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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느닷없는 출석요구…경찰서 가보니 내 통신자료가 좌르르

등록 2016-03-28 22:22수정 2016-03-29 16:11

방준호 <한겨레> 기자가 지난 18일 오전 통신자료 유출 관련 조사에 응하기 위해 서울 마포경찰서로 출석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방준호 <한겨레> 기자가 지난 18일 오전 통신자료 유출 관련 조사에 응하기 위해 서울 마포경찰서로 출석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정보기관 무차별 통신자료 수집

방준호 기자 취재일지로 본 수사 사례
“수사 대상자와 통화한 흔적이 있습니다. 소명이 필요하니 서로 나와 주세요.”

지난 18일 저는 ‘출석요구’를 받고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4팀에 참고인 자격으로 나갔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지난해 말 제가 취재했던 사람이 수사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경찰은 취재원과 통화한 사람이 나라는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호기심 반으로 찾아간 경찰서에선, 수사 대상자이자 제 취재원인 ㄱ씨의 문자와 통화내역·통화위치·통화시간 등을 파악해 제 번호를 찾아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경찰은 이 번호를 갖고 제가 가입한 이동통신회사 케이티(KT)로부터 지난 1월5일 ‘통신자료’를 받아 거기 담긴 ‘방준호’란 이름을 알아냈다고 얘기했습니다.

분통이 터졌습니다. ‘아니, 내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고도 내겐 알려주지도 않는단 말인가.’ 저는 매달 7만~10만원의 통신비를 연체 한 번 없이 따박따박 내는 브이아이피(VIP) 고객입니다. 백번 양보해 경찰은 그렇다 쳐도, 가입자의 개인정보 보호 의무가 있는 케이티까지 그러다니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찰과 통신사가 이처럼 저의 개인정보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제공된 개인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요.

취재원 통화내역에서 번호 딴 뒤
통신자료 조회해 내 이름 알았다고
경찰 설명 듣고 난 뒤 분통터져

고작 이름, 주민번호, 주소인데
크게 보도할 사안인가 고민도 잠시
자료수집 이유 묻자 전화 뺑뺑이
뒤처리 과정도 일체 공개 거부
비로소 심각한 문제임을 직감

폐기한다는 자료 쌓아뒀다가
별건 수사에 안쓴다는 보장 없어
 

■ 시작은 테러방지법 지난 2월23일 저녁 7시5분부터 3월2일 저녁 7시32분까지 192시간26분. 결국 테러방지법은 통과됐지만, 국회 안팎에서 필리버스터가 벌어진 이 시간 시민들은 정보·수사기관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 1천만여건(2014년 기준)에 이르는 통신자료가 정보·수사기관에 제공된다는 사실과 함께 각 통신사 누리집에서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으니, 스스로 알아보자는 움직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졌습니다. 통신사들은 지난해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뒤에야 비로소 누리집 등에서 직접 신청한 가입자에 한해 1년치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서’를 발급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를 받아든 각계 시민들의 ‘증언’( ▶ 바로 가기 : 통신사서 수집한 주민번호로 사생활까지 엿본다 )이 이어졌습니다.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1년 동안 31건이 수사기관에 제공됐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한다’는 한 시민도 국가정보원이 왜 조회했는지 알 수 없다는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렸습니다.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통신자료가 국정원 등에 제공됐다며 ‘사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한겨레> 24시팀 안에서도 통신자료 제공을 확인한 기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처음엔 ‘고작 인적사항인데…’ 이런 사실이 확인되던 초기 한겨레에서는 ‘이 문제를 크게 보도할 사안인가’ 고민이 있었습니다. 통신자료에 담긴 ‘개인정보’라고 해봤자 ‘고작’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정도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죠. ‘수사(내사) 대상자와 통화한 기록이 있는 사람들’ 확인은 수사상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냐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신자료에 포함된 개인정보는 문제를 제기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맞다”는 정보인권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나 헌법재판소 등도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나만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보인 주민번호가 다른 민감한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될 수 있다는 공통된 평가(<한겨레> 3월12일치 8면)를 내놓고 있었고요. 주민번호만 있으면 수사·정보기관은 이를 바탕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다른 공공기관이나 자신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를 종합해 건강상태·재산·가족관계 등 한 사람의 내밀한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 전화 뺑뺑이로 하루가 저물다 수사기관도 통신사도 왜 가입자의 정보를 들여다보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에 이유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한겨레> 3월11일치 2면)였습니다. 대표전화부터 관련 없는 부서까지 ‘전화 뺑뺑이’만 돌다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조회사실 통지를 받고 “내가 열심히 일한 증거 아니겠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기자들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한겨레> 보도 뒤 “수사기관이 수집한 사유까지 알려주는 것은 수사 밀행성(은밀하게 진행함)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이유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 ▶ 바로 가기 : 강신명 경찰청장 “수집사유 공개에 반대”…수사편의만 강조 )을 밝혔습니다. 국정원이나 검찰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수사(내사) 목적에 한하니 수사·정보기관의 말을 믿어달라’는 게 핵심입니다. ‘이유’를 알고 있는 통신사들도 가입자의 편은 아니었습니다. 통신사들이 법에 따라 1년 동안 보관하고 있는 ‘자료제공요청서’ 등에는 통신자료 제공 이유를 기재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 모두 “수사·정보기관의 영역인 탓에 우리 마음대로 (이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 ▶ 바로 가기 : ‘개인정보 계속 넘겨 주겠다’…이통사들의 무책임 )고 밝혔습니다.

■ 수집한 자료를 별건수사에 활용하면? 수사·정보기관이 저인망식으로 그러모은 우리들의 통신자료는 어떻게 처리될까요? “수사나 내사와 관련이 없다면 통신자료는 폐기한다”는 게 이들의 공식 입장입니다. 하지만 통신자료에 대한 보존과 폐기 지침도 없는데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나마 검찰과 경찰은 남기고 버릴 통신자료를 구분하는 ‘수사와의 관련성’은 각 수사관과 검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고 설명하는데, 국정원은 “내부 업무이므로 설명할 수 없다”( ▶ 바로 가기 : 맘대로 뒤진 통신자료, ‘별건수사 활용’ 알길 없다 )고 말합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양홍석 변호사는 “아무런 규정도 없고 통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정보·수사기관이 따로 필요한 통신자료를 축적해 빅데이터를 만들고, 관심 있는 인물의 통신 관계도를 그리지 않을까 의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국가기관의 말을 그대로 믿기엔 2008~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2012년 국정원의 선거 개입 등이 남긴 트라우마가 큽니다. 투명한 과정을 보장하고 이를 제어할 제도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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