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정리해고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한 직장인이 담배를 피우며 동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구조조정에 따른 희망퇴직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도장을 찍는다곤 하지만, 회사의 집요한 압박과 강요에 떠밀린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어쩔 수 없었다”며 부당해고 소송을 내도 법원은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강제해고가 이뤄지는 현실을 들여다봤습니다.
희망퇴직, 겉으론 자발적 선택
대기발령·전보·교육으로 압박
실제론 거부하기 힘들어
‘본인 뜻’ 명분에 구제 쉽지 않아
불황으로 업종 구분없이 증가세
생산직·20~30대까지 내보내
정부 ‘저성과 해고지침’에
거부자 내보내기 더 쉬워져
“희망퇴직 처우 수준이 다른 관계사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당사 처우 기준이 이슈화됐고 투자자들 또한 회사가 적자 상황에서 높은 희망퇴직금이 지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는 현 처우 수준 대비 20% 이상 하락한 기준으로 조정되니 고려 중인 직원들은 신청 시기에 착오 없길 바랍니다.”
지난 3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삼성에스디아이(SDI)가 지난 7월 직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의 일부다. 이런 회사 쪽의 공지를 이 회사 일부 직원들은 “사실상 희망퇴직을 빨리 신청하라는 회사 쪽의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삼성에스디아이 천안사업장 생산직 노동자 ㄱ(53)씨는 7~8월에만 부서장에게 대여섯번을 불려갔다. 희망퇴직과 관련한 면담을 하자고 해서다. 이 회사 직원 ㄱ씨는 “일부 부서장들은 부서별 희망퇴직 실적을 채우려고 ‘30년 일해 대리밖에 못 달았는데 회사에 기여한 게 뭐가 있냐’는 식으로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며 “조금이라도 조건이 더 좋을 때 희망퇴직하라는 권유를 부서장들이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2차 전지 등을 만드는 삼성에스디아이 천안사업장은 최근 일부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면서 인력 효율화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 쪽에선 구체적인 인원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1000명 이상 감원설’이 나오고 있다. 삼성에스디아이 회사 쪽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인원을 목표로 정해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희망자에 한해서만 진행된다”고 밝힌 뒤 “인력 효율화 작업도 상시로 이뤄져 왔을 뿐 희망퇴직과 연관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희망퇴직’을 상시적인 인력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은 회사가 경영상 이유 등으로 인원 감축이 필요할 때 노동자로부터 퇴직신청을 받아 법정 퇴직금 이상의 위로금을 주고 퇴직시키는 제도다. 외환위기 이후 본격 시행된 희망퇴직은 주로 40대 이상 고연차, 사무직 노동자 위주로 시행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20~30대, 생산직 노동자까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희망퇴직은 형식적으로는 ‘희망자에 한해서’ 시행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수단으로 노동자를 압박해 퇴직을 유도하기 때문에 사실상 ‘해고’에 가깝다. 언제든 잘릴 수 있는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역시 일상적인 해고의 불안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경영상의 이유로 전체 노동자의 10%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은 30명 이상)의 고용조정이 발생할 때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도록 한 ‘대량 고용변동 신고’ 추이를 보면, 2014년 27곳 사업장 1만2923명에서 2015년 50곳 6026명, 올해 8월까지 74곳 5791명으로 나타났다. 2014년 케이티(KT)가 무려 8320명을 대량으로 희망퇴직시킨 이례적 요인을 제외하고 보면, 사업장 수나 인원 면에서 3년째 증가세가 뚜렷하다.
■ 생산직도, 20대도 희망퇴직 조선업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이 한창인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생산직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과장급 이상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지난 6월말까지 사무직 1500명, 생산직 5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대리·사원급 직원에 대해서도 희망퇴직을 받았다. 과거에는 생산직의 경우 노사간 갈등의 단초가 되기 때문에 주로 사무직만을 대상으로 진행해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노조와 사전협의’ 조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희망퇴직 모집 중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달 26일 울산지법에 냈다. 노조는 가처분 신청서에서 “회사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여론조사를 통해 희망퇴직자로 선정됐다’ ‘고령으로 고과가 높지 않아 대상자로 선정됐다. 응하지 않으면 저성과자 교육을 보낸다’고 말했다”며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조합원들이 없자, 아무런 기준도 없이 대상자를 선정해 희망퇴직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도 지난 6월말까지 생산직·사무직 1500명의 희망퇴직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중공업은 기한을 정하지 않고 희망퇴직 신청을 계속 받고 있으며, 40% 수준의 인력감축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20~30대 젊은 노동자를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하는 회사도 점점 늘고 있다. 중견기업 6년차 대리였던 김관우(가명·34)씨는 지난해 1월, 결혼을 두달 앞두고 희망퇴직 대상자가 됐다. 김씨는 “우리 회사는 매년 1월마다 연례행사처럼 희망퇴직을 시켰는데 직급을 가리지 않고 대상자를 선정했다”며 “신입사원 때 받았던 ‘경고’ 징계를 명목으로 대상자에 포함됐고 통보받은 지 2~3일 만에 퇴사했다”고 말했다. 금방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새 직장은 1년 반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입사 동기 10여명 중에 나처럼 나온 사람이 네댓명은 된다”며 “재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면 나같이 연차가 얼마 안 됐지만 퇴직당한 사람이 많더라”고 말했다.
