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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만 5살 조기 취학’, 이제껏 무산됐던 그 결정적 이유들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10-23 18:20수정 2022-08-19 16:56

[더(The) 친절한 기자들] 학제 개편 검토 흑역사
“취학연령 낮추자” 새누리 방안, 노무현·MB 때도 추진 중 폐기
명분과 실현 가능성 검토, 공론화 과정 없는 졸속 추진은 곤란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22일 트위터(@yikim1952) 갈무리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22일 트위터(@yikim1952) 갈무리

새누리당이 최근 저출산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라며 취학연령을 만 5살로 낮추고 학제를 개편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정부에 주문했습니다. 출산율 저하 원인 중 하나가 결혼을 늦게 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학제 개편을 통해 청년층의 사회 진입 연령 자체를 낮추겠다는 의도입니다.

새누리당 보건복지정책조정위원장인 이명수 의원은 지난 21일 “저출산 대책에 과감하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정부에 ‘어린이집과 대학에 비용이 많이 드니 취학연령을 낮추고, 초등학교 6년제, 대학교 4년제를 (지금보다) 줄이는 방안 등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새누리당 주문대로 학제 개편에 착수하면, 현재 만 6살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만 5살로 낮아지고, 초-중-고-대학교 학제도 현행 6-3-3-4에서 5-3-3-4 또는 6-5(중·고 통합)-4제로 바꾸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관련 기사 : 새누리 “취학연령 만 5살로 낮추자” )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싱글세 발언’이나 ‘국가 주도 단체 미팅 방안’ 등의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면서 불신의 늪이 깊어지면서 누리꾼들은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정책이냐”는 반응입니다. “(새누리당이)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역사교과서 때문이라고 하더니, 저출산 대책은 취업 시기 앞당겨서 출산 유도냐”, “일자리가 부족한데 취업 시기만 앞당기면 뭐 하냐”, “전세금 등 주거문제 실질 대책은 없이 교육 정책만 건드린다” 등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출산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청년층의 고용 불안과 주거 불안 문제 등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 채 생색내기식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그런데 사실 학제 개편은 역사가 오래된 정책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도 유사한 학제 개편 논의가 있었습니다. ‘더 친절한 기자들’은 이 역사를 간단히 훑어 보고, 이전에는 왜 학제 개편이 실현되지 못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학제 개편에 “2~3조원 쓰고 진이 빠진다”…노 대통령 “알았다”

초등학교 학생들. 연합뉴스
초등학교 학생들. 연합뉴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학제는 1951년부터 유지돼 왔습니다. 이 학제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처음 등장한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8월입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혁신위원회와 공동으로 학제개편 토론회를 엽니다. 토론회는 이후에도 5차례 더 열렸습니다. 당시 국정브리핑은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사회의 급격한 환경변화 등이 예고되고, 지식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기반사회 도래는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해 더 이상 우리 교육체제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차 토론회에서 나중에 박근혜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는 방하남 당시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시장본부장은 “인구감소로 학생 미충원 문제가 예상되고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고용의 질 저하 문제가 예상된다”며 “이에 대비한 인적·물적 자원의 재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방 본부장은 특히 “2030년에는 학령인구가 2005년 현재 1226만명의 60% 수준인 741만명으로 줄어들어 현재의 학교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거듭된 토론회를 거쳐 2007년 2월5일 노무현 정부는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 2+5 전략’을 발표합니다. 전략의 핵심은 개인이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입직(직업 입문) 연령을 현재보다 2년 낮추고, 퇴직연령을 5년 늦춰 선진국에 견줘 평균 7년이 짧은 생애근로기간을 만회하겠다는 겁니다.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현역병 복무 기간을 6개월 단축해 나가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당시 학제 개편의 방향은 새누리당처럼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살로 낮추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직업 입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학제를 ‘연성화’하는 데 있습니다. 취업을 하면 학교로 돌아오기 힘든 구조를 유연하게 바꿔 학교에 다니면서도 직장 경력을 쌓을 수 있고, 졸업한 직장인도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실업계고 특성화 확대를 추진하는 방안입니다.

