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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취재현장 안 나가는 편집인·논설위원·편집기자도 털렸다

등록 2016-03-28 22:31수정 2016-03-29 10:02

정부기관 무차별 통신자료 수집

통신내역 조회 한겨레 기자들 보니
2016년 1월7일. 누군가에겐 특별한 날, 또다른 누군가에겐 별 볼 일 없는 목요일. 전날 북한의 4차 핵실험 소식과 이어진 우리 정부의 대북 강경대응 천명으로 이날 아침 신문이 도배됐다.

<한겨레> 경제부문에서 유통 쪽을 담당하는 이재욱 기자는 이날도 식음료회사 홍보담당자 등을 만나 여느 때처럼 일상적인 취재를 이어갔다. 같은 날, 최용 정의당 서울시당 정책위원장은 청년 비정규직 대책 마련을 위한 ‘장그래 서포터즈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식음료·패션 기자에 야당 당직자·민주노총 실무자…
만난 적도 통화도 안했는데…일제점검 하듯 살펴봐

( ※ 클릭하면 확대 됩니다. )
1월7일. 일정표를 뒤적여봐도 두 사람에겐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날 이 기자와 최 위원장의 통신자료를 함께 받아갔다. 두 사람은 이제껏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 기자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한겨레 사회부를 거쳤지만 지난 1년 동안은 정치 쪽과 거리가 먼, 식음료와 패션 등을 취재했다. 이 기자보다 9살 많은 최 위원장은 경기 수원에서 학교를 졸업한 뒤 보건의료노조 활동을 시작으로 정당에 몸을 담았다. 한겨레가 28일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두 사람 외에도 민주노총 실무자와 더불어민주당의 당직자 등 27명에 대해서도 같은 날 통신자료를 받아갔다. 국정원이 이들 29명을 한데 모아 조사한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이 고리 안에 묶인 게 과연 29명뿐일까. “(1월7일이)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일제점검의 날이었을까요?” 최씨가 웃으며 말했다.

‘한겨레21’ 편집장 지낸 논설위원 2009년에도 사찰 논란
공연취재 전문 편집기자, 국방부 검찰단서 조회 ‘황당’

■ 기자 한 명당 2.2건…취재 현장 나가지 않는 이들까지

28일까지 취합된 한겨레 기자들의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서’를 분석해보니, 등기이사인 정석구 편집인부터 2015년 7월말 입사해 올해 1월 수습을 갓 뗀 기자들까지 지난 한 해 동안 34명(76건)의 통신자료가 각각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 국방부 검찰단에 제공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 한 명당 평균 2.24건꼴로 통신자료가 조회된 셈이다.

이날까지 이동통신회사로부터 결과를 통지받은 한겨레 기자 34명 가운데는 24시팀 소속 기자가 8명(16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팀 전체 11명 중 8명(73%)의 통신자료가 털린 것이다. 24시팀은 경찰과 서울지역의 각 검찰청 등도 취재하기 때문에 “수사(내사) 대상자와의 통화 내역을 확인한 차원”이라는 정보·수사기관의 해명에 일정 정도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수사기관이 이 수사 대상자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일체 입을 닫고 있는데다, 일선 취재 현장에 나가지 않는 편집인·논설위원·편집기자 등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지고 있어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기자 중에는 정석구 편집인과 김종철 신문부문장(현 토요판팀 선임기자), 박용현 논설위원(현 정치에디터), 정상영 편집1팀 선임기자 등이 포함돼 있다. 네 사람 모두 지난 1년 동안 일선 취재 현장에 나갈 일이 없었다. 주변 지인 중 수사 대상자가 있지 않고서야 수사 대상자가 될 만한 인물들과 직접 통화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게 넷 모두의 공통적인 얘기다. 정 편집인은 지난 4일 서울지방경찰청에 통신자료가 제공된 것과 관련해 “그간 썼던 글, 주변 사람들을 되짚어보고 있다.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긴 하지만 (내가 통화했다는 수사 대상자가 누구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에 통신자료가 제공됐던 김 신문부문장과 박 논설위원은 서울남부지검에, 정 선임기자는 국방부 검찰단에 통신자료가 조회됐다. 박 논설위원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편집장이던 2009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의 민간인 사찰 대상자 목록에 포함된 적이 있어 주목된다. 반면 정 선임기자의 경우, 편집1팀에서 일하기 전 10년 넘게 문화부문에서 공연 분야를 취재해서 도무지 군 쪽과의 관련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여·야 출입기자 같은날 조회…검찰 ‘기지국 털이’ 의심
국정화·노동개편 등 쟁점 많았던 12월말 열람건수 몰려

