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동부경찰서가 19일 공개한 국가정보원 직원 임아무개(45)씨의 유서. 임씨는 18일 낮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임씨는 가족과 부모, 국정원에 노트 3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는데, 경찰은 국정원에 남긴 유서 1장을 공개한 것이다. 용인/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18일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직원 임아무개(45)씨의 유서가 19일 공개됐지만, 사이버안보 분야 20년차의 베테랑 전문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위 등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임씨가 유서에서 ‘오해를 일으킬’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혀, 삭제한 내용과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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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떳떳하다며, 왜 극단적 선택을?
임씨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 저의 모든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던” 그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북·대테러용” 강조하고도
최근 4일간 밤새워 삭제
국내사찰 내용 포함됐나 의구심
극단적 선택 왜
“업무로 힘들어했다” 가족 증언
내부감찰 등 압박 받았거나
여야 현장검증에 부담 가능성
임씨의 부인은 18일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최근 업무적으로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아르시에스’(RCS)라 불리는 해킹프로그램을 해킹 전문업체인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고 사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이 프로그램 구입과 운영 등을 맡았던 임씨가 국정원의 내부 감찰 등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한 여당 의원은 “주변에서 ‘왜 구입했냐’ ‘어디에 썼냐’며 감찰도 들어오고 정치적 문제가 되니까 심리적 압박을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자신이 한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국정원은 지난 17일 이례적으로 장문의 공식 해명자료를 내어 “국회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해킹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보여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씨는 유서에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고, 자책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18일 숨진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45)씨의 주검이 19일 낮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나와 구급차에 실리고 있다.용인/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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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제된 자료는 무엇?
임씨는 유서에서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찰 의혹이 제기된 뒤 최근 4일간 국정원에서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관련 기록들을 지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정원이 아르시에스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밝히기 이전이다. 임씨가 14일 여야의 국정원 현장검증 방침이 알려지자 다급한 마음에 자료 삭제에 나섰다가, 국정원이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뒤 자료 삭제에 대한 추궁을 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임씨가 해당 파일들을 지운 뒤 국정원에서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하니까 겁을 먹고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가 삭제한 자료가 뭔지도 관심거리다. 임씨가 ‘오해를 일으킬 자료’라고 언급한 것에 비춰, 국정원이 밝힌 ‘대북·대테러용’이라는 공식 용도를 벗어난 활동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원은 파일의 복구가 100% 가능하다고 밝혔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내부 디지털 전문가가 왜 급하게 파일을 삭제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용인/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