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선우씨가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에 참석해 공장내 92일 째 굴뚝 농성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필진] 1회 김선우 시인 ‘쌍용차 동행’ 뒷이야기
“힘내자 창근, 하트 받아~” 봄바람 타고 간 ‘희망 약속’
<한겨레> 지면은 기자의 기사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독자는 ‘왜냐면’ 코너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자·교수·작가·예술가·전문가·노동자 등 다양하게 꾸려진 한겨레 필진은 우리 사회의 다채로운 시선을 담은 칼럼으로 독자에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한겨레 필진이 어떤 칼럼을 쓰고 있는지 아시나요? 현직 기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부 기자는 문화 관련 필진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문화부 기자는 경제 관련 필진을 잘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독자도 마찬가지겠지요. 한겨레 지면에서 칼럼을 쓰는 필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한겨레와 독자와 조금 더 소통하기 위해 ‘한겨레 필진들’(한필진)이라는 새로운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한겨레에 칼럼을 쓰는 다양한 필진을 인터뷰해 그 필진이 어떤 분인지를 좀 더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한겨레 필진 가운데 궁금하거나 소개됐으면 하는 분이 있다면 한겨레 SNS(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에서 얘기해주세요. 이메일(june@hani.co.kr)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 프롤로그
지난해 11월11일 김선우 시인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가장 쓰기 어렵다는 3.8매 분량의 ‘김선우의 빨강’을 거의 매일 쓰는 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시인에게서 답메일이 왔다. 연말까지 여러 일로 정신이 없어 연초에 연락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몇 차례 이메일로 소통을 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3월6일 오전 시인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그날 오후 시인한테서 아래와 같이 메일이 왔다.
춘천에서 살고 있는 시인의 14일 토요일 봄나들이는 이렇게 시작됐다.
한겨레신문사 주총 시낭송
1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제27기 한겨레신문사 정기주주총회에 앞서, 김선우 시인이 시를 낭송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날 아침 시인은 아침 8시에 춘천을 떠나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으로 향했다. 아침 10시부터 열리는 한겨레신문사 27기 정기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주총 문화행사로 진행된 시 낭송을 할 예정이었다. 시인은 2013년 한겨레 창간 25돌을 맞아 쓴 기념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바람에게’와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를 모티브로 한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를 낭송했다. ▷ 한겨레 주주총회 “서민들 아픔과 눈물 닦아 달라”(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2287.html)
평택 가는 길
주말 나들이 차로 강변북로부터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은 시인은 엷은 졸음에 겨운 나머지 앞에 있는 차에게 고개를 숙이곤 했다. 서울을 벗어날 때쯤 시인은 봄날 낮잠에서 깨어났다.
- 시는 주로 언제 쓰시는 편인가요?
= 봄에 주로 시를 쓰는 편이에요. 봄이 되면 몸이 ‘시의 몸’으로 바뀌어 가요. 시를 쓰기 위해선 몸과 정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집중을 높여야 하죠. (시의 감수성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니까요. 시를 쓰는 시간은 시에 따라 달라요.
- ‘김선우의 빨강’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 시인의 몸일 때는 논리적인 칼럼을 쓰는 게 참 힘들어요. 그럼에도 칼럼을 쓰기로 한 건, 세월호 때문이었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해 4월16일부터 한 달 내내 울면서 지냈어요. 한 달이 그해 5월15일부터 빨강을 쓰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었죠.
- 빨강은 어떤 의미인가요?
= 빨강은 생명의 느낌이잖아요.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에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다른 의미는 일상의 혁명이에요. 무겁고 이념적인 그런 혁명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에서 조금씩 바꿔가는 깨알 같은 일상의 혁명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 김선우에겐 생명은 어떤 건가요?
= 생명에 선천적으로 예민한 편이에요. 강릉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뒷산은 저의 놀이터였죠. 어린 시절 자연과 뛰어놀면서 크다 보니 생태와 자연, 지구환경에 너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김봉규 한겨레 사진부 기자가 김선우 시인의 사진을 찍고 있다. 정혁준 기자
- 김선우의 많은 시에서 페미니즘, 여성주의를 보여주는데요.
=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몸으로 느꼈죠. 큰오빠가 중학교 때 사고사를 당하자 딸만 셋인 엄마는 아들을 낳으려 했어요. 그런데 제가 태어난 거죠. 오빠의 사고사가 없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겠죠. 그 뒤에도 딸, 딸이었고, 막내는 아들이었는데요. 남자 아이를 낳기 위해 여자 6명이 필요했던 거죠. 어릴 때부터 도대체 여성과 남성이라는 게 뭔지,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게 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을 격렬하게 하셨다고 들었어요.
