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초년차 때 일이다. 금융기관이 작은 회사에 자금을 대출하면서 대표이사
ㄱ의 보증을 받았다. 회사는 돈을 갚지 못했고 대표는 잠적했다. 확인해봤더니 대표이사
ㄱ은 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집에 제3자인 ㄴ 앞으로 저당권을 설정해주었다. 금융기관은 잠적한 ㄱ 대신 ㄴ을 상대로 저당권을 말소해서 원상복구하라는 소송을 냈고 내가 소송을 대리했다. 이른바 ‘사해행위 취소소송’이라고 불리는 소송이다. 법정에서 만난 ㄴ은 60대 여성이었다. 그는 ‘사해행위’라는 법적 용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기’ 비슷한 걸로 받아들였다.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회사가 왜 자기에게 소송을 걸었는지 납득하지 못했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며 울먹거리기만 했다. 재판장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ㄴ이 안타까웠지만 상대편인 그를 도울 수는 없었다. 재판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ㄴ은 내 뒤에 대고 “회사를 등에 업고 서민을 괴롭히는 악질 변호사”라고 크게 소리쳤다. 나는 ㄴ에게 다가가 이게 어떤 소송인지 설명하고 “꼭 변호사를 선임하시라”고 당부했다. ‘악질 변호사’라는 외침은 그 후로도 잊히지 않았다.
ㄴ에게 변호사가 있었다면 위 소송은 결론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ㄴ은 소송의 중요한 쟁점에 대해 필요한 방어를 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말까지 하였다. 이렇게 변호사 도움 없이 혼자 소송을 하는 것을 보통 ‘나 홀로 소송’이라고 부르는데 법원에 제기되는 민사소송 중 70% 이상이 나 홀로 소송이다. 소송액이 적어 민사소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액사건’은 나 홀로 소송 비율이 80%를 훌쩍 넘는다.
나는 예전부터 상대방이 변호사 없이 법정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맘이 편치 않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무지로 인한 불이익이 개인에게 돌아가도록 방치하는 건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앞으로 법원과 수사기관이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우선은 좀더 친절해져야 한다. 수사나 재판을 위해 그곳에 가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 절차에 대해 좀더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법원의 경우 대법원의 ‘나 홀로 소송’ 사이트에서 서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좀더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것들을 알려줘야 한다. 예컨대 재판을 하면 반드시 붙이는 ‘사건번호’가 있다. 사건번호는 사건의 정보를 알려주고 판례검색에도 필요한 중요 정보다. 대법원 ‘나의 사건 검색’ 사이트에서 사건번호와 이름을 입력하면 누구나 사건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변호사 아닌 일반인 중에 그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령 2017가합123이라는 사건번호에는 어떤 정보가 담겨 있는지, ‘가’와 ‘합’이 어떤 식으로 사건을 알려주는 정보인지 말이다. 재판부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나의 사건 검색’에 들어가면 해당 사건의 재판부도 표시된다. 가령 ‘제1민사부(다)’라고 적혔다고 하자. 여기서 (다)는 사건의 주심판사가 (다) 판사라는 뜻이다. (다) 판사가 좌배석 판사를 의미한다는 것을, 그리고 좌배석 판사는 법정에 가면 우리가 보기에 재판장 오른쪽에 앉은 판사라는 것을 따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자주 쓰는 법정용어 중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도 많다. ‘추정’이라는 법정용어가 있다. ‘추후지정’의 줄임말로 알려져 있는데 국어사전에 안 나오는 말이다. 그러니 판사가 ‘추정’하겠다고 말하면 일반인은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된다.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은 좀더 알아듣기 쉽게 바꾸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중요한 용어들은 설명서를 만들어 법정이나 검사실에 비치하면 좋겠다. 새로 바뀐 수사, 소송절차 법령은 그때그때 공개하고 쉽게 설명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억울함을 충분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의 희망이 일렁거리는 이때, 이런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국민 처지에서 보고 살폈으면 한다. 사법제도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니까.
송상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