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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

등록 2015-12-25 20:19수정 2015-12-26 10:15

백두산 가는 길. 2008년 1월 촬영.  탁기형 선임기자 <A href="mailto:khtak@hani.co.kr">khtak@hani.co.kr</A>
백두산 가는 길. 2008년 1월 촬영.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남편인 레트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리자 쓰러져서 울다가 고향인 ‘타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일어선다. 이때 나온 대사가 바로 그 유명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이다. 첫 대입시험에 미끄러진 나는 이듬해 초 어느 날 매일 가던 재수 학원을 빼먹고 허름한 재개봉관에서 혼자 봤던 그 영화를 잊지 못한다. 딱히 영화가 재밌어서가 아니다. 그 긴 시간을 극장주가 봄-내가 볼 땐 겨울-날씨 핑계로 난방도 잘 안 해주는 어느 삼류극장에서 영화가 끝날 땐 몸이 제대로 펴지지 않을 정도로 추위에 꽁꽁 얼면서 봤다. 솔직히 내용보단 입장료 생각에 끝까지 본 것 같다. 그 영화가 강렬했던 기억으로 남은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외쳤던 주인공 비비언 리가 일몰인지 일출인지 잘 모르겠지만, 붉은색 태양에 물든 고향 타라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 때문이었다. 장엄한 음악과 강렬한 색채 그리고 시대의 난관을 극복해온 주인공의 강한 의지. 당시 내 처지가 그래서인지 그 대사는 왜 그렇게 마음에 쑥 파고들어왔는지. 그렇다고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정신 차리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신파 같은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잠깐의 순간만큼은 뭔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영화가 그 정도면 훌륭한 거지 뭐.)

사실, 어제 뜬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뭐가 다르겠는가? 태양은 인간이 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거기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세상 모든 게 그렇듯 태양도 자연의 섭리대로 365일을 똑같이 뜨고 질 뿐이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다르다면 정말로 지구가 큰일 날 일 아닌가? 그러나 인간은 매일 똑같이 뜨고 지는 자연의 섭리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신문사도 이맘때면 바쁘게 돌아간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장식했던 굵직한 뉴스들은 무엇이 있었는지를 되짚고 정리하며 새해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바 등을 정해 아이템으로 삼는다. 사진도 마찬가지 작업을 한다. 지난해 주요 이슈를 정리하고 새해의 화두는 무엇인가를 정한다. 그러곤? 단 한 장으로 표현한다. 글 기사와는 다르고, 어려운 점이 바로 한 장에 의미를 집어넣기이다. 송년호는 일단 그해의 뉴스를 선택하는데 ‘성수대교 붕괴’처럼 표현하기 용이한 것도 있지만 ‘불통의 정치’처럼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그럴 때마다 사진기자들은 머리를 짜내고 갖가지 표현방법을 총동원하는데, 별을 돌리기도 하고 지는 태양을 넣기도 하며 차량의 불빛을 늘어놓기도 한다. 신년호는 주로 태양을 걸기 때문에 태양이 걸린 장소를 보면 새해에는 무엇이 이슈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이나 철조망이면? 통일, 공장이나 상선, 비행기 등이면? 경제, 국회나 여의도면? 정치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름답게, 의미도 가지면서 뜨고 지는 태양을 집어넣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에 일출로 유명한 곳이 그렇게 많지만 정작 신문에서는 그곳에 특별한 의미가 없으면 사진에 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사의 사진기자들이 송년호와 신년호를 위해 산으로 바다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 눈에 선하다.

지구의 다른 편에서 열심히 일하다 온 똑같은 태양을 보고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 능력 때문에 인간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눈물에 젖은 커다란 눈망울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던 그녀처럼 말이다.

윤운식 사진에디터석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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