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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자자 눈 감지 마시고, 하나 둘 셋!

등록 2015-11-13 19:58수정 2015-11-14 16:21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10월29일 오전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EA)30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10월29일 오전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EA)30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우렁찬 목소리가 시끄러운 실내를 뚫고 나온다. “자, 자… 신부님이 고개를 조금 돌리고, 옳지. 윗줄 세번째 검은 양복 입은 분, 조금 옆으로 네네…. 좋습니다.” 그러곤 카메라 위로 손을 들어올리며 “자…. 여기 보세요. 찍습니다. 눈 감지 마세요. 하나, 둘, 셋! 됐습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하나 더 찍어요. 하나, 둘, 셋.” 결혼식장에서 사진사가 단체사진을 찍을 때의 풍경인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말이다. 신문사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분들 정말 존경스럽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단체 기념사진을 찍을 때다.

예전엔 신문에서 중요한 면 중의 하나가 인물 동정란이었다. 유명인의 동정은 물론, 부음이나 결혼 등을 다루는 면이었는데 지면이 많은 신문사는 두개 면까지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 면이었다.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게 각종 모임이나 행사를 싣는 꼭지인데 ‘재경 ○○ 향우회 모임’이라든지 ‘○○○ 출판 기념회’, ‘○○대학교 동창회’, 이름도 생소한 ‘○○봉사대 신년 하례회’ 등등, 정치·경제·사회·문화 다방면의 별의별 모임들을 신문에 소개했다. 어쩜 대한민국에선 그리도 모임이 많은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많은 모임이 열리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대체로 모임들은 주로 저녁시간에 많이 열리고 그 모임난에 결코 사진이 빠질 수 없으니 과거 사진부 야근자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모임 취재였다. 모임이란 게 사람들이 만나기 위해 열리기 때문에 서로 악수하고 명함 주고받고 이야기하다 보면 마냥 늘어지기 일쑤다. 모임 하나만 찍는 것도 아니고 다른 모임을 줄줄이 찍어야 하는데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다. 사회자에게 말해 얼른 기념사진부터 찍자고 부탁한다. 얼추 모이면 어수선한 참석자들을 일렬로 세우고 셔터를 누른다. 그때 낯익은 풍경이 연출된다.

“자, 눈 감지 마시고요. 좌우로 좀더 붙어주시고. 카메라 보시고요. 고개 숙이지 마세요. 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스포츠에서나 쓸 법한 연속셔터로 드르륵드르륵. 왜냐고? 그렇게 목이 터져라 ‘하나, 둘, 셋!’을 외치건만 필름을 현상해보면 꼭 눈 감은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결혼식장의 그 사람은 안 하는 중요한 일을 한다. 일렬로 선 참석자들에게 다가가 이름과 직책을 알아내는 것이다. 순서가 틀려서는 안 되니까 최대한 대열이 흐트러지기 전에 빨리 받아쓰든지 명함을 순서대로 번호표 매겨가면서 받든지 해야 한다. 다음날이 되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그 면을 반드시 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전날의 참석자들이다. 편집상의 이유로 주변부가 잘려나가기라도 하면 ‘내가 어제 거기 가서 사진도 다 찍었는데 왜 잘랐느냐’고 거칠게 항의한다. 이름이나 직책이 잘못됐다고 따지기도 한다. 연예인이 아닌 다음에야 일반적으로 사진 찍히는 게 어색할 테지만, 뉴스 사진 찍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 모임에 가서 ‘하나, 둘, 셋’ 외치는 기자도 어색하긴 매일반이다. 어색함을 못 이겨 사진기자가 시키는 대로 따라주지 않은 참석자의 사진이 잘 나올 리 없다. 그러면 꼭 잘 안 나온 사람이 전화해서 이상하게 나왔다고 투덜거린다. (본인이 잘리거나 이름이 잘못 나왔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하면 ‘원래 그래요’ 이럴 수도 없고 대략 난감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엔 신문 동정란이 예전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처럼 단순히 행사나 동정을 소개하기보다는 인물 탐구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모임에 중점을 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사는 한 단체 기념사진은 의외로 여전히 건재하다. 시대가 변해도 모임사진에서 자신이 잘 나오게 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카메라 든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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