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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겨레 프리즘] 국공합작이라고?

등록 2016-08-30 17:40수정 2016-08-31 11:45

이춘재

법조팀장

지난여름 내내 <한겨레>가 <조선일보>와 함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을 연일 보도한 것이 업계에선 꽤 흥미로운 일이었나 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취재원들로부터 두 신문의 보도를 ‘국공합작’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실소가 터져나왔다. 조선일보의 첫 보도 내용을 확인한 결과 보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과거 제국주의 열강에 맞선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연합전술에 비유된 것이다. 우 수석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제국주의 열강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때가 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두 언론사가 ‘합작’까지 할까. 참으로 시답잖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우 수석에 대한 기사는 다른 고위 공직자에게 적용했던 기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름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하려고 애썼던 보도가 정략적 산물로 비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찜찜했다.

우 수석이 진경준 전 검사장의 도움으로 처가의 골칫거리였던 서울 강남역 땅을 넥슨에 처분할 수 있었고, 그 고마움 때문에 진 전 검사장의 넥슨 비상장 주식을 눈감아줬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이라면 대단한 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과 공직기강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이 사익에 눈이 멀어 본연의 업무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명백한 직무유기로 자질 논란을 넘어 실정법 위반까지 따져봐야 할 사안이었다. 우 수석이 서슬 퍼런 권력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기록적인 폭염도 잊은 채 연일 우 수석 관련 보도를 이어가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첫 보도를 한 조선일보가 언제부턴가 그 횟수를 눈에 띄게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루탄 가스가 한바탕 터지고 난 뒤 얼떨결에 시위대 앞에 서게 된 황당함이라고나 할까. ‘동지’는 간데없고 홀로 깃발을 들고 외롭게 ‘구호’를 외치는 날이 계속됐다. 우 수석한테서 형사고소와 함께 거액의 민사소송까지 당한 그 신문의 처지를 고려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폭로’는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조선일보의 대표적 논객 가운데 한 사람인 송희영 전 주필이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옛 경영진과 유착 관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조선일보의 우 수석 관련 보도가 송 주필에 대한 검찰 수사와 연관이 있다는 내용의 찌라시도 나돌았다.

김 의원의 폭로는 정치 공작의 냄새가 진동하지만, 언론이 그동안 쌓아온 ‘업보’의 대가인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조선일보의 우 수석 관련 보도는 경쟁사가 인정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사건’으로 빛이 바랠 위기에 처했다. 언론이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해도 진정성이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겨레 취재에서 진 전 검사장이 우 수석 쪽과 넥슨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 수석이 배우자의 재산을 허위로 신고하고, 가족회사를 설립해 생활비를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등 다른 비리 의혹들이 속속 드러났다. 검사들 중 상당수가 “언론 보도 내용이 왜 근거가 있는지 수사 경험이 많은 우 수석 스스로가 잘 알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우 수석과 청와대는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며 버티고 있다. 아마도 이번 사건을 정략적 의도가 담긴 정치 공세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우 수석 관련 보도는 정치 문제가 아닌 정의의 문제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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