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2004년은 희비가 교차한 해였다. ‘정당한 사유’ 없는 입영 거부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예외 없이 형사처벌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해 5월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달짜리 기쁨이었다. 같은 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2명 중 11명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가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병역의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8월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병역법 처벌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2011년 8월에도 똑같이 결정했다. 3전 3패다. 그럼에도 2004년 2건, 2007년 1건에 이어 지난해 5월부터 9건의 무죄 판결이 이어졌다. 지난해 7월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 공개변론을 열었던 헌재의 세번째 결정을 앞두고서다.
무죄 판결들은 모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로 보고 있는데, 갈수록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무죄 논리를 펼치고 있다. 광주지법 최창석 판사는 지난해 8월 4건의 무죄 판결문에서 “국방의 의무만 온전하게 확보하면서 양심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법률해석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양심의 자유 역시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우리 헌법과 국제법 질서 및 세계적 보편성에도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수원지법 황재호 판사도 같은 달 2건의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결과 헌재 결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판결문은 30쪽에 달했다. 황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은 “개인의 존엄성 확장뿐 아니라 우리 헌법이 최고 가치의 하나로 정하고 있는 평화의 확산과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가치인 관용의 원칙을 드러내어 사회 민주화가 더욱 강화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회나 합헌 결정을 뒤집기 어려운 헌재보다 법원이 판결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걸 판사는 2007년에 이어 가장 최근인 지난 8월 두번째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07년 무죄 선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 등) 아무런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형사처벌만 감수하도록 하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다”고 비판했던 이 판사는 9년 뒤 또다시 쓴 무죄 판결문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되물었다.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국가의 안전보장을 강조하면서 기본권 보장을 쉽게 외면하는 결론을 내린다면 목적과 수단을 거꾸로 보는 것으로 우리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헌재는 이르면 올해 안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세번째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9명의 재판관 중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병역법 처벌 조항에 합헌 의견을 낸 바 있다. 나머지 재판관은 2011년 이후 임명됐다. 헌재가 기존 결정을 뒤집으려면 재판관 6명의 위헌 의견이 필요하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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