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황보연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whynot@hani.co.kr 올해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태어날까요? 현재 46살인 1970년생은 ‘출생 동기’가 무려 100만명입니다. 학교 다닐 때 ‘콩나물시루’처럼 한 반에 60~70명씩 앉아서 공부를 하던 세대입니다. 이후로 아이들은 차츰차츰 줄기 시작합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2002년생부터는 40만명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올해는 사정이 더 안 좋아져, 40만명대도 간신히 턱걸이할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돈은 80조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왜 출생아 수가 많아지기는커녕 더 떨어지는 걸까요? 사실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를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를 낳는 여성과 그 가족 단위의 결정과 선택인 만큼, 수만가지의 사연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 중에 만난 33살 신지훈(가명·결혼 4년차)씨의 이야기는 ‘초저출산국’으로 전락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아직 젊으신데, 정관수술을 왜 받으신 거죠? “이 나라에선 답이 안 보여요. 아이에게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물려주긴 싫더라고요.” -안 좋은 상황이라면 어떤 거죠? “월급을 받으면 돈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버리는 느낌, 아세요? 2년마다 집 구하러 다니기 너무 힘들어서 전세대출을 좀 무리하게 받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원래는 아이를 낳으실 계획이었나요? “그랬었죠.” -그래도 굳이 수술까지 받으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요? 중간에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고. “와이프랑 아이를 안 낳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는,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예방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 모임에서도 마침 정관수술 이야기가 나왔었고, 그러다가 구체적으로 추진을 하게 된 거였죠.” -주변에서도 수술받으신 분이 있나요? “네. 주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집 문제가 해결된 친구들이더라도 교육비 등 또다른 고민을 하는 거 같고요.” 사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정관수술 권하는 나라’였습니다. 인구가 성장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시절 이야깁니다. 정부는 1970년대부터 국고 보조로 정관수술을 해주고, 회복 기간을 배려한 근로보상금까지 줬습니다.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이 면제됐고 아파트 분양 때 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지역별로 정관수술 할당량을 정하고 실적 관리를 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된 지금 보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국가가 나서서 출산에 대한 온갖 지원을 쏟아내고 있는 21세기에 ‘혹여 아이를 가지게 될까봐’ 정관수술을 받은 지훈씨의 이야기가 울림이 큰 것도 이런 맥락에섭니다. 지금 청년세대는 생애주기의 이행경로에서 결혼·출산·육아로 가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힘겹게 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득·주거사정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2세 계획이 쉽지 않은 탓입니다. 더군다나 여성들은 ‘엄마에게 유독 차가운 나라’에서 ‘독박육아’라는 이중고를 뒤집어쓸 각오까지 다져야 합니다. 결국 고차방정식을 풀다가 너무 어려워서 문제 풀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형국입니다. 보육 인프라를 확충해뒀으니 아이를 많이 낳아서 이용하라는 정부의 해법은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데 이런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한겨레>는 이 와중에 ‘인구 역피라미드 시대’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인구구조는 원래 어린이가 많고 노인은 적은 피라미드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어린이가 줄고 노인이 많아지면서 점차 ‘역피라미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급격한 인구구조 역전 현상은 사회 여러 분야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게 됩니다. 아이를 낳을 여성 자체가 사라져 소멸 위기에 내몰린 지방, 출생아 수가 줄어 한 반에 달랑 9명만 있는 초등학생들, 노인요양원이 된 어린이집 등은 영화로 치면 미래사회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우리 각자는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2060년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whynot@hani.co.kr 올해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태어날까요? 현재 46살인 1970년생은 ‘출생 동기’가 무려 100만명입니다. 학교 다닐 때 ‘콩나물시루’처럼 한 반에 60~70명씩 앉아서 공부를 하던 세대입니다. 이후로 아이들은 차츰차츰 줄기 시작합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2002년생부터는 40만명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올해는 사정이 더 안 좋아져, 40만명대도 간신히 턱걸이할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돈은 80조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왜 출생아 수가 많아지기는커녕 더 떨어지는 걸까요? 사실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를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를 낳는 여성과 그 가족 단위의 결정과 선택인 만큼, 수만가지의 사연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 중에 만난 33살 신지훈(가명·결혼 4년차)씨의 이야기는 ‘초저출산국’으로 전락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아직 젊으신데, 정관수술을 왜 받으신 거죠? “이 나라에선 답이 안 보여요. 아이에게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물려주긴 싫더라고요.” -안 좋은 상황이라면 어떤 거죠? “월급을 받으면 돈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버리는 느낌, 아세요? 2년마다 집 구하러 다니기 너무 힘들어서 전세대출을 좀 무리하게 받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원래는 아이를 낳으실 계획이었나요? “그랬었죠.” -그래도 굳이 수술까지 받으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요? 중간에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고. “와이프랑 아이를 안 낳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는,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예방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 모임에서도 마침 정관수술 이야기가 나왔었고, 그러다가 구체적으로 추진을 하게 된 거였죠.” -주변에서도 수술받으신 분이 있나요? “네. 주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집 문제가 해결된 친구들이더라도 교육비 등 또다른 고민을 하는 거 같고요.” 사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정관수술 권하는 나라’였습니다. 인구가 성장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시절 이야깁니다. 정부는 1970년대부터 국고 보조로 정관수술을 해주고, 회복 기간을 배려한 근로보상금까지 줬습니다.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이 면제됐고 아파트 분양 때 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지역별로 정관수술 할당량을 정하고 실적 관리를 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된 지금 보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국가가 나서서 출산에 대한 온갖 지원을 쏟아내고 있는 21세기에 ‘혹여 아이를 가지게 될까봐’ 정관수술을 받은 지훈씨의 이야기가 울림이 큰 것도 이런 맥락에섭니다. 지금 청년세대는 생애주기의 이행경로에서 결혼·출산·육아로 가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힘겹게 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득·주거사정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2세 계획이 쉽지 않은 탓입니다. 더군다나 여성들은 ‘엄마에게 유독 차가운 나라’에서 ‘독박육아’라는 이중고를 뒤집어쓸 각오까지 다져야 합니다. 결국 고차방정식을 풀다가 너무 어려워서 문제 풀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형국입니다. 보육 인프라를 확충해뒀으니 아이를 많이 낳아서 이용하라는 정부의 해법은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데 이런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한겨레>는 이 와중에 ‘인구 역피라미드 시대’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인구구조는 원래 어린이가 많고 노인은 적은 피라미드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어린이가 줄고 노인이 많아지면서 점차 ‘역피라미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급격한 인구구조 역전 현상은 사회 여러 분야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게 됩니다. 아이를 낳을 여성 자체가 사라져 소멸 위기에 내몰린 지방, 출생아 수가 줄어 한 반에 달랑 9명만 있는 초등학생들, 노인요양원이 된 어린이집 등은 영화로 치면 미래사회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우리 각자는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2060년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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