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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난 뭘 보고 다녔나?

등록 2017-01-20 19:46수정 2017-01-20 20:17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내부 중앙에 1층에서 5층까지 연결된 달팽이관 모양의 철계단이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내부 중앙에 1층에서 5층까지 연결된 달팽이관 모양의 철계단이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진기자가 되면 좋은 일 중의 하나가 많은 장소를 가본다는 점이다. 유명 여행지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곳도 있지만 전쟁터처럼 반갑지 않은 곳도 가볼 수 있다. 따라서 사진기자는 꼼지락거리기 싫어하거나 뿌리를 내리면 좀처럼 둥지를 바꾸지 않는 사람보다는 여기저기 나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이 적성에 맞을 수 있다. 좀 넓게 본다면 결국은 부지런함과 호기심 많은 사람이 잘 버텨낸다는 것인데, 그게 꼭 사진기자만 그런가?

1987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했던 그 장소, 지하철을 타고 가다 남영역을 지날 때면 언뜻 보이던 시커먼 벽돌 건물, 학교 다닐 땐 거기 끌려가면 사람이 죽거나 반송장이 돼서 돌아온다는, 악명 높은 그곳을 기자가 되고서야 갔다. 고문치사 사건이 나고 19년 만인 2006년 1월,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식’이 열린 날이었다. 아버지 박정기씨가 아들이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올라가 헌화하는 순서가 있었다. 세월은 어느덧 20년 가까이 지나 악명 높은 대공분실도 한 해 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탈바꿈해 운영 중이었다. 5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놓칠세라 허겁지겁 행사 따라가기 바빴으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행여 아버지가 헌화하는 것을 못 찍을까 올라간 5층은 행사 관계자들이 많았음에도 서늘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선 각각의 방은 출입문이 서로 엇갈리게 배치돼 있어서 양쪽 문이 다 열려도 저쪽에서 누가 조사를 받는지 볼 수 없는 구조였다. 투신과 추락을 막기 위해 5층 방들의 창문은 모두 폭이 약 20센티 정도인 가늘고 긴 형태였다. 세로로 길게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줄기는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서글픔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고문에 지친 육신에 내려앉았으리라. 5층 9호, 성인 세 명 정도가 서 있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방, 세면대와 욕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눈길을 잡는 것은 성인이 들어가 앉아 허벅지와 종아리가 닿을 정도로 구부려야 할 정도의 길이를 가진 욕조. 그 크기부터 용도가 의심스러운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존엄이 짓이겨졌는가?

마감하고 난 그냥 회사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사진을 본 한 후배가 건축가 김수근을 비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식인의 정치적 무지가 얼마나 큰 죄인지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면 절감한다”면서 특히 자신은 “건물 뒤쪽으로 들어오면 5층까지 연결된 나선형의 계단에서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87년에 학생이었던 박종철이 1월14일 아침 8시10분에 경찰에게 잡혔고 이곳에 끌려온 것은 오전 9시 무렵이다. 건물의 뒤편으로 난 쪽문을 지나 수사관들에게 이끌려 빙글빙글 5층 높이까지 올라가는 동안 방향감각은 상실하고 가빠지는 숨소리만큼 불안감과 공포도 커졌으리라. 나는 19년이 지나서 그 건물의 주 출입구(검은 벽돌 건물의 가운데가 아닌 한쪽으로 치우치고 벽면보다 움푹하게 들어간)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으니 같은 층 엘리베이터 뒤편에 뱀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듯한 그 철제 계단을 볼 턱이 없었다.

간혹, 같은 곳을 가도 유독 나만 못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소위 ‘물’먹었다고 데스크한테 ‘깨지는’데, 그날 물먹은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사진의 구도나 내용도 좋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시원하게 원하는 지면에 썼다. 그런데 부끄럽다. 행여 내 무식함이 탄로날까봐 숨 죽인 채 후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무지가 용서될 수 없는 것은 김수근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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