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문영의 恨국어사전
③ ‘진도가족간첩단’ 합장묘
③ ‘진도가족간첩단’ 합장묘
‘진도가족간첩단’ 사건 피해자 한등자씨의 운구 행렬이 묘소(진도군 고군면)에 닿았다. 조카(박동운)가 형사보상금을 받아 어머니(이수례)를 모신 땅에서 한등자씨는 형제 부부가 한 무덤에서 안식하길 바랐다. 묘소 주위로 박동운씨가 치는 벌통들이 보인다. 진도/이문영 기자
▶ <한겨레> 토요판이 독자들과 <恨국어사전>을 편찬합니다. 국가가 국민의 표준을 지정할 때, 표준에서 배제된 국민에게 ‘韓국’은 ‘恨국’이 됩니다. 韓국어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라 쓸 때, 恨국어는 ‘뼛가루들의 고통’이라고 읽습니다. <恨국어사전>은 표준에게 외면당한 표정 있는 언어들(은어·속어·조어)로 ‘恨국의 다층’을 봅니다. 독자들의 恨국어 제보(moon0@hani.co.kr)를 기다립니다. 그 언어들이 모이고 쌓여 ‘韓국이 가린 恨국의 정면’이 포착되길 기대합니다.
난(亂)
[명사] 전쟁이나 병란. ‘진도가족간첩단 사건’(1981년) 피해자들은 그 일을 ‘사건’이 아닌 ‘난’으로 표현한다. 피해자들에게 조작·날조는 느닷없이 닥쳐 평생을 파괴하는 전쟁·천재지변과도 같다.
부당이득
[법률] 법령을 위반하는 부당한 방법으로 남에게 손해를 주며 얻는 이익.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금을 집행한 뒤 다시 빼앗는 논리로 사용했다. 법원 판결로 배상금을 지급받은 피해자들이 ‘부당이득을 취한 범죄자들’로 규정됐다.
남편 없는 합장묘로 재회한 형님·동상
1981년 3월7일 ‘그 징헌 난’이 시작
도저히 사람에게 했다고 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 당한 조작간첩 피해자들 소멸시효 들어 손해배상 뒤집은 국가
“아배 피 묻은 돈 절대 못 내놓는다”
피해자 가족 잠든 묘소 압류당할 수도
“국가가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죄인 만들어 고리대 이자놀이 하는 것” 그들의 관계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던져진 것이었다. 끊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간첩 아비’가 되고, ‘간첩 자식’이 되고, ‘간첩 사돈’이 됐다. ‘간첩 큰아들’(박동운)은 무기징역을 받고 18년을 복역했고, ‘간첩 작은아들’(박근홍·3년6개월 복역)은 간첩 핏줄로 키울 수 없어 딸을 외국으로 입양 보냈다. ‘간첩 남동생’(박경준·7년 복역)은 모진 고문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고, ‘간첩 여동생’(박미심·53일 불법구금)은 ‘고약’을 삼키고 죽으려다 ‘성격이 고약해졌다’(남편 허현 표현). ‘간첩 매제’(허현·연행 253일 뒤 집행유예)는 다리뼈가 부러지고 목뼈에 금이 갔으며, ‘간첩 딸’(박미옥)은 결혼을 앞두고 파혼당했다. 피가 만든 관계를 어쩌지 못해 간첩이 된 무죄한 사람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서로를 고발하고, 불신하고, 이혼하고, 원망한 세월이 있었다. 재심(2009년 11월21일 무죄 확정)으로 간첩 딱지를 떼고서야 그들은 ‘관계의 죄’를 벗고 서로의 세월을 이해했다. ‘간첩 제수’(한등자)도 ‘곱징역’을 살았다. “한 놈이 ‘느그 딸도 델따 놨다’믄서 ‘대학 졸업해도 베렸어야’ 그러능겨. 그 말 듣고 내가 뛰쳐나가믄서 아조 나를 쥑여 줏씨요, 혔다니께. 결국 다 혔다고 하게 되더란 말이시. 이북에도 갔다 왔다 하게 되더란 말이시.” 오전 10시40분. 한등자의 운구 차량이 묘소에 닿았다. 지막마을에선 3년 전까지 상여가 나갔다. 주민들은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상여를 메거나 따랐다. 18년 전(1998년 5월 사망) 한등자의 아배는 ‘하얀 머리들’ 위에서 출렁이는 상여를 타고 산을 올랐다. 아배가 묻힌 산과 한등자가 묻힐 묘소는 1㎞쯤 떨어져 있었다. 생전 한등자는 “다시 태어나도 아배와 살겠다”며 박경준과 한 무덤에 묻히고 싶어 했다. 박경준의 묘소는 남의 땅에 있었다. 조카(박동운)가 형사보상금을 받아 이수례를 모신 땅에서 한등자는 아배와 뼈를 섞길 바랐다. 그의 뜻을 받든 가족들이 장례 전날까지 네 사람의 합장을 추진했다. 