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지내는 임성준(13)군이 지난달 18일 경기 용인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어머니의 차를 탄 채 하교하고 있다. 임군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돌이 지나자마자 폐에 심각한 손상이 왔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기도협착과 장기 손상, 골다공증, 폐동맥 고혈압 등 다양한 합병증을 앓았다. 임군은 산소호흡기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용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년전 국회 ‘구제법안’ 회의록 보니
기재부 “인과관계 아직 불명확”
환경부 장관도 선지원에 부정적
“세금으로 책임지는 건 옳지 않아”
권성동 “특별대우, 법에 안맞아”
결국 구제법안 3년째 처리 못해
피해자 “정부는 기업과 싸우라고…
중재나 해결 의지 없었다” 분통
기재부 “인과관계 아직 불명확”
환경부 장관도 선지원에 부정적
“세금으로 책임지는 건 옳지 않아”
권성동 “특별대우, 법에 안맞아”
결국 구제법안 3년째 처리 못해
피해자 “정부는 기업과 싸우라고…
중재나 해결 의지 없었다” 분통
“정부에 물어보면 기업과 싸우라고 한다. 정부가 중재나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 골치 아프니 피해자와 가해기업끼리 해결하라는 식이다.”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말이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회에서 발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법안은 3년째 먼지만 쌓인 채 잠자고 있다. 결국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논의가 결렬되며 이 법안은 사실상 19대 국회 처리가 어려워지게 됐다.
10일 <한겨레>가 2013~2014년 환노위 회의록 등을 분석해보니,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그동안 “소송에 달렸다”, “교통사고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여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개인 불행’으로 치부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골든타임’이 지금까지 허비돼 왔던 것이다.
옥시에 대한 검찰 수사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재조명되면서 새누리당은 최근 “정부가 먼저 피해 보상을 해주고 나중에 옥시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2013년 장하나·홍영표·이언주 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 심상정 정의당 의원, 2014년 한정애 더민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모두 담겨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2013년 5월 국회에 제출한 피해자 구제법 검토의견서에 “법률안 전체 수용 곤란”이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폐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간의 인과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유관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2011년 8월)와 질병관리본부(2012년 2월)가 가습기 살균제 주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HG)이 폐질환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음에도 기재부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2013년 7월12일 열린 환노위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관련법 공청회’에서 “이 건이 (피해자와 기업 간에) 소송이 진행 중이고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한정애 의원은 당시 공청회에서 “소송이 4년 걸리는데 4년 뒤에 (피해자 구제를) 하자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해 5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환노위가 올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50억원을 기재부의 반대로 전액 삭감하기도 했다.
유해화학물질 규제 담당 부처인 환경부 역시 기재부와 보조를 맞춰왔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피해자 구제 법안이 상정된 2013년 6월19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현재 제출된 법안대로 일반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일반 국민이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피해자 ‘선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14년 4월15일 환노위 회의에서도 “최종적인 (문제의) 책임자는 소송을 거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하나 의원이 “그냥 운이 없었다, 이렇게 끝나는 문제입니까”라고 따져도 윤 장관은 “(소송에서) 패소하면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가)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기업은 ‘기업 부담’을 이유로 피해자 구제 법안에 우려를 보였다. 한정애 의원이 9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피해자 구제 법안에 대해 2013년 6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피해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단순히 관련 제품을 제조·판매하면 부담금을 부과하므로 그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부의 한 축인 새누리당 쪽에선 줄곧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피해자 구제 법안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국회 논의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김성태 의원은 2013년 6월26일 열린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특별법 제정에 대해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심지어 권성동 의원은 2014년 12월2일 열린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환경성 질환만 정부에서 선보상하고 구상권 행사하면 (중략) 그러면 교통사고든 모든 사고를 다 그렇게 해놔야 한다”며 “교통사고를 입은 국민들은 특별대우 안 해준다는 것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대거나(주호영·홍문종 의원), 조류인플루엔자(AI)에 비유한 것(조원진 의원)과 동일한 논리인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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