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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용 차별에 ‘독박육아’까지…“아직도 여성에만 무거운 짐”

등록 2016-11-01 05:30수정 2017-11-21 16:11

인구 역피라미드 시대 ②아이 낳고 싶어도 못낳는 사회
맞벌이만 있고 ‘맞돌봄’은 없다
“아이 한명을 키우면서도 제대로 된 ‘풀타임’ 직장을 잡으려면 3년은 걸릴 것 같은데, 만약 둘째를 낳는다고 하면 다시 저를 써줄 곳이 있을까요?”

지난 21일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집에서 홀로 돌보던 양선희(가명·26)씨는 한숨을 쉬었다. 걸음마 연습을 하던 딸아이는 의자에 얼굴을 부딪혀 ‘와앙~’ 하고 울더니 양씨 품에 안겼다. 그는 어릴 때부터 ‘4인 가족’을 꿈꿔왔지만 지금은 둘째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임신 6개월로 접어든 지난해 6월 회사를 그만두게 될 무렵부터 그에게 닥친 삶이 그렇게 만들었다.

최근 몇년새 국내 출산·양육 인프라는 빠른 속도로 확충돼왔다.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되고 육아휴직 사용률이 차츰 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확충에도 저출산 현상이 꿈쩍하지 않는 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비롯된 뿌리깊은 여성차별 인식이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맞벌이’가 늘고 있지만, ‘맞돌봄’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구조가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양씨는 한 스타트업 기업에서 2년 넘게 마케팅 일을 해온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임신 소식이 회사에 알려지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40대 남성 상사는 그에게 “이래서 여자 뽑으면 안 된다”, “동기들보다 중요한 업무는 맡기기 어렵다, 승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식의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직원 50여명 규모의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그가 따를 만한 ‘여자 선배’도 거의 없었다. 사내에 ‘워킹맘’이 딱 한명 있었는데, 친정어머니가 전적으로 아이를 맡아주는 경우였다. 양씨의 양가 부모는 모두 지방에 살아 육아에 도움을 줄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남편은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냐. 아이 키우고 복직하면 되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양씨는 결국 회사를 관뒀다. “그때까진 일을 하면서 임신했다는 것만으로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후 양씨는 아이를 낳고 줄곧 사실상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가는 남편을 보면 억울함이 치밀어 자주 다투기도 했다.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자주 머릿속을 맴돌았다. 양씨는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직장을 얻더라도 남편과 육아를 어떻게 분담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양씨의 고민은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기 일’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부는 ‘국가가 아이를 키워주겠다’며 무상보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등 보육정책에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정작 여성의 낮은 지위는 변함이 없고 엄마이자 노동자로서의 ‘이중 부담’도 여전하다. 아예 출산을 않거나 하나만 낳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 느끼는 여성이 많아지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기발기구(OECD) 자료 등을 분석해 내놓은 ‘일과 여성’ 관련 지표를 보면, 29개국 가운데 한국이 보육비용은 가장 적게 들지만 노동시장 참여와 소득격차는 각각 28위와 29위로 꼴찌 수준이었다. ‘맞돌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여전히 저조하다. 오이시디의 ‘가족 데이터베이스 2015’를 보면,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가능 기간은 52.6주로 가장 길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남성 육아휴직률은 5.6%에 그친다. 출산율이 높은 편인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전체 육아휴직 가운데 남성이 각각 21.2%, 28.5%를 사용했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25일(제네바 현지시각) 발표한 ‘2016년 세계 성 격차 지수’(GGI)에서도 한국은 전체 144개국 가운데 116위에 머물렀다.

출산이 약점 되는 노동시장
남성 육아는 여전히 후순위
“아이 안 낳는 게 합리적 선택”

남녀 평등할수록 출산율 높은데
한국, 성 격차 지수 세계 116위
“성평등 사회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을”

이미 학계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연구분석 결과가 여럿 나와 있다. 정형옥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 발표한 ‘오이시디 주요 국가 성평등 수준과 출산율’ 보고서를 보면, 성평등 수준이 높은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출산율도 높은 반면, 한국과 일본은 성평등 수준과 출산율이 모두 낮았다. 정 연구위원은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는데도 집안일과 양육의 일차적 책임을 여성한테만 돌릴 경우 여성들은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합리적 선택’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한국처럼 ‘초저출산 현상’을 보이는 국가는, 모든 면에서 여성에게 불평등한 국가와 비교했을 때, 노동시장 진입 단계 등 개인을 대상으로 한 제도는 비교적 평등한 편이지만 가족제도에선 불평등한 ‘성평등 중간 단계의 국가군’에 속한다.

배은경 서울대 교수(여성학협동과정)는 “여성들이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더라도 경력관리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고 출산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여성 일자리가 불안하고 여전히 남성들의 육아휴직은 부차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그대로인 이상 여성들의 ‘독박 육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여성한테만 온전히 일과 육아 모두 잘하라는 ‘여성 과로사 정책’처럼 됐다”고 지적하며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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