상의 끝에 ‘생장’(새 주검)은 3년 동안 ‘구장’(육탈된 주검)과 합하지 않는다는 견해(풍수)를 따라 부부 묘를 우선 쓰기로 했다. “안기부서 나온께 내 몸이 허세비(허수아비)가 되야부렀어. 7년 살고 나온 아배는 눈도 몬 쓰게 됐시야. 간첩 혐의 벗겠다고 그리 다녀쌌등마는 감옥 나온 지 10년 만에 골병(간암)으로 돌아가욈어.” 남편 없는 세상에서 한등자는 남편의 경운기를 몰며 농사(배추·양배추·대파 등)를 지었다. 고문도 견디고 살아남은 억척으로 아들들을 빼앗긴 시아버지를 부양하고 고아처럼 방치된 집안 아이들을 돌봤다. “하관.” 오전 11시5분. 한등자가 땅속으로 내려갔다. 새로 솟는 분주한 무덤 옆에서 박영준-이수례의 묘가 고요했다. 무덤 뒤에 놓인 벌통 130개에서 벌들이 들고 났다. 4년 만기 출소 뒤 “마당에서 개만 짖어도 화장실로 숨던”(생전 구술) 이수례는 사람 드문 절로 들어가 공양주 보살이 됐다. 18년 만에 형을 마친 박동운이 어머니를 찾아간 절에서 양봉하는 스님을 만났다. 6㎞를 4년 동안 걸어다니며 배운 벌이 그에겐 자식이자 벗이 됐다. 이수례는 “작고 사나흘 전(2010년 5월)부터 살갗이 가지색”(박동운)이었다. 그토록 기다린 무죄 확정 5개월 뒤였다. “고문으로 피가 죽은 탓”이라고 아들은 믿었다. ‘영준과 수례’의 합장묘에 영준은 부재했다. 영준의 사망연월을 알지 못하므로 수례도 죽은 날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묻을 때 아들은 종이로 아버지 형상을 만들었다. 종이 육신은 태우고 입혔던 한복과 고무신을 관에 넣었다. ‘형님’과 ‘동상’이 언제까지 그 땅에 누워 남편들을 기다릴 수 있을지 박동운은 장담할 수 없었다. “사건 2016가합534274 부당이득금. 2016년 11월25일 09시5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63호 법정.” ‘원고 대한민국’이 발송한 선고기일 통지서가 한 달 전 ‘피고 박동운 외 8명’에게 도착했다. 그들은 무죄 확정 뒤인 2011년 5월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형사보상과 달리 국가의 잘못과 책임을 전제로 이뤄지는 소송)을 청구했다. 2심(2013년 7월19일)까지 이긴 재판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파기환송된 소송에서 2015년 9월22일 최종 패소했다.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1심 선고 뒤 가집행(총 배상금의 2분의 1)된 돈도 0원이 됐다. ‘소멸시효’(형사보상 확정 뒤 6개월 이내 손해배상 청구)를 넘겼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과거사 손해배상 건을 심리하는 대법원이 법률상 민사 소멸시효(3년)를 대폭 단축한 판결(피해자·변호인들은 ‘배상 대상자를 줄이려는 의도’라고 비판)을 내리면서 하급심에 영향을 끼쳤다. 박동운 가족은 박영준의 실종선고(2011년 8월12일)를 기다리다 8개월 만에 소장을 접수했다. 법적 소멸시효가 3년이므로 시간을 다툴 일이 없다고 당시 가족과 변호인들을 판단했다. 국가는 가집행된 배상금의 환수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 폭력은 언제나 국가보다 열심히 일했다. “국가가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억울한 죄인으로 만들어 ‘고리대 이자놀이’를 하는 거제.” 박동운은 눈앞의 무덤들이 마음에 밟혔다.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하면서 국가가 지급한 돈이 부당한 이득으로 둔갑해 5%의 이자가 더해졌다. 환수 소송에서까지 지면 이자는 15%로 뛸 것이었다. 묘지도 집도 압류될 수 있었다. 사망 전 한등자는 “아배 피 묻은 돈”이라며 절대 돌려줄 수 없다고 울었다. 쓰러진 뒤 언어를 잃은 그는 운명 직전 입술을 움직였으나 끝내 발화하지 못했다. 생을 마친 날은 ‘부당이득금 환수 소송’ 선고일(가족의 의견서 제출로 연기)이었다.
가족들이 한등자씨의 무덤을 돌며 손으로 쓸었다. 무덤에 작별을 고하는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땅에 놓인 영정 안에서 한등자씨가 바라봤다. 진도/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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