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나와 경찰에 연행되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정확하게 20년 전이다. 사진부 수습 시절에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 야근하는 선배 따라 한달 동안 하루 걸러 야근을 할 때 큰일이 닥쳤다. 며칠 전부터 파업한 한국통신 노조원들이 정부의 강경 대응에 쫓기듯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들어가 농성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파업한 노조는 마치 천인이 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집단인 것처럼 매도하는 분위기라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종교시설이 범죄자가 은신하는 소도인가?’, ‘법집행에 예외 없다’ 이러면서 빨리 들어가 끌어내라는 논조를 펼쳤다. 정부 쪽 분위기도 ‘불법, 폭력, 체제전복 세력은 뿌리 뽑겠다’고 살벌하게 외쳐대는 형국이니 공권력 집행은 시간문제였다. 오늘? 내일? 이러면서 매일 야근자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밤새 성당에서 대기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성당으로 향했다.
1987년 6월, 대학교 1학년 때 선배 따라 나간 시청 앞에서 경찰에 쫓기다 어찌어찌해 명동성당까지 들어와서 그 계단에서 잠을 잔 기억(사실, 난 태어나서 그때 처음으로 명동성당을 가봤다)이 있었지만,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출범했어도 여전히 그곳의 찬 마당엔 마지막 피난처를 선택한 사람들이 불편한 잠을 자고 있었다. ‘서울의 화려함과 안 어울린다.’ 당시 명동성당의 첫인상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지친 영혼을 의지할 곳이 도심에 있다는 것이 어딘가 싶어 ‘이것이 다 하늘의 뜻인가 보다’ 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아무개 선배와 성당 앞 계단에서 죽치고 있었는데 -당시 그 선배는 이미 회사를 떠나 다른 일을 하기로 맘먹고 있었던, 소위 학업에 뜻이 없는 군대용어로 ‘갈참’이었다-한 11시쯤 됐나? 선배가 나에게 뒷일을 부탁한다면서 회사로 들어갔다. 새파란 수습이 ‘안 돼요’ 그럴 수도 없었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 그러마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마침, 같이 수습생활을 하던 타사의 입사 동기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워가면서.
날이 밝자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거리를 치우는 사람들과 일상을 준비하는 가게들이 하루를 열었다. 밤새 얘기를 해서인지 격일로 계속되는 야근 때문인지 극도의 피로감이 두 눈으로 밀고 들어왔다. 마침, 주위에 다른 기자들도 철수하고 없겠다 일반시민들도 모습을 나타내는 아침에 설마? 이러면서 난 그 동기와 같이 철수하기로 강화협약(?)을 맺고는 현장을 나왔다.
회사에서 눈을 붙인 지 얼마가 됐을까? 아침에 출근한 다른 선배가 깨웠다. “야, 다 잡아갔단다.” 허겁지겁 숙직실을 나와서 텔레비전 속보를 보는데, 어? 어? 이거 이거… 성당 앞마당까지 들어와 노조원들을 끌고 가는 경찰들 사이로 카메라 스트로보가 터지지 않는가? 내 동기랑 나랑은 철수했고 분명히 근처엔 기자가 없었는데 텔레비전 화면은 뭐고, 펑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는 뭔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근처에서 밤새 자다 일어나 우리가 빠져나간 뒤 그 자릴 지나던 외신 사진기자 선배 하나가 마침 진입한 경찰을 쫓아가 셔터를 눌렀던 것이다. 그 회사 텔레비전 카메라와 함께.
다음날 우리 신문 1면엔 12시간을 버틴 내 이름 대신 10분 동안만 현장에 나타난 ○○○이 제공한 큼지막한 사진이 떡~ 하고 실렸다. 억울해선지 피곤해선지 근육이 틀어지는 기분이 들고 눈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튿날부터 몸살이 나 자리에 눕고 말았다.
다시 20년이 지났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했다. 어쩜 그리 똑같은지 대부분의 언론은 ‘불법 행위자는 엄단하라’면서 종교시설도 공권력의 예외가 아니라며 다그친다. 정부도 똑같이 불법, 폭력 세력 운운하면서 법집행을 강행하겠단다. 결국, 한 위원장은 10일 자진출석했다. 그런데 종교시설로 피신한 노동운동가도 범죄자 취급 하면서 가만 놔두지 않는 공권력, 그 정도의 협소한 포용력으로 국민을 다스린 정부의 말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 20년 전 일이다.
윤운식 사진에디터석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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