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나는 역사를 기록하는가?

등록 2016-01-29 18:58수정 2016-01-30 10:31

1997년 3월1일 ‘대지의 눈물’ 공연 무대에 오른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가수 한영애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97년 3월1일 ‘대지의 눈물’ 공연 무대에 오른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가수 한영애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어디 가서 강의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진기자라면 가끔 받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사진을 찍습니까?” 입사 초창기엔 온갖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말을 덧붙여서 말을 했는데, 대표적인 대답으로는 “내가 누르는 한 컷 한 컷이 다 역사라고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가 있다. 멋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생각해도 멋지다. 그러니 이 직업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듣기엔 얼마나 멋져 보일까? 고로 난 멋져~(착각은 자유니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대답이지만 한창 젊은 사진기자가 그 정도의 패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당시의 나를 변호한다. 세월이 조금 지나니까 더 이상 그렇게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답을 하진 않고 ‘타사한테 물 안 먹으려고 찍는다’고 하거나 ‘부장한테 안 깨지려고요’라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현실적인 답변만 한다. 역사의 물결에 내가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입사 초기의 당당함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이 겸손 때문인지 나태함 때문인지 이따금 스스로 헛갈려 하기도 한다.

역사학도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지만, 역사란 것이 어느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기록하는 사진도,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쓴 일기도, 동네 슈퍼 아저씨가 써붙인 가격표도 따지고 보면 다 역사가 아닌가? 그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기록과 증거가 다 역사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앞에 개인은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개인은 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래서인가? 때때로 한 사람의 용기가 곧 커다란 역사를 이루기도 한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니는 본인의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했다. 광복 후 무려 46년이 되던 해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추악함과 대한민국의 무지와 무능이 할머니의 참담한 증언에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단일 주제로 열린 집회로는 세계 최장기간 집회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이 기록은 매주 경신되고 있다.

사진은 1997년 3월1일 본사가 주최하고 가수 이선희, 윤도현, 동물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온겨레 모금공연 ‘대지의 눈물’의 한 장면이다. 김학순 할머니(오른쪽)가 공연 중간에 나와 가수 한영애씨의 손을 잡고 행사 주최 쪽과 공연장을 찾아준 국민께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그해 12월16일 새벽, 할머니는 고통 많은 지상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한 많은 세월을 마감했다. 알뜰하게 모은 돈 2천만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기탁하고 기만적인 일본의 국민기금은 받지 말고 사과를 받으라는 유언을 남긴 채.

지난해 말에 느닷없이 한·일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며 양국의 외교 수장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는 이제 끝났다고 했다. 우리 대통령도 누구도 못한 것을 자신이 해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내용은 차치하고 어이가 없다. 끝났다고? 누구 맘대로 역사의 끝을 얘기하는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날에도 수요시위는 열렸다. 내가 한 회사생활보다 더 오래된 집회다. 주제도 한결같다. 솜털같이 가벼운 사회생활을 하고선 너무 빨리 타협해온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다시 물어볼 요량이다. “나는 과연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한 컷 한 컷을 누르는가?”

윤운식 사진에디터석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72살 친구 셋, 요양원 대신 한집에 모여 살기…가장 좋은 점은 1.

72살 친구 셋, 요양원 대신 한집에 모여 살기…가장 좋은 점은

강남역서 실신한 배우 “끝까지 돌봐주신 시민 두 분께…” 2.

강남역서 실신한 배우 “끝까지 돌봐주신 시민 두 분께…”

부산→서울 9시간30분…‘귀경길 정체’ 저녁에도 6시간 이상 3.

부산→서울 9시간30분…‘귀경길 정체’ 저녁에도 6시간 이상

영화 속 ‘김우빈 무도실무관’, 현실에서 진짜 채용공고 났다 4.

영화 속 ‘김우빈 무도실무관’, 현실에서 진짜 채용공고 났다

늙는 속도 늦추기, 나이 상관없다…저속노화 식단에 빠진 2030 5.

늙는 속도 늦추기, 나이 상관없다…저속노화 식단에 빠진 2030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