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미동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이 방학을 마치고 첫 등교해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힘든 부분은 뭘까? 직장상사와의 갈등? 조직문화에 대한 부적응? 적성에 안 맞는 업무? 근무조건? 개인적으로 그것보다는 방학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시절에는 더운 여름이 시작돼서 몸이 처지고 만사가 귀찮아질 무렵, 겨울이 문을 열고 ‘춥지? 이것들아’ 하면서 달려들 때 ‘아, 학교 다니기 힘들다’라는 생각에 때려치울까 말까를 고민할 때쯤이면 방학이 짠~ 하고 나타났다. 방학은 우리를 학교라는 무지막지한 곳으로부터 보호해준 고마운 제도였다.(지금도 의문인 게 봄, 여름, 겨울 방학은 있는데 왜 가을 방학이 없느냐는 점이다. 진작부터 가을은 ‘등화가친’이라고 해 독서와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조상이 규정지어서 그런가 싶은데, 사실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게 어딨나? 다 싫지.) 최초로 방학이라는 제도를 만든 사람은 분명히 인류의 문화창달과 공영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성인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덥다고 집에서 쉰들 에어컨도 없이 달랑 선풍기 하나로 온 가족의 열기를 식혀야 하는 집에서 더위를 쫓는 건 어림없었고 한 사람 누울 정도의 아랫목을 가진 집에선 온 가족이 이불 속에서 목만 삐죽이 내놓고 딱히 뭐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교에 잠시 안 가고 늦게까지 잘 수 있었다는 것,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직장생활에도 휴가라는 제도가 있지만 어디 한두 달씩 쉬는 학창시절의 방학에 비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짧은 휴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몰려 있어 막히는 도로를 뚫고 구하기 힘든 숙박을 하고 사람 구경 실컷 하고 오면 몸은 천근만근, 이게 휴간지 사역인지.(아무리 그래도 사장님 전 휴가가 좋아요.)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학창시절의 방학이 몹시 그립다.
사진은 지난 2월 서울시내의 한 초등학교가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날의 풍경이다. 방학이라고 평소 늦잠을 잔 여파가 아직도 남아서인지 어린 초등학생은 연방 하품을 거듭한다. 앞뒤의 사진을 보면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는 녀석의 얼굴이 앵글에 담겨 있다. 하품이 잇따르더니 이윽고 두 손을 눈으로 가져가 마구 문지른다. 늦잠을 잘 수 있었던 날을 곶감 빼먹듯 보내고 알맹이 없는 꼬챙이의 끄트머리를 만진 것 같은 청천벽력 같은 개학날.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친구들 만나 인사하는 장면, 담임선생님과 하이파이브하는 장면,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방학숙제를 제출하는 장면 등 ‘개학’이란 주제로 그날 취재해온 사진 중 이만큼 더 적절한 것은 없었다. 하품하는 사진이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등교해서 쩍쩍 하품만 하는 아이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별로 안 좋아할지 몰라 저장만 해뒀다.
사람은 위치에 따라 생각도 변한다고 했던가? 학부모가 되니 ‘방학’이란 단어와 ‘개학’이란 단어가 완전히 정반대로 다가온다. 방학이라고 밤늦게까지 손가락이 닳도록 스마트폰 문질러대다가 해가 중천에 떠도 안 일어나는 아이를 보면 학교의 방학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건 후보가 있다면 직접 선거운동 자원봉사까지 해주고 싶을 정도다. 밥은 또 왜 제때 안 먹는지. 아이들에겐 청천벽력 같지만 ‘개학’이란 말은 부모들에겐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의 속삭임과 같다. 개학을 하면 방학 때와는 달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그래도 별수 있냐? 네가? 결국엔 일어날걸?’ 이미 승리를 알고 경기하는 권투선수처럼 아이를 다룰 수 있다. 애들은 그렇다 치고 더 나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직장인은 일 년에 적어도 두 달은 쉬어야 할 것 같다. 앗! 여긴 대한민국이지. 책상 사수!!!
윤운식 사진에디터석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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