 설치됐다.
쓰나미 참사가 발생했던 오카와초등학교 운동장엔 천사상과 위령비가 덩그러니 서 있다. 위령비는 참사 2주기를 맞은 2013년 3월11일 설치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12월 문부과학성의 중재 아래 ‘오카와초등학교 사고 검정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러나 1년2개월의 조사 끝에 지난 2월 공개된 ‘최종 보고서’에도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에 대한 분석은 포함되지 않았다. 오카와초등학교 사건을 꾸준히 보도해 온 독립 언론인인 가토 요리코는 “유족들이 원한 것은 학교의 재난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에 대한 조사였지만, 쓰나미 공학 등을 전공하는 엉뚱한 이들이 위원회에 들어가 조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최종 보고서를 보고 실망한 유족들은 결국 법정 투쟁을 결심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센다이 지방재판소에 이시노마키시와 미야기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숨진 74명 가운데 23명의 유족이 참여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아이들이 쓰나미라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교내에 머물라”는 학교의 잘못된 지시, 즉 인재에 의해 숨졌다는 것을 확인 받는 것이다. 이시노마키시는 “쓰나미는 자연재해였기 때문에 이를 예측해 대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맞서고 있다.

시토는 지금도 3년 전 죽은 딸을 마음에 묻고 산다. 그는 “아이들은 산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교사들이 ‘여기 있으라’고 말해 숨졌다. 그 생각을 하면 불쌍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쓰나미로 부인과 딸을 잃은 다다노는 이따금 아들 데쓰야와 함께 온 가족의 추억이 깃든 식당을 찾는다. 그는 “네명의 식구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의 장소에 가면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사토도 “딸을 잃은 슬픔은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년 새해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되고, 딸의 생일이 지나간다. 슬픔에 맞서지 않고, 슬프면 슬퍼하고 그리우면 그저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삶의 고통 속에서 이들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자식들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순 없다는 절박함으로 보였다. 시토는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비슷한 사건이 터졌을 때 저들(정부)이 우리 예를 들먹이면서 책임을 회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만은 절대 싫습니다. 세월호 유족들도 그렇겠죠.” 시토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사고 이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오카와초등학교 유족들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이시노마키(미야기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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