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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경찰 잘못으로 고통받아도 피해 입증·배상 ‘산 넘어 산’

등록 2016-07-18 21:30수정 2016-07-25 22:15

[밥&법] 판결 체크
경찰 늑장대응 피해
국가배상 일부 인정
“어머니가 제 여자친구와 전화로 싸운 후 여자친구가 집으로 오고 있는데,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죽이겠다며 기다리고 있어요.”

지난해 9월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이아무개씨가 급박한 목소리로 112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최초 신고로부터 24분이 지난 뒤. 이씨의 집 근처에서 먼저 접수된 가정폭력 사건과 동일한 사건이라고 경찰이 오인해 출동이 늦어진 것입니다. 그사이 어머니 박아무개씨는 흉기를 휘둘러 이씨의 여자친구 이아무개씨를 숨지게 했습니다. 올해 7월, 숨진 이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데 대해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황병헌)는 “피고는 이씨의 가족에게 83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합니다. 경찰의 과실을 인정해 국가가 유족에게 배상하도록 한 것입니다.

부실수사, 늑장대응 등 경찰의 잘못된 대처로 고통을 입은 피해자와 가족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얻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가배상법은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원 판례를 훑어보면 △공무원이 필요한 일을 행하지 않아서 침해된 국민의 법익,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지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해 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처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 책임을 따지는데요. 경찰의 재량권을 폭넓게 해석하는 가운데 사건 당시 경찰의 공무 집행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게’ 이뤄졌다는 점이 증명돼야 하고 그런 조치와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밀접한 인과관계를 가져야만 합니다.

이른바 ‘오원춘 살인사건’으로 불리던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 기억하시나요? 경찰이 피해 여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엉뚱한 곳을 수색하는 사이 피해자가 13시간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해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다’며 2012년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항소심 소송에서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배기열)는 국가가 213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9962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에서 대폭 삭감된 금액입니다.

재판부는 “112신고센터에서 피해자가 집안에 있다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며 경찰 과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런 정보가 분명히 전달됐더라도 피해자가 무사히 구출됐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일찍 경찰이 수색에 성공했다고 해도 오원춘의 난폭성, 잔인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생존 상태에서 구출될 수 있었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유족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 인정했습니다.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판결이죠.

이런 판례도 있습니다. 2008년 남편 강아무개씨는 아내를 폭행하다 아내가 숨진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살아 있었고 출동한 경찰이 구급차를 안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 강씨는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2010년 대법원은 “경찰이 강씨를 부인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고 흉기를 소지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직무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도 “출동한 경찰에게 당시 사건 경위를 설명하지 않은 피해자(처제)의 과실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쪽의 과실도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계산하는 데 포함한 것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정일 변호사는 “범행 현장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제때 출동했다고 하더라도 피의자가 피해자를 죽이기 이전에 경찰이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지 등 하나하나를 살펴 피해 사실과 경찰 조치 사이의 인과관계를 엄정하게 따지다 보면 판결이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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