소셜코머스 업체인 티몬은 지난 7월 사업 분야를 축소하면서 ‘지역사업부’ 직원 170명에 대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대상자 가운데 입사한 지 두달밖에 안 된 신입사원 등 20대 직원 5명이 포함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말, 입사한 지 1년도 안 되는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해 사회적 논란이 인 바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비판 여론이 거세자 입사 1~2년차는 희망퇴직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12월에만 1135명을 감원했다고 고용부에 신고했다.
■ 희망퇴직인가 강제퇴직인가 희망퇴직은 형식적으로는 ‘자발적 선택’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대기발령, 전보, 교육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압박이 이루어진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울산 배터리 사업장에서 일하던 고연차·고직급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지난 1일부터 ‘다기능 역량 향상 특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은 파워포인트, 엑셀, 기계제어, 용접 등 기존 업무와는 거의 관계없는 내용이다.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 ㄴ씨는 “회사가 나가길 바라는 사람이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니 교육을 시키는 것”이라며 “교육 대상자 중에 10여명이 교육이 시작되기도 전에 희망퇴직했고, 나머지 교육 대상자들은 ‘절대로 회사가 바라는 대로 나가지 말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용부의 지원으로 폴리텍대학에서 진행되는 이 교육은 3개월간의 교육이 끝난 뒤 결과에 따라 직원들을 재배치할 계획이었으나, 노동자들의 반대로 해당 계획은 취소된 상태다. 이에 대해 회사 쪽 관계자는 “전환배치를 위한 역량 향상을 위해 진행하는 교육으로 희망퇴직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대상자 선정 기준에 대해선 “인사팀과 부서장이 상의해서 결정한다”고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6~7월 희망퇴직 신청자를 모집하면서 고연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통해 희망퇴직을 권유했다. 이후 희망퇴직을 권유받은 이들 가운데 9명에게 조직개편 과정에서 보직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 회사 노동자 ㄷ씨는 “대여섯번씩 불려가 면담을 하면서 희망퇴직 권유를 받았는데, 대기발령을 시킨 뒤에도 계속 희망퇴직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9명 가운데 3명은 결국 희망퇴직을 했고, 회사 쪽은 노조가 쟁의를 준비하자 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대기발령 한달여 만에 이들에 대한 발령을 냈다.
아이돌을 내세운 노동권 캠페인 광고로 유명했던 잡코리아도 지난해 5월 조직개편과 인력 재배치 과정에서 노동자 12명에게 “6개월간 동종업계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내면 최대 5개월치 보상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퇴직(권고사직)을 권했다. 회사는 이를 거부한 6명을 원래 맡았던 업무와 관련 없는 보직으로 발령냈다. 이에 해당 노동자들이 ‘부당전보’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 “인사발령은 직원들을 자진 퇴사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정했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저성과 해고 지침’이 희망퇴직을 거부한 이들의 해고를 더 쉽게 만든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거부한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능력 향상 교육을 시킨 뒤 현업에 복귀시켰지만, 이들 가운데 3명을 결국 ‘저성과’ 명목으로 지난 7월 해고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무직 지회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거부해도 결국 해고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남용 민주노총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중공업 사무직 노조위원장(맨 오른쪽)이 2015년 1월 28일 울산시 남구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중공업이 자행하는 희망퇴직을 빙자한 강제 정리해고를 철회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희망퇴직은 경영상 위기나 사업 구조 개편 등을 겪고 있는 기업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 사이에서도 인건비 절감과 인력 효율화를 위한 상시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014년 소식지에 발표한 ‘명예퇴직 운영지침 및 위로금 산정 표준모델’에서 “경영상 해고(정리해고)는 충족해야 할 법적 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빈번히 유발되는 한계가 있어, 근로자의 자발적 선택을 전제로 하는 명예퇴직 제도는 조직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회법)는 “희망퇴직은 겉으로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 합의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자가 근로계약 관계 종료를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요된 해고의 형태로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장 권두섭 변호사는 “회사 쪽에서 저성과 등 해고를 위한 명분과 근거를 충분히 만들어 대상자를 만들고 ‘지금이라도 나가면 위로금을 주겠다’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회유하고 압박하면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저항할 수단이 별로 많지 않다”며 “대규모로 희망퇴직이 일어나도 개별적으론 ‘의원면직’(본인 의사로 사직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파급도 일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용어설명]
◆ 해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 크게 다음 두가지가 있음
-일반해고(통상해고, 개별해고): 부상·질병, 유죄판결 등 노동자의 개인적 이유로 더이상 근로계약상 근로 제공이 어려운 경우,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 업무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저성과해고나 업무명령 위반·근태불량 등으로 인한 징계해고도 여기에 포함됨.
-정리해고(경영상 해고, 집단해고):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따른 해고. 회사는 해고를 하기 전에 해고회피 노력을 다해야 하고, 공정한 해고기준을 만들어 대상자를 선정해야 함.
◆ 사직:노동장의 의사에 따라 근로계약관계를 종료하는 것.
◆ 권고사직: 사용자가 사직할 의사가 없는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비위 또는 경영상 이유 등으로 사직을 권고하고 노동자가 이를 받아들여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 법적 용어는 아님.
◆ 희망퇴직(=명예퇴직):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 등으로 고용조정이 필요할 때 노동자의 신청을 받아 법정퇴직금 이상의 위로금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 법적 용어는 아님.
<법률상 ‘해고’ ‘의사표시’ 관련조항>
◆ 근로기준법: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이하 "부당해고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23조)
◆ 민법
-진의 아닌 의사표시: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107조)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상대방 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삼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110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