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서울의 한 대학교 합격자 발표 현장에서 이 대학에 합격한 한 수험생이 가족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천재는 논외로 치고, 사람을 수재, 범재, 둔재로 나눈다면 나는 아마도 둔재 쪽에 있었던 것 같다. 인생에 특정한 때가 되면 치른 시험에서 한번에 합격했던 적이 없다. 운전면허 시험도, 대학교 입학시험도, 지금 다니는 회사의 입사시험도 그렇다. (시험에 떨어지면 둔재냐고 태클 걸지 마시라 그냥 내가 날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니.)
80년대 지원했던 대학에 미끄러져 재수할 생각을 굳힌 나는 ‘올해, 피 터지게 공부하자’ 하는 마음으로 학원에 등록했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청운의 큰 뜻!’을 품고 학원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침침하게 떨어지는 신문가판대의 조명 사이로 각 신문 1면에 ‘○○대학교 휴교령’이란 헤드라인이 시커멓게 먹띠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친했던 친구가 합격해 다니던 학교였는데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이른 아침부터 재수학원으로 출근하는 나는 ‘자식, 합격해서 좋겠고, 학교가 쉬니 더 좋겠네’ 하면서 부러워하다가 이내 ‘아니, 이것들이 배가 불러서…’라는 밑도 끝도 없는 약오름이 밀고 올라왔다. 휴교령이 뭔지 모르는 무식한 백성이 자기 처지가 잘 안 풀린다고 남들은 다 놀고먹고 하는 줄 알았나 보다.
철저하게 학벌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 입학에 개인과 가족이 모든 것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서 그 시험을 볼 때까지의 인생은 오직 그 시험을 얼마나 잘 봐서 얼마나 좋은 데 들어가느냐에 맞춰져 있다. 초·중·고를 다닐 때는 물론이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태교를 하는 것도, 태어나서 무엇을 먹이고 어디서 재우는가 하는 것도, 어떤 유치원에 다니고 무슨 책을 읽는가 하는 것도 다 그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그 시험을 본 뒤의 인생은 어느 학교를 나왔다는 간판이 낙인처럼 찍혀서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야기가 과장된 면은 있지만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인정할 정도로 사실인지라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룰 수밖에 없다.
사진은 1995년도 서울의 한 대학교에 합격한 수험생이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그 시절에는 본인이 직접 대학교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러고는 ‘진짜 내가 합격한 게 맞는 거야?’ 또는 ‘혹시…’ 하면서 학교에 직접 나와 수험번호를 확인하던 때였다. 그 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은 순간순간을 잡기 위해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생후 19년의 세월에 대한 최대의 보상이 내려오는 순간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온 수험생들은 끌어안고 웃기도 울기도 하고 헹가래를 치기도 하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합격자 발표 현장은 환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극장 같았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문자로 각자가 집에서 확인하는 세상이니 저런 사진은 이제 역사 속의 장면으로 사라졌다.
어슴푸레한 빛을 보면서 품은 청운의 큰 뜻은 오래가지 않았다. 슬슬 당구장으로 가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학원 근처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을 보려고 하루종일 죽치기도, 아예 극장으로 출근하기도 했다. 앉아서 책을 본 시간만큼 끽연으로 상쇄했다. 노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공부한 시간이 점점 줄더니 여름철이 되자 완전히 역전됐다. 그래서 어찌 됐느냐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데 그해 진학했다. 그러고 보니, 난, 헉! 천, 천재인가?
인생을 살아보니 대학이 중요하긴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간판이 주던 힘도 많이 변하고 있다. 사회가 다양화되니 당연한 결과다. 올해 실패를 맛본 친구들에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뻔한 말이지만, 그래도 그게 진리 같다.
윤운식 사진에디터석 뉴스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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