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비상장 주식을 공짜로 제공받은 혐의로 지난 9월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이 구속되기 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달 25일 열린 진경준 전 검사장의 결심공판 소식은 가뜩이나 화를 다스리기 어려운 때에 공분을 더하는 뉴스였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로부터 넥슨 비상장 주식을 공짜로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진씨는 이날 자신을 신문하는 검사와 ‘설전’을 벌였다. 그는 검사의 질문에 날선 목소리로 답하는가 하면, 검사의 말을 중간에 끊기도 했다. ‘잘나가는’ 검찰 고위간부 시절의 당당함이 묻어나는 그의 태도에 취재 기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답변 내용은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는 넥슨 주식을 공짜로 받은 것에 대해 “당대 거부가 된 친구(김정주)가 돈(주식대금)을 준다는데 옹졸하게 보일 수 없어 받았다”고 했다. 갑부인 친구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투였다. 또 제네시스 차량을 공짜로 제공받은 것에 대해서도 “(김)정주가 월급쟁이인 나를 안쓰러워해서 준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마치 ‘30년 지기’의 특별한 우정을 이해하지 못한 언론과 검찰이 자신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넥슨과 같은 기업들을 언제든지 수사할 수 있는 검사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어긴 것을 반성하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 한 해는 법조계 인사들이 유독 톱뉴스를 많이 장식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태에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진경준, 홍만표, 우병우, 김형준, 김수천(판사) 등 ‘법 기술자’들의 잇단 범죄와 일탈은 곧바로 신뢰 붕괴의 위기로 이어졌다. 진씨 사건은 그 위기의 불길한 징조였던 셈이다. 그는 <한겨레>를 필두로 한 언론의 문제제기는 물론,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조사에서도 거짓으로 일관했다. 친구한테서 주식을 공짜로 받았음에도 마치 자기 돈을 주고 산 것처럼 적극적으로 꾸몄다. 친구인 김정주씨한테도 허위 진술을 부탁했다. 자신에게 주식 매입을 권유한 이가 김씨가 아닌 다른 친구인 것처럼 진술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씨와 직접 거래했음을 숨기기 위한 의도였다. 김씨도 검찰 수사 직전까지 친구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다. 진씨는 또 김씨에게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네가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고 진술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하기도 했다.
진씨는 검찰 수사로 사실이 드러난 뒤에는 재판에서 무죄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친구한테 반대급부로 아무것도 해준 게 없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동원했다. 자신의 말처럼 떳떳한 ‘우정의 선물’이었다면 왜 공짜로 받았음을 그토록 숨기려고 애썼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뇌물을 받은 법관은 더욱 무거운 형에 처했다고 한다. 사법부의 법 파괴 행위는 시민들의 법감정(법을 준수하려는 의지)을 약화시켜 결국 사회 붕괴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준사법기관의 역할을 자임하는 검사에게도 똑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공익의 대변자로서 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법철학자인 루돌프 폰 예링은 법의 수호자이자 파수꾼이 법의 살인자로 전락하는 것은, 환자를 독살하는 의사나 아기의 목을 졸라 죽이는 보모만큼이나 사회에 무서운 존재가 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법 기술자들의 불법 행위에 사회가 좀더 엄격하게 대응해야 하는 타당성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13일 예정된 진씨의 1심 선고 공판은 단순히 뇌물 사범에 대한 유무죄를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법감정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재판이다. 그보다 앞선 9일 열리는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선고 결과도 관심을 모은다. 대검 고위 간부 출신인 홍 변호사의 범죄 행위도 진씨 못지않게 신뢰 붕괴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법원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춘재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