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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등록 2016-11-11 19:17수정 2016-11-11 19:58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지난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한 20만명의 시민·학생들이 문화제를 마친 뒤 종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한 20만명의 시민·학생들이 문화제를 마친 뒤 종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정희성이란 시인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이 먹은 노동자가 일과를 마치고 삽을 씻으면서 흐르는 강물에 고단한 노동의 일과를 투영시켰다. 우리 일상에서 ‘흐른다’라는 단어는 물이나 피, 술 등의 액체, 혹은 바람이나 가스 등의 기체 등에 어울리는 단어다. 그런데 인간의 감성이 그렇게 간단하던가? 흐르는 것은 액체나 기체가 위치를 이동하는 하나의 자연현상만 일컫지 않는다. 오만 가지의 것도 다 ‘흐름’이라 한다. 길거리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유행이 ‘흐른다’고 하고, 돈도 동맥에 피가 돌듯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한다. 장강의 거대한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거대한 세월도 ‘흐름’이라 여긴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흐름은 막을 수 없음이요, 자연의 순리다. 거대한 흐름을 막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멀쩡히 흐르는 강물을 틀어막으면 푸른 생기를 잃고 썩는 것이고 흐르는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으며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반동이 된다.

사진은 셔터 속도와 조리개가 서로 길항작용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미학이다. 두 개를 다 잡을 수는 없어서 하나를 잡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 평면적인 사진에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선 셔터 속도를 늦춰 필름에 노출되는 피사체의 움직임이 시간상 많이 들어가게 해야 하는데 이럴 땐 늦춰진 셔터의 속도만큼 조리개를 조여줘야 한다. 조리개의 조임 없이 셔터 속도만 늦추면? 필름에 노출되는 빛의 양이 많아져 온통 하얗게 된다. 지난 5일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행진하는 행렬만큼이나 제법 긴 이름의 집회다. 20만, 30만(경찰 추산 4만5천)? 많은 사람이 광화문에 모였다. 문화제를 마치고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려다 경찰에 막히자 다시 뒤로 돌아 종로 쪽으로 빠지는 거대한 촛불의 대열은 끝이 없다. 근처 건물 위에서 30초 동안 셔터를 열고 조리개를 22까지 조였다. 거대한 물결 같은 움직임이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딱 30초간의 움직임이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들고 있는 촛불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움직이는 촛불을 장시간 담아내면 긴 움직임을 담을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도로가 까맣고 주변이 어두운 밤이기에 가능하다. 촛불은 주변이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고 어둠은 한 줌의 촛불에 갈가리 찢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다. 어느 정권도 비선이 존재했지만 이런 정도의 비전문가가 외교, 안보, 정치, 문화 등 국정 전반을 휘젓고 다닌 것은 처음인 듯하다. 아무리 못난 왕도 제 생각은 있었다. 모든 사정기관도 허수아비였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언론이 뛰어들어 사실을 까발리고 나서야 소문이 진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피땀 흘려 이뤄 놓았던 국가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게 한 개 사단의 병력도 아니고 몇 명의 일반인이면 충분했다니. 우리가 과연 현대에 사는가 싶다. 국민이 위임한 국가권력을 듣도 보도 못한 사람에게 던져 놓고 때때로 옷이나 갈아입고 다니면 국가원수라 생각한 지도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다. 장강이 썩지 않는 이유는 뒤에서 오는 물결이 ‘흐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촛불을 점으로 표현하지 않고 ‘흐름’으로 표현한 이유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시는 그분도 ‘흐름’을 알아야 할 텐데….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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