= 1988년 강원대 국어교육학과를 입학했을 때는 토플을 들고 다녔어요.(웃음) 그런데 봄 캠퍼스에서 오월 광주사진을 보게 된 거에요. 그 사진을 보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세계는 조화롭고 평화롭게 굴러가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다른 방향의 난폭한 세상이 있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된 거죠.
차 안에는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의 원곡인 조안 바에즈의 <매리 해밀턴(Mary Hamilto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창근-김선우의 화상통화
평택에 들어서기 직전 시인은 열쇠와 자물쇠를 사자고 했다. 고공농성 중인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에게 희망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쌍용철물 건재 공구’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는 한 철물점에서 시인은 빨강 자물쇠를 골랐다.
굴뚝 밑으로는 갈 수 없었다. 대신 태블릿 PC로 화상통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이날 저녁 6시부터 ‘3·14 쌍용차 희망행동’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집회장의 앰프 소리를 피해 간 곳엔 전경이 늘어서 있었다.
70m 높이의 굴뚝에서 곧 100일째를 맞게 되는 이 실장은 앞일을 낙관했다. 그럴 때 마다 시인은 “이창근 짱이다!”와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김선우 시인이 쌍용차 굴뚝이 바라다보이는 철조망에 빨강 ‘희망 자물쇠’를 달고 있다. 정혁준 기자
이창근 요즘 굴뚝 위에서 권투를 많이 해. 그 때 마다 느껴. 싸움은 남을 때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동안 우리는 남을 많이 때리는 게 싸움에서 이기는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아냐. 권투는 말이야, 내가 맞으면 얼마나 아픈가를 아는 운동이야. 그리고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마. 일희일비에서 일자(一字)가 하나가 아니잖아. 또 다른 일자가 있잖아. 지금까지 비극이라면 앞으로는 희극이 될 수 있어.
김선우 멋지다, 이창근! 거리에서 성자가 되어가는 중이네.
이창근 (굴뚝 위에서 자신의 카메라로 공장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굴뚝 위에서 본 본관이야. 다음이 도장공장이야. 2009년 두들겨 맞는 장소지만 지켰던 아름다운 장소야. 여기가 황무지로 보이겠지? 아냐 앞으로 (희망의) 씨앗을 심는 장소라고. 여기는 티볼리가 나오고 있는 공장이야.
김선우 젠장. 이창근이 만드는 티볼리 사야 하는데…
이창근 평택 노을이 참 예뻐. 그거 알아?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로 시작되는 동요 <노을>이 평택을 배경으로 했어.
김선우 잠은 어디서 자니?
이창근 텐트 안에서 자. 걱정 마. 내가 공수부대 출신이야. 공수부대는 야전이 핵심이야. 김제동이 친구인데, 방위 나온 제동이는 이거 모를 거야. 참, 나 헤어밴드 했는데 어때? 소지섭 닮았지 않아?
김선우 이창근, 간지 쩌내!
이창근 백기완 선생님은 글 쓰는 걸 되게 좋아하셔. 그런데 사람들이 잘 안 알아주는 것 같아. 백 선생님 말씀과 강연을 책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없더라. 그게 큰 선물인데. 연집으로 만들면 어떨까?
화장실에 가다 우연히 이창근 실장과 김선우 시인이 화상영상을 하는 장면을 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이 실장을 응원했다.
백기완 이창근이 살리려고 이곳에 왔어. 노동운동 진짜로 살리려고 내려왔어. 오늘 내 생일날인데 라면밖에 못 먹었어. 허허. 이창근이 내려오면 내가 개고기 살게.
이창근 선생님, 이젠 그만 좀 드세요.
이창근 좀 춥다. 오늘 이 곳에 온 분들이 평택 공장의 햇볕도 돼 주고, 물도 돼주고, 퇴비도 돼 줄 거야. 그러면 여기 꽃도 더 일찍 피게 되겠지.
김선우 내려오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이창근 앞으로 누나는 뭘 궁리해야 하냐면, 5천원짜리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찾아내는 거야.
김선우 그래, 그래…힘내자. 창근, 하트 받아~
화상통화가 끝날 때 쯤 전경들은 저녁식사를 했다. 문득 김훈 기자가 한겨레의 쓴 ‘거리의 칼럼’이 떠올랐다.
