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사건·사고 현장을 누볐던 <한겨레> 사진기자들이 한해를 마감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을 꼽아 봤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팍팍한 우리 현실탓인지 ‘무거운 사진’이 많습니다. ‘유쾌발랄’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 2016년을 기대하며 ‘2015년 나의 사진’을 11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다섯째는 강재훈 선임기자가 꼽은 사진입니다.
⑤ 세월호 희생자 신승희양의 어머니 전민주씨
세월호 희생자 신승희양의 어머니 전민주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세월호 희생자 안산 단원고 2학년 신승희양의 어머니 전민주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지난 5월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승희양의 집에 도착한 뒤, 승희의 방에서 전민주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승희양은 전민주씨의 막내딸이다.
“왜들 그러세요? 정말 화가 나요.” “놀러 갔다 죽은 애들”과 “나라 위해 죽은 천안함 용사”로 죽음의 등급을 나누는 미친 세상이 싫어요.”
승희는 사고 한 달 전 이를 예견하듯 ‘항해’라는 천안함 추모 시를 썼다.
어느 고요한 밤
잔잔한 바다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이
우리의 가슴에 남아
계속
콕, 콕 찌른다.
그 아픔에
우리의 눈물이 비가 되어
잔잔한 바다와
뒤섞인다.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
2014년 3월,
<천안함 추모 나라사랑대회> 장려상, 신승희
그 시를 남기고, “일주일간 예민하게 굴어 미안! 여행 다녀온 뒤 열공빡공 할게”라는 쪽지를 엄마에게 남기고 수학여행 길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승희. 그날 이후 일분일초가 승희 어머니에겐 심장 깎아내는 형벌의 시간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승희와 했던 마지막 통화 이야기를 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승희 어머니 전민주씨.
“애들 죽은 거 다 잊고 돈 많이 받을까봐 그러나요(오열). 억만금 줘도 안 바꿔요 절대로! 김치에 밥만 먹어도 행복했어요. 내 새끼 없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죠?”
“아직 아이의 시신조차 못 찾은 윗집 은화 엄마를 용기 내서 만났어요. ‘미안하다’ 했더니 ‘그런 말 말라며, 뭐가 미안하냐’ 해요.”
“이런 말 주고받는 현실이 참으로 비참해요. 9명의 실종자 인양을 가장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한참을 듣고 난 뒤 사진을 찍기 위해 나는 이렇게 부탁의 말씀을 드렸다. “승희 어머니, 저는 승희 어머니의 사진을 이렇게 촬영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불편하시거나 싫으시면 안 해주셔도 됩니다.” 승희의 책상 위에 있던 승희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를 들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승희가 겹치게 찍으려고 하니, 눈을 뜬 채 저를 바라보세요, 그리고 승희의 액자로 어머니 얼굴을 가렸다가 천천히 가슴까지 내려주세요.” 전민주씨는 사진기자의 의도와 마음을 이해하고 시키는 대로 몇 차례 반복해서 그 동작을 해 주었다. 셔터를 누르는 사진기자의 눈에서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 몇 차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흐린 눈으로 셔터를 눌러야했다. 승희 어머니 전민주씨나 사진기자나 이렇게 해서라도 승희가 살아돌아 올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랴 싶은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촬영된 전민주씨의 사진은 <한겨레> 2015년 5월 23일자 20면에 실렸고,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선정한 제149회 <이 달의 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진도 앞 바다 승희양에게 바친다.
정확히 참사 20개월 뒤인 지난 12월 16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청문회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이 끝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