■ 같은 날, 같은 번호로 털린 두 기자는 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4월24일 황준범·이정애 기자의 통신자료를 같은 문서번호(2015-4140)로 제공받았다. 두 사람은 당시 각각 여당과 야당을 취재했다. 국회 정론관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일했지만, 취재 대상이 서로 겹치지는 않았다. 이 기자는 “황 기자와 당시 취재하던 사안 등을 따져봤는데, 서로 겹치는 대상을 찾기 어려웠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아는 지인 중에 수사(내사) 대상자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정 공간을 관할하는 기지국을 경유하는 발신·수신 번호를 모두 받아낸 뒤, 통신자료로 이 번호의 가입자를 확인하는 ‘기지국 털이’가 이뤄진 것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기지국 수사를 통해 전화번호를 수집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공소나 입건이 결정되는 시점에서 30일 이내에 수집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가운데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통지 절차가 이뤄져, 기지국 수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보·수사기관은 지난해 말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등 굵직한 정부 정책들을 취재했던 사회부문 사회정책팀 기자 5명의 통신자료도 조회했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을 취재했던 전정윤·진명선·엄지원 기자 등 교육담당 기자 3명 전원은 적게는 1건에서 많게는 4건까지 국정원과 경찰, 검찰 등에 골고루 통신자료가 제공됐다. 노동 분야를 담당하는 전종휘 기자의 경우,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만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에 통신자료가 3건이나 제공됐다. 전 기자에 대한 통신자료제공요청서의 문서번호는 각각 민주노총 실무자 40명, 34명, 6명과 겹친다. 전 기자는 “민주노총 관계자와 통화한 내역이 있어 함께 수집당했을 거라고 추정되지만, 내 개인정보를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취재를 목적으로 통화한 기자들의 통신자료까지 가져간 것은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작년말 3차 민중집회 뒤 하루에만 경찰에 86건 제공
민주노총쪽과 통화 번호 장기간·광범위한 조회 정황

■ 번호 흔적 있으면 모조리, 무차별적으로

한겨레 기자들에 대한 경찰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12월께다. 민주노총·정의당과 상황이 비슷한데, 날짜 단위로 살펴봐도 세 기관 구성원의 통신자료가 같은 날, 같은 문서번호로 제공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난해 12월22일엔 86건의 통신자료가 경찰에 제공된 게 도드라진다. 22일은 ‘3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평화롭게 마무리된 지 사흘 뒤다. 이날 제공된 통신자료 건수는 28일까지 취합된 전체 건수(883건)의 10%에 이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15-09447’이란 문서번호 아래 한겨레 기자 2명, 더민주 당직자 1명, 정의당 당직자 2명, 민주노총 실무자 53명의 통신자료를 제공받았다. 이날 통신자료가 털린 김민경 탐사기획팀 기자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노동을 담당했지만 그 무렵엔 민주노총 관계자를 전화 취재할 일이 없었다. 과거 통화내역 모두를 보다가 내 번호도 나온 게 아닐까 추측했다”고 말했다. 경찰 쪽에서 굉장히 넓은 기간에 걸쳐, 수사 대상자가 통화한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한 번에 가져가 조회했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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