김훈 거리의 칼럼 (‘밥’에 대한 단상)/2002년3월21일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 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 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김진숙과 주강이, 그리고 빨강 자물쇠
이젠 가야 할 때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이창근 실장의 아들인 주강이를 만나 주강이의 늦은 세배를 받았다. 쌍용차 굴뚝이 바라다 보이는 철조망에 빨강 ‘희망 자물쇠’도 달았다. 집회에 참석하려고 이곳을 찾은 김진숙 지도위원도 만났다. 1여년 만에 다시 만만 둘은 깊은 포옹을 나눴다.
▷ 굴뚝 위 ‘해피엔딩’을 위해…‘낙관의 씨앗’ 함께 뿌린 김선우와 이창근(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682353.html)
서울로 가는 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꽉 막혀 있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처럼 지금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때인 듯 한데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상 서정시는 써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빵뿐만이 아니라 장미도 동시에 필요하죠.
-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중반에 구체적으로 자살을 생각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을 좇아 올라갔는데, 위에서 박살나고 무너져 버렸어요. 바닥으로 툭 떨어진 느낌이었죠. 게다가 운동권 내부 문제도 불거나왔죠. 세상에 냉소적일수 밖에 없었죠.
-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시를 쓰면서요. 사실 냉소적이란 건 부조리한 세상에 대응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에요. 처절하게 절망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떠안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거잖아요. 그런 ‘냉소’를 ‘쿨’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상처받기 싫어서 한 발짝 거리를 두는 거잖아요. 그런 게 세련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이상해요.
- 미녀 시인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지난번 빨강에 ‘여류라는 말’(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5118.html)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공적인 자리에서 사회자가 ‘문단의 미녀~ 시인’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듣고 싶지 않는 말이에요.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잖아요. 같은 의미에서 ‘여류’라는 표현도 이제 그만 유통됐으면 좋겠어요. 특히나 신문이나 방송 같은 데서 이런 말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풍토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인식이 변하면 말도 변해야죠. 말이 변하면 인식의 변화가 좀더 수월하게 오기도 하고요.
주강이가 길거리에서 김선우 시인에게 늦은 세배를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 김선우의 시는 관능적이라는 문단의 평가가 있는데요.
= 내가 쓴 시 가운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라는 게 있어요. 꽃이 피는 것을 표현한 시에요. 어떤 사람은 이 시를 읽으면서 사랑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요. 난 이 시가 그렇게 에로틱하게 읽히는 것도 좋아요. 이 시는 ‘네가 예쁘게 피어서, 내가 행복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당신이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뻐하는 순간을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게 곧 나의 기쁨이라는 뜻이죠. 섹스도 마찬가지잖아요. 어느 한쪽이 혼자만의 만족을 얻거나 상대를 정복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 시에서 진짜 에로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관능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제자를,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여군을, 자신보다 힘이 없는 캐디에게 이상한 일을 하지 않겠죠.
- 시인으로 시작해 소설을 쓰시는데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 2000년 한겨레에 독서칼럼을 쓸 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선생께서 제가 쓴 칼럼을 본 뒤 연락처를 물어물어 전화를 걸어 주셨어요. 그 때 조세희 선생님이 ‘소설을 써 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대학을 다닐 때 읽었던 그 ‘난쏘공’의 작가인 조세희 선생님께서요! 전화를 받는 그 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 한겨레와의 인연을 얘기해 주세요.
= 1990년 대학 3학년 때였죠. 운동권 후배들을 데리고 한겨레 본사를 찾은 적이 있어요. 박재동 화백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죠. 그 때 동아리 회보에 인터뷰 글을 써야 했거든요. 박 화백에게 문화예술 운동과 관련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었죠. 그 뒤엔 한겨레 지면에 몇 차례 칼럼을 썼었죠.
차 안에선 주디 콜린스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에필로그
시인은 5월 중순까지만 한겨레 칼럼을 쓰겠다고 했다. 이젠 시의 몸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5월엔 그동안 준비해오던 장편소설이 출간된다. 소설이 출간될 무렵 그는 시인의 몸을 만들어 시작업에 몰두할 생각이란다. 시집은 가을에 출간될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긴 머리를 간직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미용실에 6개월에 한 번씩만 가도 괜찮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는 시인과 하루를 보내면서 그가 긴 머리를 간직하는 건 20대의 열정을 나이가 들어서도 간직하고 싶어서라고 이해했다. 그와 헤어지면서 그의 등단작인 ‘대관령 옛길’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때론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하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김선우의 시 ‘대관령 옛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