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서울중앙지검’ 명의로 법원을 비판하는 입장을 내고 법원도 이를 공식적으로 반박하면서, ‘구속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엔 두 기관이 거친 용어로 상대를 비판하는 등 갈등 수위가 높아 향후 진행될 수사와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8일 새벽 3건의 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된 게 계기가 됐다. 새 정부 출범 뒤 ‘적폐 청산’의 첫 수사로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을 택한 검찰로서는 이번 민간인 팀장 2명의 구속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참이었다. 여론조작을 한 시기가 2009~2012년으로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관련자들의 ‘진술증거’를 끌어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장이 기각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 수사 역시 새 검찰 수뇌부가 들여다본 첫 방위사업 비리라는 점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검찰은 이번 반발이 일회성이 아니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영장기각 등 지금껏 누적돼온 불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가 ‘모호’해 영장 재청구 때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의 영장 판단 잣대의 기준을 모르겠다. 항상 잣대가 다르니까 법원이 객관적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이런 주장이 영장 기각의 책임을 떠넘겨 법원을 압박하려는 언론플레이 성격이 짙다고 본다. 검찰이 이날 “경찰이 경호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구속영장은 물론 통신영장, 계좌영장까지 기각해 공범 추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 것도 다분히 여론의 분노를 의식한 주장으로 보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발표문에서 “검찰은 영장전담 판사들의 이러한 입장에 굴하지 아니하고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현재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엄정하고 철저하게 계속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법원이 이날 ‘형사공보관실 의견’을 통해 “이번과 같이 (검찰의) 부적절한 의견 표명은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최근 까다로워진 영장 발부 기준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이번 영장전담 판사들이 국정농단 관련자 구속 과정에서 불구속 재판 원칙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특히 (판사들 사이에선) 이화여대 교수들 업무방해 혐의 등이 구속 사안인가 하는 의구심과, 법원이 분위기에 휩쓸려 영장을 발부했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전했다.
구속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견해 차이는 사법개혁 국면이 열릴 때마다 벌어지는 오랜 논쟁이기도 하다. 검찰은 수사 효율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법원은 불구속 수사 원칙과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공판중심주의 확립을 지향한다. 2006년 9월 당시 사법개혁 논의가 한창일 때 이용훈 대법원장은 기계적인 구속영장 발부를 비판하며 “밀실에서 만들어진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리라”고 주문해 검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다만 시민단체뿐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도 여론조작에 가담한 국정원 전직 직원의 영장을 기각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도 영장 발부 판단 기준이지만, 핵심은 범죄가 중한지 여부다. 범죄가 크면 그만큼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큰 것인데, 국정원 댓글 사건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는 이날 논평에서 “관련 자료를 은닉한 행위가 확인되었는데도, 은닉한 증거가 증거가치가 없다는 사유로 영장이 기각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증거은닉 행위를 한 사람에게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서영지 현소은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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