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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명박 정부 국사편찬위원장, “박근혜 정부 독재적 요소…하지만”

등록 2015-12-24 21:50수정 2015-12-25 13:56

이명박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명박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인물로 본 2015년


⑧ ‘국정화 반대’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진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확정 발표한 지난 11월3일, 아이러니한 장면이 펼쳐졌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99.9%가 편향 교과서를 선택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때, 그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식당에 이태진(72) 서울대 명예교수가 나타나 ‘좌편향 검정 교과서는 없다’고 조목조목 이유를 열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내던 2011년 당시, 현행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민주주의’라는 표현 대신 주로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장해온 ‘자유민주주의’를 반영해 한때 ‘뉴라이트’라는 의심까지 받았던 원로 사학자다.

23일 만난 이 교수에게 지난달 이야기부터 물었다. 그는 “사실이 아닌 것을 이유로 제도를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현행 검정 교과서 관리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이거는 국민들한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후배 교수들이 제일 좋아했다고 하데요. 선배 교수가 앞장서서 ‘국정은 안 된다’ 발언해줘서 많이 편했다고요.” ‘대한민국 역사학자의 90%는 좌파’라는 등의 막말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을 좌우 이념 대결로 몰아가려던 정부·여당은 이 교수와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등 보수 정부 시절 국편위원장을 지낸 ‘진짜 보수’, ‘원로 보수’까지 나서며 결정적으로 명분을 상실하게 됐다는 게 역사학계 대부분의 평가다.

“교과서 좌편향” 황교안 브리핑때
“그런 건 없다” 별도 기자회견
정부 이념대결 프레임 좌절

“1948년 건국 뉴라이트 주장은
독립운동 역사에 대한 부정
우린 민주주의 성향 강한 나라
정조때에 이미 ‘민국’이란 표현
헌법도 일제항거 통해 쟁취한 것
지금이라도 국정화 재고하기를”

이 교수는 뉴라이트가 주장하던 ‘1948년 건국’ 개념이 정부·여당에 의해 공식화하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탄생의 힘을 근원에서 없애버리는 것이라는 점을 좀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1919년 3·1운동 한달 뒤에 상해 임시정부 세우면서 국호를 정할 때, ‘우리가 무슨 힘으로 새 나라를 세우고 있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벌어진 만세 함성의 힘이다. 그 함성은 총독부에 의해서 독살된 고종 황제에 대한 애도 표시이기도 했다. 그 힘으로 세우는 나라의 이름은 황제가 세운 대한제국을 계승한 민국으로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렇게 대한민국이 탄생한 겁니다.” 그는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일제 병합을 무효화하려 했던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운동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아래 이뤄졌다”며 “1948년을 건국으로 하게 되면, 이러한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라고 애석해했다. 이 교수는 2010년 ‘1905년 한일병합은 불법이다’라는 내용의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을 주도했던 이들 가운데 한명이다. 2011년 현행 검정 역사교과서의 집필 기준에 ‘자유민주주의’를 반영한 것은 “순수한 근대정치의 형태로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국가와 정부의 임무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근현대 인류사를 관통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쓴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독재적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 거는 사실인 것 같다”면서도 “부분적인 것일 뿐 전체적이거나 체제적인 것은 아직 아니다”라며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라기보다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정통한 그가 역사 연구를 통해 확인한 ‘민주주의적 전통’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성향이 강한 나라”라고 했다.

“정조 때 이미 ‘민국’(民國)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정조실록에만 20여건, 고종 때는 1000건씩이 나와요. 우리한테는 왕조 국가일 때부터도 다 같이 산다는 전통적인 공화의식이 있었던 거지요. 일본 헌법학자들 중에는 일본의 헌법은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주어졌는데, 한국은 일본 식민통치 항거를 통해 스스로 쟁취해서 만든 헌법이라며 한국이 동아시아 3국 가운데 민주주의가 가장 앞서간 역사적 이유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교수는 정부가 국정화를 지금이라도 재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년 전 한·일 양국 지식인 공동성명 작업을 같이 했던 일본 교수들이 국정화를 보고 너무 놀라요.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러워했거든. 중국에서도 전화가 왔는데 ‘대일본 비판 톤이 다운되는 거 아니냐’ 그런 거 걱정을 해요. 나는 아직도 정부가 국정화를 재고했으면 좋겠어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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