하지만 여론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살로 낮추는 데 집중됐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2007년 당시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22일 트위터(@yikim1952)에 올린 내용입니다.

“제가 청와대 수석 때 학제 개편을 검토했어요. 5살로 당기면 5, 6살 동시입학하니 1학년이 두 배. 교사 짓고 교사 뽑고, 2학년 고쳐, 3학년 고쳐...차례로 12학년까지 2~3조원 쓰고 진이 빠진다. 결론은 ‘덮어라’. 노 대통령께 보고하니 ‘알았다’ 끝.”

그는 이어진 트위트에서 “학제 개편안이 ‘5살 입학, 5+5년제’라면 경제사회적 비용이 제일 큰 모형이다. 시설, 교사, 교육과정 등에 대변화가 예상되고 3개년 졸업생이 취업시장에 한꺼번에 진입하면 난장판이겠다. 학제로서의 손익도 문제고 저출산 대책으로는 번지수가 영 틀렸다”고 썼습니다. 2007년 당시 학제 개편안이 왜 현실화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진보 교수들도 학제 개편안 거론했지만…

이후에도 학제 개편안은 계속 거론됐습니다. 2009년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으로 똑같은 방안을 내세웠을 때, 육아정책연구소가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취학 연령을 1살 단축하면 초등학교 입학에서 고교 졸업까지의 사교육비가 6.8%(2675만원→2494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교육비 감소 효과에 대한 의미있는 실증 연구입니다. 하지만 이때도 결국 논의는 교육부로 넘어가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이 안건은 2007년 이후 정식으로 교육부에서 논의된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관련 기사 : 입학·취업 앞당겨 출산 유도?… 교육부 “입시 등 큰 혼란 우려” )

진보 성향의 교수들도 학제 개편안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전국교수노동조합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 3단체는 2011년 2월 ‘국립교양대학안’을 제시하며 학제 개편을 거론했습니다. (▶관련 기사 : “2년 과정 국립교양대 신설…중·고 통합 6-5-5 학제개편” )

이들은 고교와 대학 사이에 예비대학 성격의 교양대학을 신설하고, 현행 6-3-3-4로 되어 있는 초·중·고등 교육 학제를 6(초등)-5(중·고교 통합)-5(교양대 2년+일반대 3년) 또는 5(초등)-6(중·고교 통합)-5(교양대 2년+일반대 3년)로 개편한 뒤, 고교를 졸업하고 일반대학에 진학하려면 교양대를 의무적으로 거치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강남훈 교수노조 위원장(한신대 경제학)은 당시 발표장에서 “지금까지 여러 가지 교육개혁안이 나왔지만 계층화·서열화해 있는 고교와 대학이 직접 연결되는 현 체제 안에선 사교육이 줄지 않는다”며 “교양대학이란 학제를 중간에 넣어 사교육을 줄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계층화·서열화한 대학 교육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방법론적으로 제시된 학제 개편안이었고, 현실 정책으로 추진된 적은 없습니다.

종합하자면, 학제 개편안은 필요하다면 충분히 공론에 부쳐 토론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2007년과 2009년 당시 정책을 추진했다 결국 현실화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따져 보고, 적어도 이전 논의 이상의 엄밀함을 가지고 추진되어야겠지요. 또 계층화·서열화한 교육 체제에 대한 반성적 대안으로 제시되거나 혹은 고용 불안과 주거 불안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풀기 전에 우선 사교육비라도 줄이자는 차원 정도의 명분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라는 말과 달리 이를 입증할 별다른 공론 과정도, 연구 결과도 없이 여당 국회의원들이 정부에 불쑥불쑥 “검토해보라”고 지시하는 식으로 추진하는 졸속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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