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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공중부양 ‘필로티’ 건축물 괜찮을까?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11-18 10:00수정 2022-08-19 15:25

[더(The) 친절한 기자들]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기둥이 심각하게 파손된 ‘필로티’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기둥이 심각하게 파손된 ‘필로티’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과자 부스러기처럼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잔해와 어지럽게 휘어져 드러난 철근…’

지난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 현장에서 찍힌 이 한장의 사진은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인데요. 지진 발생 이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필로티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공중부양 건물’에 살고 있는 것이냐며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아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저런 필로티 2층인데. 내가 사는 건물 주위에 거의 대부분 1층 주차장인 이런 건물임. 여기 지진 크게 오면 그냥 쑥대밭 될듯.”(트위터 아이디 @care****)

“국내 필로티 구조중에 제대로 지어진 곳이 몇군데나 될까? 서울에 지진나면 빌라들 죄다 넘어갈 듯…”(트위터 아이디 @rain****)

필로티 건물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우리의 친구, 가족 등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진의 직접적인 충격을 받지 않은 지역에 사는 분들도 현기증을 느꼈을법한데요.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이 필로티에 대한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 ‘기둥 뒤에 공간’…필로티란 무엇인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스위스 파빌리온. 한겨레 자료사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스위스 파빌리온.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미술용어사전’을 보면 필로티는 원래 ‘건축물을 받치는 기둥’을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건물 1층에 벽을 두지 않고 기둥만 세운 공간을 가리킵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1925년부터 건축물에 활발하게 적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파리의 ‘스위스 파빌리온’이나 마르세유의 아파트 등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난 지금은 보편적인 건축 스타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건축물에서 1층에 외부의 공간을 끌어들인 것은 단순히 디자인만 변한 게 아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싸고 주차공간이 적은 도심에서는 건물 거주자들의 주차공간과 쓰레기 수거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건설사 관계자는 “보안이나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로 건물 1층 거주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고 출입구도 다른 건물에 비해 예쁘기 때문에 필로티 건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필로티 구조 설명. 서울시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사이트 갈무리
필로티 구조 설명. 서울시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사이트 갈무리

■ “이거 다 제가 지은거 아시죠?” 필로티 건물 증가가 MB탓?

한편에서는 2009년부터 우후죽순 늘어난 도시형 생활주택에 필로티 구조가 많아진 걸 근거로 이명박 전 대통령 ‘탓’을 하기도 합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영일 의원(국민의당)이 공개한 ‘도시형 생활주택 안전실태 결과 보고서(2015년 기준)’ 분석 결과를 보면, 전국 도시형 생활주택(1만3933 동)의 88.4%(1만2321 동)가 필로티 구조입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이명박 정부때 추진한 부동산 대책으로 1인 가구 등 소규모 가구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2009년부터 추진됐습니다. 소규모 주택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소방시설 기준이나 밀집 구조 등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어요. 특히, 2015년 발생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로 도시형 생활주택의 문제가 집중 부각됐습니다. 대봉그린아파트는 주차장·진입도로 기준 완화, 관리사무소·비상급수시설 면제, 공공주택의 건물 간 간격 거리 배제 등 규제가 대폭 완화돼 지어졌습니다. (▶관련기사: ‘1층 주차장’ 우리집도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

앞서 2002년에 건축물의 주차 기준이 강화된 것도 필로티 건물이 늘어난 계기였습니다. 건물을 지을때 반드시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한 것인데요. 지하 주차장을 만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필로티 건물을 선호했던 겁니다.

이러한 도시형 생활주택과 필로티 건물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필로티 건축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극심한 전세난 완화나 부동산 시장 안정에 역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간단하게 한번 정리를 하면 필로티 건물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장한 개념으로 공간활용과 미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았던 건축 양식인데요. 저희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대형 건설사가 필로티 방식으로 지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닙니다. 그런 건물들은 내진설계가 돼 있고, 건축법상 건축구조기술사가 내진 성능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항 지진에서 보았던 필로티 건물들은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흔히 말하는 ‘원룸’ 건물인거죠.

