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김명숙(가명·70)씨는 94살 노모를 모시고 산다. 남편과는 오래전 사별했고 슬하에 자녀도 없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하지만 노모의 부양의무자인 남동생이 최근 대출을 받으면서 재산 변동이 생기자, 노모는 수급 자격을 잃었다. 현재는 김씨가 받는 생계급여와 노모가 받는 기초연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는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돈 70만원으로 생활비를 댄다. 돈이 모자라면 식비부터 줄인다”고 말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노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이른바 ‘노노부양’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한 가구 안에 노인이 2세대 이상 존재하는 것이어서 부모부양에 대한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한겨레> 의뢰로 분석한 ‘국내 노노부양 세대 현황’을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10만130가구가 노노부양 가정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의료급여 수급자 자료를 바탕으로 60~79살의 세대주가 80살 이상 부모와 같이 살면서 부양하는 세대를 추출해봤더니, 지난해 기준으로 9만72가구에 달했다. 여기에다 80살 이상 세대주가 60~79살 자녀와 함께 사는 1만58가구도 노노부양 세대로 볼 수 있다. 공단 빅데이터운영실의 박종헌 연구위원은 “과거 최연장자를 세대주로 두는 관행이 남아 있어서 부모 노인이 세대주이더라도 실제로는 노인 자녀가 노인 부모를 모시고 사는 노노부양 세대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10년 전인 2006년에는 노노부양 세대가 현재의 절반가량인 5만2771가구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는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김 어르신의 사례처럼, 본인도 빈곤층에 속하는데 90대 노모를 직접 부양하는 경우, 더욱 상황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런 가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복지정책을 짤 때 생계비 지원 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경혜 서울대 교수(생활과학대)는 “현행 기초연금 제도는 노인 부부 가구와 노인 단독 가구에 대한 규정에 의해 지급되고 있고, 60대 이상 자녀가 초고령 노인을 부양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이런 가족에 대한 파악 및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노노부양 가구에 대한 실태를 별도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은 중산층이라도 해도 노노부양은 가족 내 갈등을 키우고 노노학대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93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정희숙(가명·68)씨는 “2명의 자녀를 길렀고 손자·손녀까지 돌봤는데도 아직 시어머니 부양 때문에 자유롭게 외출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성 노인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돌봄노동에 재차 얽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돌봄 역할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우리 사회에서 장남이 부모를 부양할 경우 며느리가 수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들이 자녀 돌봄을 끝내더라도 재차 돌봄노동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의 ‘2015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노인학대 사건 중에서 노노학대가 41.7%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보장성을 높이는 등 가족의 부양부담을 덜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한다. 2008년 7월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급자 비중(시설·재가서비스)은 현재 노인인구의 7% 수준(49만명)으로,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의 절반 정도다. 이 제도의 시행은 가족이 전담해온 노인 수발을 사회가 분담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경증 치매환자를 비롯해 현재보다 더 많은 노인을 포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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