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어머, 좋으시겠다. 세상에 경치 좋은 곳은 다 다녀볼 거 아니에요?” 몇해 전 매일 티셔츠 하나 입고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옆집 남자의 직업이 몹시도 궁금했던 이웃집(지금은 이사 간) 아주머니가 남편의 직업이 사진기자란 소릴 듣자 집사람에게 한 말이다. 남의 집 남편 직업이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는데, 한술 더 떠서 알뜰하게 충고까지 하더란다. “애 아빠가 어디 좋은 데 간다고 할 땐 ○○엄마도 꼭 따라간다고 해. ‘혼자만 다니지 말고 나도 데려가’ 이러면서 맛있는 것도 사달라고 하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고.” 아니, 이건 뭐냐? 내가 날마다 디즈니랜드로 놀러 다니나? 마누라 직장 때려치우면 그 집에서 월급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집에… 이 아줌마가 뭐 시트콤 찍으시나? 그나마 출장 가는 남편 미행하라고 안 한 게 어디냐 싶다. 아니, 어쩌면 그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이 내 귀에 전달되지 않았을 뿐이지.
‘여행!’ 이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뻥’ 하고 뚫리는 기분이 든다. 일 때문에 가끔 여기저기 유명한 곳에 다니는 우리 같은 사람도 그렇다. 그런데 여행이란 게 오가는 사람과 차에 지치고 잠자리 불편하고 해서 실상은 더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행이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새로운 공간에서 누리는 자유로움이 일상에서 주는 스트레스를 희석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 만끽하고픈 자유로움이 일상과 뒤섞인다면, 아니 일상의 연장이라면 어떻게 될까? 해본 기억은 없지만 소풍 가서 수학 숙제 하는 초등학생의 기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꽤 오래전에 설악산 단풍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산 타는 걸 몹시 싫어했지만 부장의 지시를 받았으니 갈밖에. 새벽 일찍 일어나 카메라 짊어지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새벽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르는 게 놀라웠다. 어찌나 많은지 산이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전혀 기우 같지 않았다. 그해 이상기온으로 정작 단풍이 시원찮아 사진은 안 되는데 옆에선 사람들이 기암절벽과 숲의 향기에 취해 “예쁘다”는 말을 연방 내뱉었다. 그 말이 꼭 “너 그림 같은 사진 찍어” 이러는 것 같았다. 단풍이 안 보이다 보니 제아무리 멋진 바위도 개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간 단풍을 찾아 눈 벌겋게 돌아다니니 산이 빨간 것인지 내 머릿속이 빨간 것인지, 조상들이 말한 무아지경이 이런 건가? 아…. 힘은 드는데 찍을 건 없고. 설악동에서 시작한 등산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중단하고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꼭대기 쪽은 단풍이 졌으니 힘만 드니까. 내려와 약수를 마시면서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면피용은 그럭저럭 있지만 그림 같은 단풍은 없다고 보고했는데 전화기 건너편에선 지금 막 올라온 통신사진은 그림 같은 단풍이라는 것이다. 장소를 물어보니 내가 이미 지나간 곳이었다. ‘내려갈 때 못 보았네 올라갈 때도 못 본 그 단풍.’ 다시 그곳을 향해 달렸다. 처음엔 등산이었지만 두번째는 구보였다. 해 떨어지면 단풍이고 뭐고 말짱 꽝이니까. 카메라는 천근만근, 두 다리는 팥죽처럼 풀렸다. 그날 난 같은 곳을 하루에 두 번 올라갔다. 어찌 내려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내려왔을 땐 이미 해가 넘어갔다는 것, 또 차를 타자마자 감은 눈을 떠보니 서울이었다는 것뿐이다.
여행기자들은 매주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여행사진의 핵심은 빛인데 모든 일정 다 포기하고 그 빛만 기다릴 수도 없다. 그림 같은 풍경에 사람 하나만 있으면 딱인데 그 사람 하나가 왜 그렇게 안 지나가는지. 올라가면 찌푸렸던 날씨가 막상 내려오면 쨍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온갖 그림 같은 사진만 본 독자들의 눈높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 좋은 일도 밥벌이로 엮고 들어오면 만만치 않아진다. 여유가 있어야 여행이지 마감이 따라붙는데 뭔 여행? 그런데 누굴 데려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참고로 집사람이랑 여행 갈 때 제일 좋은 카메라는? 스마트폰.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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