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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한겨레>는 왜 은성PSD ‘작업확인서’ 확보하고도 기사를 안 썼나

등록 2016-06-02 17:46수정 2016-06-02 18:27

2013년 2월~2015년 11월 서울메트로와 은성피에스디(PSD)가 시행한 ‘승강안전문 유지보수 특별대책’. 가운데 ‘작업방법’ 부분을 보면,  ‘장애물센서 교체 작업’이나 ‘종합제어반 모니터 교체’ 작업 등은 1인 작업이 가능한 업무(○ 표시)로 표시돼 있다.
2013년 2월~2015년 11월 서울메트로와 은성피에스디(PSD)가 시행한 ‘승강안전문 유지보수 특별대책’. 가운데 ‘작업방법’ 부분을 보면, ‘장애물센서 교체 작업’이나 ‘종합제어반 모니터 교체’ 작업 등은 1인 작업이 가능한 업무(○ 표시)로 표시돼 있다.
지난 31일 <한겨레>는 지난해 6~8월 은성피에스디(PSD)가 작성한 ‘작업확인서’를 확보했습니다. 최판술 서울시의원을 통해 확보한 그 자료에는 조치자(수리 직원), 역사명과 고장위치, 고장원인과 고장내용, 고장접수·도착·처리 시간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난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다가 목숨을 잃은 19살 김아무개군을 비롯한 은성피에스디 직원들의 근무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였죠.

직원들이 수기로 작성한 지난해 6월 작업확인서를 살펴보니, 194개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48개 작업확인서엔 조치자의 이름이 단 1명만 기재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성피에스디가 서울메트로에 보고한 문서에는 동일한 작업 참여자가 2명으로 고쳐져 있었습니다. . ‘2인1조 작업’ 매뉴얼을 지키기 위해 서류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자료로 보였습니다. 이틀 뒤인 2일 <중앙일보>는 같은 자료를 분석해 ‘스크린도어 194건 가운데 48건 혼자서 작업했다’라는 제목으로 1면에 보도됐습니다. <한겨레>는 왜 이런 자료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이 사실을 보도를 하지 않았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설령 작업확인서가 사후에 조작된 것이라고 해도 크게 문제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2015년 6월에서 8월 사이 작업확인서를 보면, 1명의 이름만 조치자로 들어가 있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들은 ‘승강장안전문 유지보수 특별안전대책’(매뉴얼)에 따라, 특정 시간대 등엔 1인 작업을 해도 되는 무방한 것으로 분류된 일들이었습니다.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오자, 서울메트로 쪽에서는 “기사에 지적된 부분은 당시 1인 업무가 가능한 업무들이었다”면서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모든 업무를 2인이상으로 규정할 계획”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쉽게 사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해 6월4일 이뤄진 ‘을지로3가역 장애물센서 교체 작업확인서’를 보면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이 확인서엔 을지로3가역 역장(역무원)의 서명까지 들어있고요. 2인1조 매뉴얼을 어겼는데도, 역장이 작업을 승인해준 게 아니냐 흥분할 법합니다. 하지만 작업이 이뤄진 시간을 살펴보니 오전 2시30분으로 돼 있었습니다. 직전에 말씀드린 ‘승강장안전문 유지보수 특별안전대책’에 따르면, 장애물센서 교체 작업은 야간작업(전원이 차단된 시간, 즉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대의 작업을 말합니다.) 때는 2인 이상 작업하지 않아도 작업으로 분류돼 잇습니다. 같은 달 오후 1시,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이뤄진 ‘종합제어반 모니터 교체’ 작업확인서에도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이 역시도 1인 작업을 해도 괜찮은 것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한겨레>가 살펴본 6월~8월 사이 작업확인서의 경우, 모두 이런 식으로 매뉴얼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1인 조치자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2인1조’ 매뉴얼을 지키기 위해 서류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감 시간 막판까지 서류를 붙잡고 있었던 기자들 입장에선 솔직히 김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겨레>가 서류 조작에 대한 의혹 제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겨레>는 1일치 1면을 통해 ‘은성PSD, 2인1조 서류 조작 의혹’이란 제목의 단독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1시간 내 장애처리 원칙 등을 지키기엔 시간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작업 현장에 혼자 가는 게 일상적이지만, 은성 쪽에서는 (매뉴얼에 따라) 서류에 두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며 사후에 한 사람의 이름을 더 쓰도록 한다”, “한 명이 장애 조처를 위해 나가고, 작업확인서에는 2명이 나왔다고 기록하는 것은 관행이다”라는 복수의 은성피에스디 직원들의 진술과 사내 커뮤니티를 통해 전달한 메시지(‘알립니다. 메트로 에이에프시(AFC·역무자동화) 운영실에서 앞으로 작업확인서 작성시 조치자는 2명 이상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연락왔습니다. 전자팀에서 지시가 나온 사항입니다. 참고바랍니다.’)가 근거가 됐습니다.

<한겨레>의 이런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2일,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광진경찰서는 “최근 1년간 은성피에스디의 작업확인서를 확인한 결과, 전부 2인이 현장에 나간 것으로 기입돼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작업확인서처럼 줄곧 2명이 현장에 나가다가 김군이 숨진 날에만 혼자 출동해 사고가 났을 가능성은 낮게 본다”며, 사실상 작업확인서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입니다.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김군이 홀로 현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수사 결과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은성피에스디 직원의 말이 떠오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조작된 서류가 아니라 서류를 조작하며 감출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열악한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도저히 매뉴얼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매뉴얼을 서류로만 지키기 위해 조작이 만연했던 현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매뉴얼은 현장에서는 아무런 의미없는 문구들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서울메트로는 물론, 우리 사회가 함께 되새겨봐야 할 지점입니다. 방준호 이재욱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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