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상상을 해본다. 청와대발 블랙리스트 광풍이 몰아칠 때 청와대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중 누구라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지시에 저항했더라면, 또는 내부 문제제기만으로 막아낼 수가 없을 경우 외부에 이를 알리고 부당성을 호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두 알다시피 현실은 달랐다. 일사불란하게 블랙리스트가 차곡차곡 정리되었고 문화예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배제당했다. 질문을 좀 더 정확하게 한다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가능했을까?’라고 해야 맞겠다. 지금의 공무원 조직에서는 누구라도 그러기 어려웠을 것이다. ‘블랙리스트 실행 지시를 받고 너무 괴로웠다’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뒤늦은 고백을 접하면서 마음이 씁쓸했던 이유다.
공무원 조직 안에서 ‘부정의’에 저항한다는 건 밥줄을 내놓는 일이다. 왜 그럴까. 위계를 강조하는 문화 탓도 있겠지만 공무원의 의사표현 행위를 품위유지 의무니 집단행동 금지니 정치활동 금지니 여러 법 조항에서 징계 대상으로 규정한 현실도 문제다. 그간 조직의 문제점을 제기한 공무원들이 숱하게 징계와 처벌을 받아왔다. 2011년에 있었던 국가인권위원회 공무원 집단 징계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인권 옹호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독립성의 위축에 관한 국내외 우려가 컸던데다 장기근속 직원의 갑작스러운 계약 연장 거부로 직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공무원 12명이 인권위 개혁을 요구하며 하루에 한 사람씩 점심시간에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온라인에 기고하였다.
이들은 모두 징계를 받았다. 사유는 집단행위 금지 위반과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었다. 소송이 제기되자 1심, 2심 법원은 모두 징계가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뒷사람이 앞사람을 따라서 했어도 ‘공모’한 것이고 집단행위라는 것이며, 공무원이 조직의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해당 공무원 조직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보일 수 있으니 품위를 위반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간 법원의 전형적 태도였다. 이런 논리라면 공무원은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어도, 어떤 위법한 일이 진행되어도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
최근 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2014두8469)이 있었다. 대법원은 릴레이 1인시위나 언론 기고는 후행자가 선행자에 동조하여 동일한 형태의 행위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집단행위’가 아니고, 동료 직원에 대한 계약 연장 거부의 부당성을 항의한 것을 공익에 반하는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1인시위를 한 것을 가지고 직무를 게을리하는 등 직무전념 의무를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인데 과거 법원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에 서명하여 참여한 교사들을 집단행위 금지 위반이라고 징계하고 형사처벌까지 했었다. 이번 판결은 집단행위 금지를 좀 더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절반의 한계를 보였다. 공무원이 조직을 비판하는 행위에 대해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공무원 조직과 우리 사회 건강성 유지를 위해 공무원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진국가에 비해 공무원의 의사 표현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다. 유엔(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2010년에 한국 정부에 공립학교 교사 등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정말로 우리가 블랙리스트 지시에 저항할 수 있는, 양심과 영혼을 가진 공무원을 가지고 싶다면 공무원의 공적 의사 표현을 징계로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 공무원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조직의 문제점에 대해 안팎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공무원이 국민의 입장에 서서 양심에 따라 일할 수 없다면 제2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언제나 가능하다.
송상교 변호사
송상교 변호사 예비군 거부자 변호. 류우종 <한겨레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