■ 지진에 필로티 건물이 취약할까?

필로티 구조 설명. 서울시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사이트 갈무리
필로티 구조 설명. 서울시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사이트 갈무리

그렇다면 필로티 건물이 지진에 정말로 취약한걸까요? 정답부터 말하면 ‘그렇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 사이트에 가면 필로티 구조 건물이 지진에 취약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필로티 건물에서 계단실이 건물 중앙에 자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계단실 반대편의 기둥에 충격이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국내 지진재해도를 고려한 저층 필로티 건물의 붕괴 확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던 강원대 김태완 교수(건축공학과)는 1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필로티 건물의 이런 ‘비대칭성’이 지진에 취약한 원인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지진이 발생하면 필로티 건물에서 계단실이 있는 벽쪽과 기둥만 있는 쪽에 가해지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높다”며 “필로티 건물을 지을때는 설계를 제대로 하고, 시공은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진설계가 적용된 필로티 건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위험요소입니다. 최근까지도 5층 이하의 필로티 건물은 내진설계 의무가 없었습니다. 1988년에 내진설계 규정이 도입될 때는 6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이상에만 적용이 됐고요. 2015년에야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인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하도록 규제가 강화됐습니다. 그리고 경주 지진이 발생한 이후인 지난 2월부터는 2층 이상 혹은 500㎡ 이상의 건축물까지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건물은 규제를 적용할 수 없는 탓에 여전히 지진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현장에서 공사를 하는 소형 시공사들의 인식이 안이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포항 지진 현장을 직접 돌아본 김 교수는 “수십년 동안 소형 건물 건축 현장에서 일하신 분들은 지진에 대한 고려를 한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제제기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이러한 관성적 태도가 원룸식으로 지어진 필로티 건물들의 위험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화재에도 취약한 필로티

발화장소인 1층 주차장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지상 10층 지하 1층 규모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이 나 10일 낮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의정부/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발화장소인 1층 주차장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지상 10층 지하 1층 규모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이 나 10일 낮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의정부/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필로티 건물은 지진 뿐만 아니라 화재에도 취약하답니다. 2015년 1월10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125명이 다쳤던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사고 건물도 필로티 건물이었습니다.

화재는 한 입주민이 4륜 오토바이의 키박스를 녹이기 위해 사용한 라이터에서 발화돼 옆 오토바이와 차로 옮겨붙으면서 건물 전체로 퍼져나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화재 당시에는 10층 고층 건물임에도 살수기(스프링클러)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고, 양쪽 외벽은 불에 잘 타는 소재인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됐던 것 등이 대형화재로 번진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그런데 필로티 건물 자체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필로티 건물의 1층 공간이 주차장이나 쓰레기 수거장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입니다. 가연성 물질이 적절한 안전장치 없이 방치되는 것 자체가 화재의 위험을 높이는 거죠.

필로티에서 불이 발생할 경우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빠져나올 통로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대개 통로는 계단실이 유일한데 불이나 유독가스가 계단을 통해 번져나갈 경우 달리 피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련 전문가들은 필로티 공간을 주차장·쓰레기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비상통로를 별도로 마련해 화재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필로티, 어떡하지?

15일 오후 2시 29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 지점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 포항시의 한 건물의 1층 기둥에 금이 가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2시 29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 지점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 포항시의 한 건물의 1층 기둥에 금이 가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 필로티 건물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미 기둥이 파손된 포항의 건물에 대해서 추가적인 구조물을 덧대는 등의 보강공사를 진행하는 걸 검토중이라고 합니다.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필로티 건물 역시 보강공사를 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건설사 관계자는 “‘댐퍼’를 대는 등 여러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다”면서도 “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돈이 문제인거죠. 앞으로 지어질 건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내진설계를 하고, 건축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내진설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지진을 염두에 둬 설계·시공을 훨씬 세심하게 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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