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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등록 2015-11-27 19:21수정 2015-11-28 09:39

이 사진은 놀랍게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고 촬영을 마친 뒤 두 사람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손홍주 <씨네21> 사진팀장
이 사진은 놀랍게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고 촬영을 마친 뒤 두 사람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손홍주 <씨네21> 사진팀장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오늘은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 얘기부터 하자.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믿는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한 자신만의 영화가 있을 텐데,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물어볼 땐 ‘외국영화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 영화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이렇게 꼭 나눠서 묻는다. 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둘 다 통틀어서 영화 <대부>라고 말해왔다. 1972년에 만든 이 영화는 사실, 나보다 앞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좋아했던 영화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미성년자 단속이 제법 느슨한 동네 재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본 뒤로는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 성인이 돼서도 마음속에선 줄곧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지금도 집에 당시의 비디오테이프가 있는데, 한 30번 봤나? 다 늘어져서 이젠 골동품으로만 보관하고 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폭력, 숨쉬기 힘든 긴장감,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인내력을 시험할 정도로 긴 영화였지만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더 강력한 액션영화도 있었고 더 짜임새 탄탄한 갱영화도 있었건만 단순히 폭력성이나, 액션, 스토리만으로는 감히 넘을 수 없는, 뭔가 강력한 자석 같은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물망 엮듯 촘촘하게 걸작을 만든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에게도, 쇳소리 같은 목소리를 내던 말런 브랜도에게도 미안하게 순위가 바뀌었다. 2003년부터는 똑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봉 감독이 들으면 ‘아니, 어디 그런 거장에게 나를 비교하세요?’라면서 겸손의 미를 발휘해 펄쩍 뛸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둘 다 마초적이고 하드보일드한 작품들인데, 오해 마시라 내 성격이 그렇진 않다. 오히려 온화하고 차분해 여성적이란 소릴 자주 듣는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진은 <씨네21>손홍주 기자가 당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찍었다. 영화의 끝부분 두 형사가 비 오는 날 범인으로 의심 가는 한 남자를 허망하게 풀어주고는 기찻길을 걸어 나오고 있다. 철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일그러진 두 사람의 얼굴 옆으로 모든 게 끝났다는 듯 터널을 나온 기차가 지나간다. 영화 속에서 본 장면 같지만 이 사진은 놀랍게도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고 촬영을 마친 뒤 두 사람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추운 날씨에 비까지 맞으면서 하던 일이 끝났으니 얼른 따뜻한 천막으로 뛰어올 테지만 사진에서 두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얼마나 극중 캐릭터에 몰입을 했는지 필름이 멈춰서고도 한동안 아직 빠져나오지 않은 감정이 두 사람을 잡아끌고 있다. 너무나 잡고 싶었던 범인, 그러나 죽어 나가는 여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공권력, 잿빛 시대, 영화 초반부 서로의 방식을 혐오했던 두 사람이 말미에선 너무도 닮아가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영화 전체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한 영화의 제작현장에서 담아낸 최고의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평소 현장을 빨리 떠나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했다. 끝까지 지켜본 기자만이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디 야구만 그런가? 사진기자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사진기자는 어느 현장을 가든지 급히 자리를 뜨지 않는다. 모든 사진기자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정된 시간과 일정에 쫓겨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일 뿐이지.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들을 개봉할 때면 케이블티브이에서는 꼭 그의 작품인 <살인의 추억>을 틀어준다. 그럴 때마다 난 어김없이 티브이 앞에 죽치고 앉아 몇 번이고 본다. 마치 처음 보는 영화같이. ‘성격 참, 이상하다’는 둥, ‘당신 때문에 드라마 못 본다’는 둥, 따가운 안사람의 질책이 뒤통수로 날아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꿋꿋하게 본다. 얼마나 재밌는지, 영화 진짜 잘 만들었다, 이러면서…. 끝으로 오해 마시라, 난 성격 안 이상하다.

윤운식 사진에디터석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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