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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약식기소 2억·선고유예 1억…‘유전무죄 무전유죄’ 사법불신 사라질까

등록 2015-07-24 20:07수정 2015-07-24 23:14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대법 ‘성공보수 무효’ 판결
“대법관 개업금지·보수상한제 등 필요”
시민단체, 제도 개선 병행 촉구
변호사업계 “착수금만 높아질 것”
대법원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선언은 법조계에는 충격이다. 수십년간 당연시되던 ‘적은 착수금 + 많은 성공보수’ 계약이 더는 통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과다한 변호사 비용이나 전관예우의 폐해를 줄이는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하지만, 사법 불신의 근본적 해소에는 더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판사·의사 청탁 비용으로 1억 건네” 이번 사건 원고 허아무개(38)씨는 2009년 아버지가 57차례 가정집 등에 침입해 1억6900만원어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되자 조아무개 변호사를 선임했다. 착수금 1000만원을 주고, 석방 조건으로 사례금(성공보수)을 추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변호사가 법원에 보석을 신청하자, 허씨는 대출을 받아 1억원을 줬다. 아버지에게 유리한 정신감정 결과가 나오게 의사와 판사에게 청탁해달라는 명목이었다.

허씨는 청탁용 돈이지 정당한 보수가 아니라며 반환 소송을 냈지만, 1심은 “정당한 변호사 보수”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후 과도한 수임료라는 주장을 했고, 항소심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1억원 중 4000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이번 판결 취지대로라면 1억원 전체를 반환하라고 할 수 있지만, 대법원은 선고일인 23일 이후 약정부터 새 판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 요지경 속인 성공보수의 세계 성공보수의 세계는 요지경 속이다. 피의자의 ‘급’에 따라 액수가 천차만별이고, 더 강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한 계약까지 있다.

이동통신사 재무팀장 노아무개씨는 지난해 위탁한 회사 자금을 투기적 회사채 매입에 쓰라고 허락해주는 대가로 증권사 간부한테서 11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기소됐다. 무죄가 선고되자 약속한 성공보수를 달라며 로펌이 소송을 냈다. 노씨는 착수금 3000만원을 주고 10위권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 성공보수는 △검찰의 불기소·약식기소 또는 법원의 무죄 선고 2억원 △선고유예나 집행유예 선고 1억원 △재판 도중 석방 1억원 △3년 이하 징역 또는 검찰 구형량의 절반 이하 형량 선고 5000만원으로 다양했다. 별도의 30억원 수수 혐의를 검찰이 불입건하면 5000만원을 준다는 특약도 맺었다.

한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은 2012년 피고인에게 무거운 형량이 선고되게 하려고 수사기관에 낼 탄원서와 증거 준비 등을 천아무개 변호사에게 맡겼다. 착수금은 700만원이었는데 성공보수는 △공소장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면 1500만원 △징역 8년 이상~10년 미만 1500만원 △징역 10년 이상 2500만원이었다. 대법원은 이런 행위는 변론활동이라는 변호사 업무의 본령을 벗어나 더욱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성공보수는 얼핏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형량이나 보석 또는 집행유예 등이 법원의 기준에 따라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되는데도 변호사의 특별한 노력이나 재판부와의 연고의 결과인 것처럼 포장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적지 않은 국민들이 유전무죄·무전유죄 현상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며 “성공보수는 형사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증폭시켜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변호사 시장이 법률적 조력을 넘어 ‘정의를 사고파는’ 곳으로 인식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 대법원은 “법률 지식이 부족하고 소송 절차에 대한 경험과 정보도 없는 다수 의뢰인은 당장 곤경을 면하기 위해 과다한 성공보수를 약속할 수 있다”며, 성공보수를 ‘시장법칙’이 제대로 적용되는 거래로 볼 수도 없다고 짚었다.

■ 변호사 보수 기준 투명화 등 필요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전관 변호사를 찾는 경향이 약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장기적으로는 일한 만큼 받는 시간제 보수나, ‘재판 몇 회 이상’ 식의 구체적 활동에 근거해 수임료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조삼모사’가 될 수도 있다. 성공보수가 사라지면 착수금을 올려받을 것이고, 그러면 변호사 선임 문턱이 높아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면 퇴임 대법관 개업 금지 등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고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가 사법 불신의 근본 원인인데 대다수 변호사가 문제인 것처럼 책임을 돌렸다며 이번 판결을 비판했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기획실장은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기준이 없어 변호사 보수가 비상식적으로 책정되는 것이 문제다. 독일 등에 보수 상한제가 있는 만큼 우리도 기준을 투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보수 상한제는 1949년 변호사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으나 99년 규제 개혁 차원에서 폐지됐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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