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이 바꾼 세상
“가맹본부는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부당하게 가맹점 사업자의 영업시간을 구속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편의점 심야영업 강제 금지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12조3항(부당한 영업시간 구속 금지)
-2014년 2월14일 시행
"야간 영업 강제가 금지된다는 법안이 시행된 당일 바로 야간 영업을 접었어요. 마음이 그렇게 편하더라고요.”
15일 만난 서울 동대문구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주인 이성종(44)씨는 숫자가 가득한 서류를 내밀었다. 2년 전인 2월14일 본사에 내용증명으로 보낸 자료였다. 1년치 매출과 수익을 분석한 자료는 심야 영업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씨가 본사에 내용증명을 보낸 날은 편의점의 심야영업 강제를 금하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된 날이었다. 1년전 국회에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자마자 자료를 준비했고, 심야 시간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이 법이 시행될 때까지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했다. 이씨는 그날 새벽1시 홀가분한 마음으로 셔터를 내렸다고 한다. "수많은 점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야간 영업을 접었어요. 속이 다 시원했죠."
‘24시간 영업’은 편의점의 상징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씨처럼 새벽 1시~6시 문을 닫는 편의점은 공정거래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전국에 1238개(2015년 12월 기준)가 있다. 2013년 7월2일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1년 뒤 시행되며 생긴 변화다.
법안이 개정된 배경에는 본사(가맹본부)와 편의점 가맹점주 사이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2013년 3월~5월사이 전국의 편의점 가맹점주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본사와 가맹점주의 계약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났다.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맹점주들은 계속되는 적자로 폐업하려다 위약금을 무는 문제로 본사와 갈등을 겪거나, 본사의 불필요한 비용 전가 등에 신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겨레>는 2013년 4월2일치 3면에 암투병으로 새벽에 편의점을 문을 닫았다가 본사로부터 계약해지와 함께 “위약금 등 수천만원을 물어내라”는 통보를 받은 허아무개씨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법 개정 논의당시 ‘심야영업 중단’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진 것은 많은 편의점들의 새벽시간대 영업이 고스란히 적자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는 계약시 24시간 영업을 의무로 강제해왔다. 가맹점주들에게 밤에 몇시간이라도 문을 닫는 것은 숨통을 틔우는 일인 것이다.
2010년부터 편의점을 운영한 이씨만 봐도 심야영업은 ‘마이너스’ 였다. 그는 미국에서 자동차 정비, 매매 사업을 하다 경기 악화로 장사를 접고 한국에 들어왔다. 경기가 안타는 일을 찾다가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편의점 두개를 열었다. 하지만 기대는 곧 깨졌다.
“유통업은 손해를 메꾸려도 해도 한계가 있어요. 손님 응대 친절하게 하고 매장 청결하게 관리한다고 해서 편의점 매출이 얼마나 더 오르겠어요. 한 달 100만원 손해라고 가정하면, 본사랑 계약 맺은 5년 동안 100만원씩 손해가 쌓여가는 거예요.”
평일, 주말 밤10시부터 아침8시까지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고용하는 데 한 달 인건비로 120여만원이 들어갔다. 주변 직장인들이 주 고객인 탓에 야간 영업 매출은 10만원을 넘기기 힘들었다. 심야 아르바이트생 시급을 벌기는 커녕 야간 영업을 하는 것 자체가 70만원 손해였다. 다른 편의점은 적자가 지속돼 문을 닫았다. 그는 “본사를 생각하면 고리대금업자가 떠오를 정도였다. 너무 열받아서 편의점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제 이씨는 평일 새벽 1시부터 아침 6시까지 문을 닫아둔다. 이씨가 편의점에서 카운터를 보는 아침 6시부터 낮 12시 사이를 제외하고,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생 두 명만 고용하고 있다. 심야 시간대 적자와 아르바이트생 관리에 대한 스트레스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야간영업으로 70만원 손해 안보는 것만으로도 임대료를 버는 셈이 됐어요. 편의점 영업 할만 해진 거죠.”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연석회의 서홍진 교육국장은 “법의 12조3 조항은 편의점 업종을 타켓팅해서 들어간 것이다. 본사가 법을 위반할시 시정조치, 시정권고, 과징금 등의 행정제재를 받을 수 있게된 근거가 마련된 것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 처럼 심야영업을 하지 않으려는 편의점주는 6개월 동안의 영업손실을 본사에 증명해야 한다.
물론 법의 빈틈은 존재한다.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일부 편의점 본사들이 △전기세 지원중단 △최저수익 보장 지원 중단 △상품 공급시간은 본사가 임의로 조정 등의 조건을 걸고 심야영업 중단을 승인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심야영업을 중단 하려면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가맹사업법이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의 불평등한 계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개정되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된다. 지난해 11월 경기도의 한 40대 편의점주가 계속되는 적자와 폐점시 물어야할 위약금에 대한 울분을 유서에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에 편의점을 포함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모임인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연석회의는 오는 30일 여야 4당 원내대표를 초청해 가맹점주 피해사례 발표와 가맹사업법 개정등 관련법 입법 촉구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승준 고한솔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