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구속수감 중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불려와 조사를 받았다. 원 전 원장이 호송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가정보원이 2013년 검찰의 대선개입 수사를 막으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개인비리를 건네는 대신 댓글 사건 수사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국정원이 수사 방해를 위해 수사기관과의 ‘거래’까지 계획했던 셈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2013년 4월 수사 무마를 위한 전략의 하나로 원 전 원장을 ‘속죄양 카드’로 쓰겠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찰도 체면이 있으니 원 전 원장은 구속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였고, 댓글 수사는 국정원의 존폐와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으니 개인비리로 정리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국정원은 이런 내용의 거래 의사를 검찰 쪽에 간접적으로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원 전 원장 개인비리 사건과 병합해 수사하도록 협조하는 것을 전제로 빅딜을 모색해야 한다. 조직적 개입으로 비화되고, 직원들이 연루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비슷한 기간에 작성된 다른 보고서에는 ‘원 전 원장 개인비리를 먼저 터트렸을 때 파장은 커질 수 있으나, 속죄양 카드는 소진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원 전 원장의 개인비리 수사가 먼저 진행되면 검찰과 거래가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국정원이 ‘빅딜 카드’를 다각도로 검토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정원의 이런 ‘빅딜 시도’는 지난 26일 구속기소된 서천호 전 2차장과 국정원 파견검사였던 장호중 전 검사장 등의 공소장에도 일부 내용이 포함됐다.
수사의 방향을 틀려던 국정원의 이런 계획과 달리 결국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3년 6월14일 불구속기소됐다. 당시 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선거법 적용 불가’ 지시로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은 적용하되 구속영장 청구는 하지 않기로 정리가 됐다.
이후 원 전 원장은 다음달인 7월10일 친분이 있던 건설업자로부터 공사 수주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5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다만 당시 검찰 관계자는 “건설업자 비리는 검찰이 자체 인지해서 수사한 것이며, 국정원발이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이날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원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수사팀은 또 이날 김병찬 서울 용산경찰서장(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을 소환해 당시 경찰의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했는지 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출입 정보담당관 안아무개씨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012~2013년 경찰의 댓글 사건 수사정보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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